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트렌드] 여성이여, 출산으로 구국의 잔다르크 되라? 결혼·출산은 선택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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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트렌드] 여성이여, 출산으로 구국의 잔다르크 되라? 결혼·출산은 선택의 문제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11.27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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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변하는데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제자리 걸음
결혼과 비혼, 이혼 등 개인의 선택에 대해 사회적인 잣대 가하지 말자
사실혼, 비혼 등의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제도와 공감대 필요
영화 '와일드'. 불우한 유년 시절 겪고 엄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인생을 포기하려한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PCT(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장거리 트레일)를 가기로 결심한다.사진=IMDb
영화 '와일드'. 불우한 유년 시절을 겪고 엄마도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인생을 포기하려한 셰릴 스트레이드.(리즈 위더스푼) 슬픔을 극복하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PCT(멕시코 국경부터 캐나다 국경까지 장거리 트레일)를 가기로 결심한다.사진=IMDb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중국 남북조시대에 '서덕언'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낙창 공주와 결혼한 그는 수나라가 쳐들어오려 하자 거울을 쪼개 한쪽은 자신이 갖고 나머지 반쪽을 아내에게 건네고 정월 보름날 시장에서 다시 만나자며 헤어졌다. 숱한 고초를 겪은 서덕언은 정월 보름날 반쪽 거울을 가지고 시장에 나타났으나 수나라 장군의 총애를 받고있는 아내는 시녀를 시켜 반쪽 거울을 들고 나가게 했다. 서덕언은 사정을 알아차리고 차마 찾아가지 못한 채 거울 뒷면에 시를 써서 돌려보냈다. 아내가 시를 읽고 눈물을 흘리며 식음을 전폐하자 사연을 알게된 장군이 서덕언에게 아내를 돌려보냈다고 한다. 서덕원이 쓴 한시(漢詩)에 나오는 '파경'(破鏡)은 원래 남녀가 헤어졌다 다시 만나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었으나 남녀가 헤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전해내려왔다.

5~6 세기경 중국에서 만들어진 단어가 21세기 대한민국 미디어에 아직도 버젓이 쓰인다. 최근 어느 여배우의 이혼 소식의 타이틀에 쓰인 단어 '파경'.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제목이지만 그 아래 이어진 기사 본문은 "지금도 서로의 앞날을 응원하는 사이"인 것으로 보도한다. 두 사람은 원만히 헤어졌다는데 굳이 '파경'이라는 구태의연한 단어를 쓸 필요가 있었을까. 

미혼-기혼, 결혼-이혼에 이어 최근엔 비혼(결혼을 아직 안한 미혼과 달리, 결혼을 아예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졸혼(이혼은 하지 않은 채 부부가 독립적인 거처에서 사는 상태)등의 신조어가 생겨났다.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이 생겨나면서 그것을 지칭하는 단어들도 속속 생겨나는 것. 그만큼 선택지는 다양하다. 결혼은 '개인의 선택'이며 출산 역시 '부부의 선택'이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은 여성의 '의무'이며 여성의 이혼은 숨겨야하는 치부로 인식되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멜로가 체질.사진=JTBC
'멜로가 체질'. 연애에 서투른 드라마작가, 이혼한 워킹맘, 남친이 세상을 떠난 제작자 등, 서른 살 동갑내기들의 고민, 연애, 일상을 그린 드라마.사진=JTBC

 

결혼이냐 비혼이냐...그런데 비혼이 저출산의 원인?

최근 20∼30대 사이에 비혼주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친구들의 청첩장을 받아도 비혼을 밝히고 축의금을 내지 않는 미혼남녀들이 늘어가고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안 주고 안 받겠다는 말이다.

결혼을 기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1월 17일 경기도가 공개한 '결혼, 자녀, 저출산과 관련한 도민 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최근 비혼이 증가하는 이유로 여성의 경우 1위는 개인의 삶•여가 중시(26%), 2위는 과도한 주거비용(21%)이었고 그 다음으로 출산양육 부담(20%), 이상적 배우자 못 만남(12%) 등을 들고 있다. 남성의 경우는 1위 출산양육 부담(32%), 2위 과도한 주거비용(29%)이고 다음으로 개인의 삶여가 중시(17%), 이상적 배우자 못 만남(7%) 순이었다.

쉽게 말하면 여성은 혼자만의 자유로운 삶을 더 중시해서이고, 남성은 가장 노릇하기 싫단 얘기다. 양육 부담없이 혼자사는 게 더 편하다는 것이다.

결혼에 대한 인식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54%가 '해야 한다'고 답했고, 69%는 '자녀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여성의 경우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좀 다르다.

통계청이 지난 1일 발표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018년에 43.5%로 절반도 되지 않는데, 같은 통계가 2002년에는 69.27%였던 것에 비교하면 그 비율이 매우 빠르게 줄어드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동 교육용 잡지에 실린 저출산 기획 기사.사진=W 11월호 캡쳐
아동잡지 위즈키즈에 실린 저출산 기획 기사.사진=11월호 캡쳐

문제는 비혼이 증가하고 저출산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면서 '비혼주의'와 저출산을 결부시키는 시각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것이다. 

최근 한 아동잡지는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출산율과 앞으로 정년연장으로 인한 국민연금 상승 문제, 의료 대책 등을 다루면서 비혼여성과 다둥이 엄마의 가상의 대화를 실었는데 다둥이 엄마의 말을 듣고 비혼여성이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이 문제가 됐다. 

"저출산 때문에 이런 변화가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어"라며 비혼자가 반성(?)하는 모습이 그려졌는데, 즉각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왜 비혼 여성이 저출산 문제에 책임을 느껴야 하느냐"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사회 구조적 문제가 왜 여성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미쳐야 하는가.

이에 대해 출판사 측은 "비혼여성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부분이 없도록 곳곳에서 저출산엔 다양한 이유가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서둘러 사과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경기도는 어떤가. 앞서 도민 인식조사 결과에 따라 주거 비용에 초점을 맞추고 도내 행정을 펴나가겠다고 밝혔지만 그렇다면 가장 큰 이유로 선정된 1위에 대한 대책은 무엇일까? 개인의 삶과 여가를 중시하는 미혼여성과 출산과 양육이 부담되는 미혼 남성에게 경기도는 어떤 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까?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마치 예전의 표어 '아들딸 구별말고 하나만, 둘만 낳아 잘키우자'처럼 인구정책을 계몽운동 정도로 생각할까? 개개인을 계몽하고 법과 제도, 교육으로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2030세대의 많은 여성들은 결혼과 출산보다 자신의 자유의지와 커리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행복이 더 우위에 있다. 결혼과 출산으로 나라에 애국자가 되는 것보다 자신의 행복을 더 우위에 놓는 것이다.

영화 '두번할까요?' 스틸컷. 이혼식을 성대히 마치고 싱글라이프로 돌아가려는 권상우(왼쪽)와 이정현.사진=네이버영화
영화 '두번할까요' 이혼식 장면. 이혼식을 성대히 마치고 싱글라이프로 돌아가려는 권상우(왼쪽)와 이정현.사진=네이버영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 결혼처럼 이혼 역시 선택일 뿐

새 예능 프로그램이 전파를 탔다. 이혼한 여성들이 모여 1박2일 동안 함께 생활하고 이혼 후 꺼내보지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나아가 새로운 사랑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이들은 이혼 후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고 자존감이 점점 떨어진 것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고 단 한번뿐인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건 사랑이 아닐까라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파경'을 겪은 이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이 그렇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도 '남성 편력', '여성편력'이란 말에 빗대어 연애를 했다가 헤어진 이들, 결혼을 약속했다가 헤어지는 이들에게도 곱지않은 시선인데 이혼은 더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편력(遍歷)을 하더라도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결혼이 선택이듯 이혼 역시 선택이다. 선택이 잘못됐을 때는 환불하거나 돌려주면 되는 것 아닌가. 

어떤 이는 결혼에 4번이나 실패했다고 말하는 대신 결혼에 4번이나 성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훨씬 다르게 보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사실 세기의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도 8번 결혼에 성공했다. 그렇다고 결혼 횟수와 행복이 비례하는 건 아닐테지만, 결혼에 성공과 실패 운운하는 것 자체도 이미 전근대적인 사고방식 아닌가.

탄생은 축복이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 애국을 위한 결단이어선 안될일이다.사진=pixabay
탄생은 축복이다. 그러나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선택이지 애국을 위한 결단이어선 안될 일이다.사진=pixabay

2030세대들의 비혼주의, 출산기피는 사회적으로 큰 이슈인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혼자들, 출산을 계획하지 않는 이들에게 양심이나 애국심으로 호소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리라 쉽게 판단하지 말고 좀 더 고민해보자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스웨덴은 유럽에서도 혼인율이 최저에 속하는 나라지만 유럽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자랑하는 나라이기도 한단다. 지난 10년 간 출산율이 급격히 올라 유럽은 물론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데 그 배경에는 그들의 시스템이 있다. 스웨덴에서는 결혼한 커플이 아니더라도 가족의 형태라면 법적으로든 사회 구조적으로든 불편함도 없고, 차별도 없다고 한다. ('결혼 하지 않는 스웨덴, 출산율은 한국 두 배', 데일리안, 2019년 7월20일자)

스웨덴처럼 우리도 사실혼과 비혼가정을 받아들이는 사회 시스템이 갖춰진다면 2030세대들에게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하는 의미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출산 특히 육아를 위한 제도와 환경 등이 더욱 공고히 갖춰져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10여년전만 해도 결혼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 거쳐야 하는 인생의 한 단계로 인식됐다. 지금은 여러 갈래의 길 중 하나일 뿐이다. 누구나 같은 길을 가지 않으니 그만큼 정책도 통일하기 어려울 것이다. 정책 결정자의 혜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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