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상집의 인사이트] 대세가 된 AI 면접이 놓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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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의 인사이트] 대세가 된 AI 면접이 놓치는 것들
  • 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 승인 2019.10.01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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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집 동국대 경영학부 교수] 9월부터 국내 주요 기업의 채용 과정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취업준비생들의 대비 또한 바빠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취준생들의 대응이 한층 더 바빠진 이유는 지난해부터 국내 기업들이 AI라고 불리는 인공지능을 통해 지원자의 옥석을 구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원자 앞에 면접관이 아닌 유선 인터넷과 웹캠, 마이크 등이 놓이면서 지원자들은 ‘당황스럽다’부터 ‘훨씬 더 공정해진 것 같다’는 입장까지 AI 면접에 대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공지능에 관한 기대가 높아진 계기는 2016년 초 알파고와 바둑기사 이세돌의 이벤트 경기였다. 이후 인공지능은 법률, 교육, 컨설팅, 의료 각 영역에 걸쳐 중요한 파급효과를 미치는 핵심 수단으로 부각되었고 기업 역시 수익성 창출을 위해 자사에 필요한 핵심 인재를 판단하는 면접 도구로 AI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국내 기업 중 올해 AI 면접을 공식 도입한 기업은 현재 140곳이 넘는다. 내년이면 이보다 2배에 가까운 기업이 AI 면접을 채택한다고 한다. 

인터넷·포털 기업부터 시작된 AI 면접은 제조업, 제약업, IT업, 금융업 등 산업 유형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AI 면접을 통해 기업은 지원자의 역량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고 자사의 가치관이나 철학, 방향성에 부합되는 인재를 훨씬 정확하게 선발할 수 있다고 강조하는 상황이다.

또한, AI 면접은 사람과의 면대면 면접이 아니기에 심사위원으로서의 편견과 피로도를 줄일 수 있고 객관적인 역량을 평가할 수 있다고 기업들은 주장한다. 

수많은 기업이 AI 면접을 도입했다는 건 단순히 시스템상의 효율성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 취준생들은 개인적 편견이나 후광효과 등 면접관이 지닌 인지적 오류에 관해 불만이나 항의를 제기해왔다.

그 결과 정확하고 객관적인 역량만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AI 면접은 지원자들에게 불평보다 더 많은 기대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정말 AI를 통해 인간의 잠재적 역량을 올바르게 평가, 측정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육군에서도 지난 6월부터 간부선발과정에서 AI면접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육군
​육군에서도 지난 6월부터 간부선발과정에서 AI면접을 도입한다고 밝혔다. 사진제공=육군

AI 면접 과정이 지닌 한계 

1956년 다트머스 대학에서 열린 컨퍼런스에서 AI는 ‘모든 학습과 지능을 묘사할 수 있어서 기계가 이를 모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명제에서 출발했다.

즉, AI는 본능적으로 창조와 상상력의 도구라기보다는 정확한 데이터 분석과 모방이 가능한 학습도구라고 봐야 한다. 인간이 지닌 기억력, 계산력의 한계로 인해 접근할 수 없는 영역까지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 최적화된 해법을 찾아내고 이와 유사한 것들을 모방, 학습하는 것이 AI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I 면접의 원리는 간단하다. 특정 기업에서 AI 면접을 통해 가장 역량이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해당 기업에서 최고의 성과를 보인 인재들의 역량 및 성향, 특성 등을 모두 데이터화해 이를 학습시켜야 한다.

AI 면접을 도입한 국내외 기업들 모두 면접 전, 파일럿 테스트를 통해 자사가 보유한 A급 인재들의 표정 및 말투, 특정 사용 어휘의 빈도 수 등을 모두 도출해 이를 AI 데이터에 축적, 대입한 점만 봐도 그 한계를 알 수 있다. 

AI 면접을 통해 해당 기업에서 탁월한 역량을 보이고 있는 기존 직원과 가장 유사한 미래 예비 직원을 선발하는 방식이라면 AI는 인간보다 확실히 탁월하다.

기본적으로 인간이 다룰 수 없는 빅데이터를 분석·조합해서 회사에 재직 중인 우수 직원들의 역량과 성품, 성향 등을 프로파일로 추출해서 이와 대조해 신입 및 경력사원을 선발하는데 기업이 주안점을 둔다면 이보다 더 정확한 면접 도구는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유능한 직원과 가장 유사한 역량을 지닌 미래 잠재적 후보를 선발하는 것이 기업의 인재 확보 목적에 부합되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초기 AI가 개발될 당시 학계에서는 인간의 지능은 반도체 소재를 토대로 만든 인공지능이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후 수많은 연구를 통해 AI는 축적된 데이터에 없는 영역 또는 인간의 윤리적 판단 능력과 창의적 역량 등은 여전히 학습하거나 구현하기 어렵다는 점이 밝혀지고 있다.

국내외 기업의 인재상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키워드는 ‘창의성’, ‘윤리의식’, ‘융합’ 등이다. 이들 영역은 기본적으로 AI가 측정할 수 없는 영역이다. 빅데이터를 조합해서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하고 정답을 도출하는 AI는 미지의 영역을 생각,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인간의 창의성과 융합 역량을 확인할 수 없다.

아울러, 현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컴퓨터가 그려놓은 표상의 영역에서 추리하는 AI가 인간의 윤리의식을 이해한다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자료=연합뉴스

AI 면접을 다시 생각한다

AI 면접을 본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무선인터넷보다 유선인터넷, 이어폰보다 헤드셋을 선택한 면접에서 훨씬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조언을 다양한 커뮤니티를 통해 공유하고 있다.

AI 자체가 수많은 지원자가 만들어 놓은 데이터의 계산을 통해 최적점을 도출하는 도구이기에 ‘AI가 축적하지 못한 참신한 어휘, 단어는 절대 얘기하지 말 것’ 등도 지원자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 창의적인 인재를 위해 도입한 AI가 정형화된 인재만 역설적으로 양산하는 꼴이다.

문제는 내년에 300개가 넘는 기업들이 AI 면접을 도입한다는 점이다.

분명, 면접위원의 성향 및 선입견 등을 줄일 수 있고 각종 채용 진행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 등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AI는 국내 기업에게 가장 필요한 창의적이고 윤리적인 인재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본질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AI로 면접이 아닌 지원자의 자기소개서, 이력서에 표절 여부가 있는지 등으로 도입 방식을 전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세계 최고의 혁신기업으로 불리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은 여전히 우수한 지원자를 선발하기 위해 채용 심사 과정에 수개월을 투입하고 수많은 면접관을 육성, 교육시켜 면대면 면접을 강화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해 AI 대비 경쟁우위를 가질 수 있는 창의성과 윤리의식, 비판적 사고가 내재된 인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국내 기업들은 AI 열풍에 도취된 나머지 아무 고민 없이 AI를 면접과정에 투입시키고 있다. 

결국 핵심 문제는 국내 기업들이 그 동안 근시안적인 시각을 갖고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는데 있다.

글로벌 기업이 지원자의 역량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면접 방식을 도입하고 채용 심사 기간을 늘리는데 비해 국내 기업은 지원자의 학력, 나이, 성별 등 기초 정보를 토대로 구조화되지 않은 면접관들의 질문 등을 통해 손쉽게 지원자를 선발해왔다. 이로 인해 국내 기업의 혁신은 줄어 들었고 지원자의 불신은 늘어만 갔다. 

김기현 서울대 철학과 교수는 "인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AI가 정답을 찾아낼 수는 있어도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창의적 역량이나 감성을 기반으로 한 윤리적 판단 능력은 AI가 결코 지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아무 고민 없이 AI를 면접에 도입한다면 창의적인 인재가 아닌 인간의 로봇화, 즉 기업의 정형화된 데이터 입맛에 가장 부합하는 기계적이고 정형화된 인재만 남게 될 것이다. AI로 인간의 잠재력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는 전제 자체가 기계적인 생각이다. 

 

● 권상집 교수는 CJ그룹 인사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카이스트에서 전략경영·조직관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활발한 저술 활동으로 2017년 세계 최우수 학술논문상을 수상했으며 동국대에서 명강의 교수상과 학술상을 모두 수상했다. 현재 한국경영학회와 한국인사관리학회, 한국지식경영학회에서 편집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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