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경제성장률 비하면 높은 편
대내외 변수가 관건...국내 언론도 잘못 인용보도
[오피니언뉴스=김지은 기자] 한국 경제가 그렇게 바닥일까?
한국 경제가 반세기만에 최악 국면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이 2년 연속 2.5%를 하회할 것으로 전망됐는데, 이것이 1954년 이후 처음이라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정말 최악의 국면에 도래한 것일까.
FT "한국, 2년 연속 2.5% 성장률 하회하면 반세기만에 처음"
파이낸셜타임즈(FT)는 지난달 29일 '한국, 반세기 만에 최악의 성장기를 맞이하다(South Korea set for one of worst growth periods in half a century )'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경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발로 에드워드 화이트(Edward White) 기자가 작성한 기사다. 이를 인용보도한 동아일보 등 한국 언론들은, FT가 “한국 경제, 반세기 만에 최악 국면 빠져들 우려”를 나타냈다고 전했다.
한국은행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그 근거가 됐다. 한국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6%에서 2.0%로 내렸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5%에서 2.3%로 하향조정한 바 있다.
한국은행의 예상대로 흘러간다면, 우리 경제는 2년 연속 성장률 2.5%를 하회하게 되는데, 이는 1954년 이후, 정확히는 65년만에 처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행의 성장률 전망치를 두고 한국 경제가 반세기만에 최악의 국면이라고 단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
무엇보다 과거와는 달리 상당히 성장해있는 한국 경제의 규모를 들 수 있다. 전세계 유례없는 성장을 해온 한국에 대해 과거 50년을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급진 성장한 한국경제...과거 50년 비교 '의미없다'
한국은 그야말로 눈부신 경제성장을 지속해왔다.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던 가난한 동쪽 나라는 어느새 다른 나라를 지원하는 나라가 됐다.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다.
한국은 1995년 세계은행(WB) 원조대상국을 졸업하자마자, 이듬해인 1996년에는 선진국들이 속해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했다. 1998년은 |MF 위기로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이는 등 흔들리기도 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에는 11.3%의 두자릿대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보란듯이 일어섰다. 이후 2009년에는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OECD 개발지원위원회(DAC, Development Assistance Commuttee) 회원이 됐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순위 12위다. 지난 반세기동안 그야말로 전세계 유례없는 놀라운 성장세를 기록한 것이다.
선진국 경제 성장률은 어느정도일까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10월 발표한 세계 경제 전망에 따르면, 한국이 속해있는 경제 선진국(Advanced Economies) 국가들의 2019년 경제 성장률은 1.7%로 예상됐다. 내년도 경제 성장률 역시 같은 수준인 1.7%로 내다봤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미국은 올해 2.4%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며 내년에는 2.1%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유로존 국가들은 올해와 내년 각각 1.2%, 1.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됐고, 일본의 경우 각각 0.9%, 0.5%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우리나라는 각각 2.0%, 2.2%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 과거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인 2% 초반대의 성장률이지만, 경제 선진국들의 평균 성장률을 웃도는 수치다.
선진국은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기 어렵다. 이미 경제가 충분히 성장, 규모가 커진데다, 개발도상국에 비해 대내외 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과 같이 수출이 중심이 되는 나라들은 더욱 그렇다. 미국과 중국간 무역 분쟁을 비롯해 전세계적인 경기둔화의 그림자가 곳곳에 드리워있다. 제 아무리 경제가 탄탄한 나라라 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어두운 대내외 환경 속에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기는 쉽지 않다.
IMF 자료에 따르면, 신흥국가들과 개발도상국(Emerging Market and Developing Economies)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은 각각 3.9%, 4.6%로 전망됐다. 선진국들의 경제 성장률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내수 중심의 국가가 많아 대내외 환경의 영향이 선진국에 비해 비교적 덜하고, 경제 역시 더 성장해갈 여지가 많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에는 그랬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국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던 1980년대(1981~1990년) 실질GDP 성장률 평균치는 무려 9.92%다. 1년에 평균 9.9%의 성장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1990년대(1991~2000년)의 경제성장률은 평균 7.04%, 2000년대(2001~2010년)의 경제 성장률은 평균 4.69%, 2011년부터 2018년의 성장률 평균치는 3.01%다. 한국은행은 2019년 경제성장률을 2.0%로, 2020년은 2.3%로 예상했다.
선진국으로 가까이 갈수록 경제성장률은 둔화될 수 밖에 없다. 경제가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는 것이 아니라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의 단면에 가깝다.
경제 전망은 체리피킹일 뿐..그리 최악의 상황 아냐
체리피킹(Cherry Picking)이라는 말이 있다. 증거 은닉의 오류 또는 불완전한 증거의 오류라는 뜻인데, 특정 상황에서 해당 입장과 상충될 수 있는 자료는 무시하고, 자신의 논증에 유리한 사례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 전망치를 내놓는 곳은 셀 수 없이 많다. 자신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치를 판단의 근거로 삼는다. 똑같은 자료를 가지고도 해석은 분분할 수 있다. 같은 수치를 두고 누군가는 바닥을 쳤다고 분석하고, 누군가는 어두운 터널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고 판단한다.
한국의 경제 성장이 주춤해진 것은 사실이다. 분명 그냥 지나칠만한 뉴스는 아니다. 하지만 이 또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고, 대내외 변수가 개선되면 회복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는 없다. 어찌보면 그리 최악의 상황이 아닐지도 모른다. FT는 경제성장률 수치상으로 최악이라는 기사를 썼지만, 이를 인용한 국내 언론들은 한국 경제가 최악으로 빠져드는 것처럼 불안감을 조장하는 체리 피킹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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