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팬덤 문화] ① 왜 즐기지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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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팬덤 문화] ① 왜 즐기지 못하나
  • 김서나 패션에디터
  • 승인 2019.09.24 17: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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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을 응원하기 위해 성적에까지 집착
팬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세력화, 지나친 집단 행동까지
잘못된 팬 문화가 정치 이슈에까지 진출해 문제 일으켜
음원 사이트가 제공하는 다음 시간 순위 예측 그래프 (사진=멜론 홈페이지 캡쳐/사진 속 아티스트는 내용과 관계없음)
음원 사이트가 제공하는 다음 시간 순위 예측 그래프 (사진=멜론 홈페이지 캡쳐/사진 속 아티스트는 내용과 관계없음)

[오피니언뉴스=김서나 패션에디터] K 팝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짐에 따라 팬들의 응원도 한층 체계적으로 자리잡힌 요즘.

하지만 아이돌 팬덤들 간의 과열된 경쟁과 승부욕이 크고 작은 트러블을 일으키기도 한다.

최근 정치계에까지 확대되어 사회적으로 우려를 키우고 있는 팬덤 문화의 이면을 살펴본다.

 

◆ 내 아이돌의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 돈과 시간 낭비

‘팬덤’은 팬(fan)에 영지(領地) 또는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덤(dom)'이 합쳐진 단어로, 거대한 팬 집단을 의미한다.

공식 팬클럽이나 인터넷 커뮤니티, 트위터 등을 기반으로 같은 대상을 좋아하는 팬들이 모여 팬덤이 형성되면, 이들은 티저 영상과 신곡 음원, 뮤직비디오, 앨범의 발표 그리고 음악 방송 출연과 팬 싸인회 등으로 이어지는 아이돌의 활동 루틴을 따라가며 열성적으로 응원을 보낸다.

그러다 보면 다른 아이돌에 지지 않기 위해 경쟁심이 솟구쳐 오르는데, 그 결과 뮤직비디오 조회수 올리기, 음원 차트 순위 올리기 등을 위해 온갖 편법까지 공유한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무음스밍’. 음원 순위를 올리기 위해 볼륨을 줄인 채 반복적으로 스트리밍을 하는 것인데, 이를 부추기듯 음원 사이트 멜론의 경우 상위 순위의 추이를 5분 간격으로 볼 수 있도록 예측 차트까지 제공해 팬덤 간 승부욕에 불을 붙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무음스밍은 너무나 만연하다 보니 어떤 아이돌들은 부끄러움을 잊은 채 대놓고 독려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음악을 실제로 듣지 않고 스트리밍을 돌려대기만 하는데도 말이다.

음원과 함께 앨범의 판매량도 팬들이 신경을 쓰는 부분이다.

사실 앨범은 대중적인 인기를 보여주는 척도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디지털 음원의 시대에 CD를 이용하는 음악 팬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CD앨범의 필요성도 떨어지게 된 것.

이제 앨범은 아이돌들의 예쁘고 멋진 모습을 담은 포토북에 CD가 들어 있는 것일 뿐, 음악을 듣기 위함이 아닌 굿즈와 같은 소장품으로 인식되어 아이돌 팬들에 의해 주로 판매된다. 이런 팬들의 마음을 이용한 기획사들이 상술을 발휘해 음반 시장을 혼탁하게 하고 있다.

조금씩 디자인에 변화를 준 여러 버전의 앨범을 준비해 팬들이 지갑을 더 열도록 하고, 한술 더 떠 앨범에 들어있는 랜덤 포토카드로 팬들을 낚는다. 어떤 멤버의 사진이 들어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좋아하는 멤버가 나올 때까지 다량 구매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여기에 팬 싸인회 일정까지 잡히면 한정된 참가인원에 당첨되기 위해 팬들은 앨범을 또 추가로 사들이고, 그렇게 앨범 판매량은 채워진다.

아이돌 그룹이 음악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팬덤은 거대한 팬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를 의미한다.
아이돌 그룹이 음악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요즘 시대에 '팬덤'은 거대한 팬 집단을 의미한다.

 

◆ 신비주의는 더 이상 없어, 세력을 과시하는 팬덤

이렇듯 팬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아이돌의 성적을 올려주기 때문에 아이돌을 향한 팬들의 시각도 우러러보는 대상이 아닌 ‘내가 키워주는’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연예기획사가 우후죽순 생겨난 만큼 기획사 연습생으로 입문하는 문턱도 낮아지면서 이젠 연예계 데뷔보다도 데뷔 후 팬들의 선택을 받기가 더 어려워진 시대.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아이돌 가운데 응원해주고 싶은 대상을 고른 팬들은 음원 스트리밍, 앨범 구매는 물론, 이런저런 스케줄을 확인하며 아이돌에게 애정을 보여준다. 그룹의 데뷔일과 멤버들의 생일 등 각종 기념일을 챙기는 것은 팬덤의 관례.

팬덤에서 총대가 나서서 함께 돈을 모으고 논의를 거쳐 선물을 준비하는데, 아이돌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다른 아이돌에 밀리지 않게 주로 명품 브랜드의 제품들로 선물을 구성한다. 최근엔 축하 메시지를 보내면서 아이돌을 홍보해줄 수도 있는 지하철 대형 광고판을 많이 이용하는 추세.

아이돌의 이름으로 쌀 기부를 하는 문화도 생겼지만, 이 역시 기부 규모에서 비교를 피할 수 없다.

이러한 선물들을 팬들 스스로는 ‘조공’을 한다고 표현은 하지만 말 그대로 우러러 바치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이 정도로 생각해주고 있으니 알아달라'는 속뜻이 담겨 있는 것.

따라서 아이돌도 팬들을 신경 쓰고 챙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팬덤의 축소를 막을 수 있다.

소위 ‘역조공’이라 하는 자그마한 선물, 간식거리를 팬덤을 위해 종종 마련하고, 라이브방송을 통해 자주 소통을 해야 한다. 그리고 쉴 틈 없이 따라붙는 ‘대포카메라’에도 얼굴을 찌푸려선 안 된다.

덩치를 키운 팬덤은 스타를 팔로우하는데 그치지 않고 활동 방향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신곡 퀄리티나 의상 컨셉 등이 맘에 안 들면 불만을 표출하며, 스케줄을 조정하도록 기획사를 압박하기도 한다.

팬덤에게 있어 아이돌은 우러러보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키워주는’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팬덤에게 있어 아이돌은 우러러보는 대상이 아니라 ‘내가 키워주는’ 대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 공감을 바탕으로 공고한 팬덤을 유지하는 여성팬들

팬덤이 힘을 키우게 된 데엔 여성팬들의 몫이 크다.

상대적으로 남성팬들은 아이돌에 대한 충성심이 약한 편. 좋아하는 아이돌의 미모나 기량이 떨어지고 팬 서비스가 소홀해지면, 새롭게 떠오른 아이돌에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에 반해 여성팬들은 충성심이 더 높은 편으로 한 아이돌을 향한 마음이 오랜 기간 지속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 이유는 공감하기를 좋아하는 여성 특유의 심리에서 찾을 수 있다.

함께 커뮤니티를 형성한 팬들은 같은 대상,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데 그치지 않고, 해당 아이돌이 예쁘게, 멋지게 나온 장면, 재미있는 행동을 한 순간들을 포착해서 꼼꼼하게 ‘짤’을 만들고, 팬아트를 그리는 등 다양한 컨텐츠들을 직접 생산하고 공유한다.

여성팬들의 경우 이와 같은 커뮤니티 활동에 애정을 쏟으며 유대감을 쌓아가는 경향이 짙다 보니 팬덤도 더 공고해지고 오래 유지되는 것인데, 하지만 결속력이 단단해지는 만큼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마찰을 빚기도 한다.

인기 경쟁에서 위협이 되는 다른 아이돌에 대해 깎아 내리는 인터넷 글을 올리며 공격성을 보이고, 혹시 내 아이돌이 트러블에 휘말리게 되면 필사적으로 방어한다.

점차 상황이 더 심각해져도 현실을 부정하고 치열하게 싸워나가는데, 이는 일차적으로는 내 아이돌을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우리 팬덤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마음도 있다. 팬덤 활동을 하면서 쏟아 부었던 시간, 돈, 열정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

 

무엇이든 지나친 것이 문제.

아이돌은 팬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취미로 즐길 만큼의 선을 지킬 수 있도록 현실과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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