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코드] 가을이 온다…트렌치코트, 릴케 시집, 그리고 가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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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코드] 가을이 온다…트렌치코트, 릴케 시집, 그리고 가을 영화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09.18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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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잃은 슬픔을 딛고 거위들과 미대륙 횡단하는 소녀의 성장영화
늦가을 시애틀, 가을빛 찬란한 뉴욕을 영화에서 만끽하다
노동의 가치와 슬로우 라이프를 생각케 하는 친환경 힐링 영화 추천
'리틀 포레스트'. 사진=네이버영화
'리틀 포레스트'. 사진=네이버영화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주여, 때가 왔습니다.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해주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짙은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 것입니다.


(가을날, 릴케, 시집 ‘소유하지 않는 사랑' 중)


위대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사계절 여름이다. 치열하게 사는 것이 일상화된 나라. 열심히 살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걸 느끼게 하는 나라.

하지만 가을은 온다. 거두어 들일 때가 온다. 거두어 축제를 연다.

우리와 같은 중추절을 지내는 나라는 중국. 음력 8월 15일에 보름달 모양의 떡인 월병을 먹는다. 독일의 추수감사절인 '에은테단크페스트'(Erntedankfest)는 10월 첫 번째 일요일, 미국의 추수감사절 '땡스기빙데이 (Thanksgiving day)'는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이다.

러시아는 매년 11월 8일 직전 토요일을 '성 드미트리 토요일'로 기념하며  햇곡식으로 만든 보드카를 나누어 마신다.  

과일은 열매란 뜻 외에 결실의 뜻도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올해 계획한 것의 성과를 만들어 내야하는 부담을 느끼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짧은 가을 동안 만큼은 열기를 식히고 비우고 고독해지는 시간을 기꺼이 즐기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단풍 구경 인파에 치이면서도 행락(行樂)을 택한다면  말릴 수야 없겠지만.

겨울이 오기전에 해야 할 일이 있는 한 소녀가 있다. 거위 엄마가 되어 아기 거위들을 남쪽으로 보내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땅과 하나되는 힐링 영화, 애틋한 러브 스토리 두 편을 추천한다.

사진
캐나다와 미대륙의 가을 풍광을 담은 영화 '아름다운 비행'.사진=IMDb

 

◆ 캐나다와 미국의 가을 풍광이 가득…’아름다운 비행’

뉴질랜드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던 에이미(안나 퍼킨).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엄마를 잃고 아빠(제프 다니엘스)가 사는 캐나다의 한적한 시골 마을로 돌아간다.

10년만에 고향에 다시 돌아갔지만 발명가이자 예술가인 아버지는 하루 종일 작업에만 몰두하고 이제 13살 사춘기에 접어든 에이미는 엄마를 잃은 슬픔도 치유하지 못한 친구도 없이 힘든 나날을 보낸다.

어느 날 에이미는 개발업자들이 파헤친 늪지대에 남겨진 거위알을 발견하고 집으로 옮겨오고, 거위들은 부화되자마자 가장 먼저 본 에이미를 어미로 알고 에이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인공부화로 갓 태어난 조류들은 태어나는 순간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 즉 사람을 마치 어미로 인식하고 따라다니는데 이를 '각인'(imprinting)이라고 한다.

야생거위를 집에서 키우는 것은 불법이라며 경관이 날개깃을 손톱깎이로 자르려 하자 에이미는 패닉 상태가 된다. 

경관은 철새들은 추워지기 전에 남쪽으로 이동해야 하며 집에서 키우는 건 불법이라며 경고하고 떠난다. 아빠는 모터 글라이더로 철새를 훈련시키려 하지만 거위들은 아빠를 따라가지 않고 에이미 곁을 졸졸 따라다닐 뿐이다. 아빠는 결국  에이미를 위한 또 하나의 글라이더를 만들고 에이미는 조종을 배워간다. 그들이 갈 곳은 수백마일 떨어진 미국 남부 발할라 습지. 그 곳 역시 철새가 오지 않으면 개발로 늪 지대가 매립될 처지. 에이미의 비행은 성공할 것인가.

거위들을 무사히 이동시키기 위해 글라이더를 제작한 아빠.사진=IMDb
거위들을 무사히 이동시키기 위해 글라이더를 제작한 아빠.사진=IMDb

영화는 조각가이자 비행사인 빌 리쉬먼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빌은 조 더프와 함께 비영리단체 ‘Operation Migration(이동작전)'을 만들어 새들에게 안전한 이동경로를 만드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기록한 책이 ‘Father goose’다. 빌은 1993년 18마리의 철새들을 캐나다 온타리오주 스쿠곡 호수에서 버지니아까지 이주시켰다. 

엄마를 잃고 슬픔에 젖은 에이미가 16마리 거위들의 엄마가 되어 그들을 안전하고 따뜻한 곳으로 데려다 준다는 아름다운 가족영화로, 모터 글라이더와 거위들이 이동하는 동안 오색으로 물든 캐나다와 미국의 풍광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한편 빌이 남쪽으로 이주시켰던 거위들은 다음 해 고향 캐나다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시골집 코모리로 내려온 이치코. 혼자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시작한다.사진=네이버영화
시골집 코모리로 내려온 이치코. 혼자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시작한다. 사진=네이버영화

 

◆안분지족의 삶...’리틀 포레스트 : 여름과 가을’

안분지족 (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분수를 지키며 만족하고 살다.

도시에서 생활하다 텅빈 고향집 코모리로 내려온 이치코(하시모토 아이).  자급자족하는 농촌 생활을 홀로 시작한다.

코모리는 토호쿠 지방의 작은  마을, 상점도 없어서 시장보려면 면사무소가 있는 시내 농협의 작은 슈퍼까지 가야하는 곳.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자전거로 30분이지만 오는길은 얼마나 걸릴지. 그나마도 겨울에 눈이 오면 걸어가야 한다.

채소, 뿌리열매 등 제철마다 자연이 주는 선물로 매일 정성껏 식사를 준비한다. 음식을 직접 해먹으며 5년전 집을 떠난 엄마를 떠올리며 엄마가 만든 우스터소스도 만들어보고 푸성귀 볶음도 따라해본다. 하지만 엄마가 해 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사진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와의 식사를 떠올리는 이치코. 사진=네이버영화

엄마는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며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재배부터 조리까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영화는 음식 만드는 과정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잡초를 뽑고, 쌀을 수확하고, 고구마, 토란, 토마토 등을 심고 가꾸고 말리고 저장하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극중 친구 유우타(미우라 타카히로)는 노동의 가치를 말한다.
 

자신이 몸으로 직접 체험해서 그 과정에서 느끼고 생각하며 배운 것
자신이 진짜 말할 수 있는 건 그런거잖아.
그런 걸 많이 가진 사람을 존경하고 믿어.아무것도 한게 없는 주제에  뭐든 아는 체 하고 남이  만든 걸 옮기기만 하는 놈일 수록  잘난 척 해

   

누군가가 만든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될까. 스스로 체험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힘든지 공을 들이는지 알 길이 없다. 농촌은 살기 힘들고 부가가치가 낮은 곳, 그러나 이치코와 유우타는 땀을 흘리며 얻어냈고 그래서 땅은 너무도 정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일본의 이가라시 다이스케 작가의 동명 만화가 원작. 이후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편도 개봉됐으며 한국에서도 리메이크 되어 한국적 영상과 미식을 담아 관객의 호평을 받았다.

유우타는 코모리가 싫어 도시로 갔다가 "자기 인생과 마주하려고" 돌아왔을거라 짐작하면서 자신은 도망쳐 온거라 생각하는 이치코. 이유가 궁금하다. 영화 마지막에 도착한 엄마의 편지가 알려줄까. '리틀 포레스트 : 겨울과 봄' 편을 이어 감상하시길.

 

미국 시애틀을 배경으로 이만희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 한 '만추'. 사진=네이버영화
미국 시애틀을 배경으로 이만희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 한 '만추'. 사진=네이버영화

 

늦가을 시애틀에서 만난 운명적 사랑…’만추’

수인번호 2537번. 애나는 남편의 폭력을 피하다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러 수감됐다.

어머니의 부고로 7년만에 3일 간의 휴가가 허락된다. 장례식에 가기 위해 탄 시애틀 행 버스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 남자 훈. 그는 애나에게 차비를 빌린다. 여자들과의 조건만남으로 돈을 버는 일명 '호스트'. 그는 고객의 남편으로부터 쫓기는 신세.

7년 만에 가족을 만난 애나는 그러나 그들이 낯설다. 자신들 앞가림 하느라 바쁘고 어머니 집을 처분한다며 사인을 하라 재촉한다. 마치 그것을 위해 애나가 필요했던 것처럼.

우연히 다시 만난 애나와 훈. 그러나 애나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 3일째 되는 날 교도소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위로받고 싶어 훈과 함께 하지만 감정의 기복이 심한 애나. 훈은 돈은 안받을테니 함께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한다. 관광객처럼 시애틀 곳곳을 돌아다니며 낯선 이들 사이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두 사람. 애나는 처음으로 훈에게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러나 애나는 다시 교도소로 돌아가야 하고, 훈은 그를 쫓는 사람들을 피해 도망가야하는데.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사진
현빈과 탕웨이의 연기가 돋보이는 '만추'. 사진=네이버영화

이 영화는 이만희 감독의 '만추' (1966, 신성일, 문정숙 주연)를 리메이크 한 영화다. 김기영 감독(1975)과 김수용 감독(1981, 김혜자, 정동환 주연) 역시 리메이크한 바 있다.

버전은 달라도 교도소에서 잠시 휴가 나온 여자와 쫓기는 남자로 스토리를 이어간다. 이번 영화의 배경은 시애틀. 시애틀의 중국인과 한국인, 차가운 도시와 이방인들을 대조하면서 어디에서도 위로를 얻을 수 없는 남녀의 애틋한 마음을 그렸다.

안개낀 늦가을 시애틀의 분위기를 잘 그려냈으며 특히 잘 알려진 관광 스팟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

시애틀의 명소 '시애틀 퍼블릭 마켓',  '유니온 스테이션'과 '시애틀 덕투어' 관광 등을 영상에 담았다.

리메이크된 '만추'는 김태용 감독과 배우 탕웨이가 처음 만나 함께 작업한 작품. 이 작품이 인연이 되어 결혼에 이르렀다.  2014년 스웨덴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렸고 홍콩에서도 결혼식을 올리며 부러움을 샀다. 2016년에는 첫 딸 썸머(Summer)가 태어났다.

탕웨이,김태용 부부는 신작 '원더랜드'를 준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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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는 진부하나 뉴욕을 좋아한다면 볼만한 영화 '뉴욕의 가을'. 사진=네이버영화

 

청춘 스타 위노나 라이더 매력 돋보인 ‘뉴욕의 가을

뉴욕 유명 레스토랑 CEO 윌(리차드 기어)은 48세의 자유로운 영혼. 

뉴욕 센트럴 파크에서 만난지 한달도 채 안된 여자 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있는 그 때, 호수에서 혼자 보트를 타고 있는 샬롯(위노나 라이더)과 눈이 마주친다. 22세의 패션디자이너 샬롯은 우연히 윌의 레스토랑에서 생일파티를 하게되고 할머니의 지인인 윌과 인사하게 된다. 

윌은 샬롯 어머니와도 친구였던 사이. 나이 차이도 많은데다 사랑에 빠지는걸 두려워하는 윌과 달리 샬롯은 "전 골동품을 좋아해요"라며 윌에게 더 다가간다. 윌을 정말 좋아한다며 자신이 불치병에 걸린 것마저 고백한다.

그러나 일시적 감정에만 충실한 윌은 평소처럼 여성들과 관계를 이어가면서 자신은 절대 바뀌지 않을거라고 샬롯을 실망시킨다. 남은 시간을 자신에게 낭비하지 말고 소중한데 쓰라며.

샬롯의 병세는 악화되어 주치의는 길어야 1년을 이야기하는데, 수술을 거부하고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모르는  상태로 둘은 불안한 사랑을 이어가고. 윌과 샬롯은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낼 수 있을까.

낙엽으로 물든 뉴욕의 센트럴 파크와 맨해튼 거리의 데이트 장면 등 뉴욕의 매력이 흠뻑 묻어나는 영화. 또한 풋풋한 외모의 90년대 청춘 스타 위노나 라이더와 '아메리칸 지골로', '미스터 굿바를 찾아서'의 80년대 섹시 스타 리처드 기어의 투 샷은 보는 것만으로도 안구정화.

최근 '기묘한 이야기'에서 쥔공 어마로 나오는 위노나 라이더.사진=기묘한 이야기 캡쳐
최근 '기묘한 이야기'에서 주인공 윌의 엄마로 나오는 위노나 라이더. 사진=기묘한 이야기 캡쳐

 

'가위손'의 위노나 라이더는 71년생으로 벌써 48세.

청춘 스타, X세대, 중성적 패션, 짧은 커트머리 등 90년대 초 가장 기대되는 배우였던 위노나는 조니 뎁, 맷 데이먼, 키아누 리브스와의 스캔들로도 유명. 

연기력도 인정받아 '순수의 시대’(1993)에서 골든글로브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나, 2001년 LA 베벌리힐스의 한 백화점에서 고가의 의류와 액세서리를 숨겨 나가다 경비원에게 붙잡혔다. 

상습적인 도벽, 약물 중독 등의 사실도 드러나면서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480시간, 그리고 1만 달러의 벌금형을 받았다. 이 사건으로 오랜 침체기를 보냈던 위노나는 최근 넷플릭스 화제작 '기묘한 이야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6년부터 방송된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는 최근작 시즌 3로 넷플릭스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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