[강대호의 책이야기] 선량한 차별은 가능한 것일까?...'선량한 차별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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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선량한 차별은 가능한 것일까?...'선량한 차별주의자’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12.14 10:4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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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학과 교수 김지혜,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의 순간 날카롭게 포착
독자와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의 울림 돋보여...예스24 등 ‘올해의 책’
누구라도 차별주의자가 된다...단,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것
김지혜 저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펴냄.
김지혜 저 '선량한 차별주의자'. 창비 펴냄.

[오피니언뉴스=강대호 북칼럼니스트] 매년 이맘쯤이면 대형 서점 등에서 ‘올해의 책’을 발표한다. 판매량을 순위가 아닌 독자들의 투표로 선정한다. 나는 책을 주제로 글을 쓰는 만큼 어떤 책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는지 관심이 갔다.

인터넷 서점인 ‘예스24’와 ‘알라딘’에서 독자들이 뽑은 ‘2019 올해의 책’들을 보니 내가 읽은 책들이 여럿 있었다. 특히 ‘오피니언뉴스’에 소개한 ‘여행의 이유’와 ‘90년생이 온다’는 두 곳 모두에서 뽑혔다.

‘올해의 책’이라는 행간을 짚어 보면 많은 독자의 선택을 받은 좋은 책이라는 느낌이 든다. 좋은 책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번에 뽑힌 책들 면면을 살펴보니 많이 팔린 책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이 팔려서 좋은, 출판사와 서점 입장에서 좋은 책이라는 느낌도 든다.

반면 오늘 소개할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독자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의 파장이 ‘올해의 책’에 걸맞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올해의 책’이 발표되기 전에 이미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책이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예스24’, ‘알라딘’ 모두에서 ‘올해의 책’으로 뽑혔다.

우리도 모르게 차별에 물들었기 때문에, 혹은 의도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었다고 역설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김지혜는 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이고, 한국의 혐오와 차별 문제에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무엇일까. 저자는 혐오와 차별을 연구하는 본인도 ‘차별’을 담은 단어를 무심코 썼노라고 고백한다. 그만큼 한국 사회 곳곳에 만연한 나와 다른 것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현상들을, 그런 차별을 차별이라 생각하지 않는 현상들을, 혹은 그런 차별에 좋은 의도가 있었다고 항변하는 현상들을 담담히 보여준다.

많은 사람들이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을 비하하고 모욕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고도 자신이 차별을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스스로 선량한 시민일 뿐 차별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한국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로 넘치는 사회가 되었다.

 

 

성 소수자들의 축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동안 맞불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저자는 평범한 우리 모두가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연합뉴스
성 소수자들의 축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동안 맞불 집회가 열리기도 한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저자는 평범한 우리 모두가 차별주의자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사진=연합뉴스

이 책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1부에서는 우리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는 이유를 알려준다.

혹시 시외버스 타는 게 특혜라고 생각한 적 있는가.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차표를 사도 시외버스틀 탈 수 없다.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된 시외버스가 없기 때문이다. 그 관점에서 휠체어를 타지 않는 사람들은 시외버스를 탈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다. 휠체어를 타는 사람들은 차별을 받는 것이고.

이렇듯 우리가 보지 못하는 차별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모르게 가지게 된 특권을 먼저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 특권은 나에게는 아무런 불편 없는 구조물이 누군가에게는 장벽이 될 때 발견된다고 한다. 하지만 장애인이나 이주민 혹은 성소수자가 그 장벽을 넘기보다는 그냥 참고 마는 현실도 보여준다.

저자는 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조차도 차별적인 질서에 맞추어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불평등을 유지하고, 차별이 고착되고, 구조화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저자의 지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선량한 시민이라 하더라도 차별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2부에서는 차별이 지워지거나 공정함으로 둔갑하는 매커니즘을 살핀다. 우리 사회의 차별 감수성은 예전에 비해 높아진 건 사실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관념적으로 평등을 지지하고 차별에 반대한다. 하지만 구체적인 사안에 들어가면 어떤 차별은 합리적이라거나 또 어떤 차별은 차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든다.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바보 흉내를 내거나, 학교에서 우열반을 나누거나,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례들을 소개한다. 이런 차별에 대해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벼든다고, 학생들을 위한 시스템이라고, 사업주의 정당한 권리라고 항변하는 모습도 함께 소개한다.

저자는 이런 현상들이 왜 차별인지 각종 이론과 연구 사례를 들면서 설명한다. 소수자를 비하하는 농담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능력주의’가 승자 독식을 어떻게 심화하는지, 사업주의 선호 선택이 그 범주 밖의 사람들에게 어떤 박탈감을 주는지 지적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계속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노키즈존’이 정당한 권리라면 ‘노장애인존’은 괜찮은 건가?”와 같은. 그 대답들을 좇다 보니 나도 몰랐던 차별적인 모습이 내 안에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작년 8월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난민대책국민행동이 난민법, 무사증 제도 폐지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작년 8월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난민대책국민행동이 난민법, 무사증 제도 폐지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마지막 3부에서는 이러한 차별과 혐오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를 살핀다.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대안부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제시한다.

저자는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이는지 독자들에게 묻는다. 혹시 기존 사회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지. 그런 충돌과 긴장 속에서 소수자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독자들에게 숙제를 준다.

그리고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도 살핀다. 저자는 평등을 실천하는 해법의 하나로 제시하지만 법 제정에 별 진전이 없는 현 상황을 지적한다. 정부와 국회가 앞에서는 사회적 합의가 먼저라고 절차를 강조하면서 뒤에서는 차별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온 것이 아직 법이 제정되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헌법의 원칙을 따라야 할 국가기관이 그 원칙을 지켜야 할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쪽)

 

평등이 ‘제로섬 게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차별금지법 제정과 같은 조치들이 자기 것을 빼앗는 것으로 생각한다. 소수자의 이익은 다수자의 피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이 팽배한 이상 선량한 마음만으로는 평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평등을 위해서는 함께 모여 결의하고 노력해야 이루어진다고 외친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내 안에 자리 잡은 구분 짓기 좋아하는 성향을 들켰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던 ‘우리’라는 말이 사실은 ‘그들’이라는 말을 전제로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와 다른 것에 경계를 짓고 있었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나도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하지만 나는 ‘차별주의자’라는 단어보다 ‘선량한’이라는 단어가 더 부끄러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의도도 좋았던 것이 아니라 위선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평등은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평등은 인간 조직이 정의의 원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 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 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206쪽)

 

저자가 마지막에 인용한 평등에 대한 ‘한나 아렌트’의 말을 계속 곱씹었다. 평등은 ‘그들’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고, ‘우리’가 ‘그들’ 안에 들어갈 때 시작된다. ‘우리들’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는 열린 공동체를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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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선인 2019-12-15 06:30:16
좋은 책을 추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평소에
쓰는 언어를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