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동헌 칼럼] '한 편'과 '다른 한편'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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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동헌 칼럼] '한 편'과 '다른 한편'의 경제학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부교수
  • 승인 2019.08.19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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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계, 문정부 들어 경제정책 논쟁 적극 참여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정책, 한은 금리인상, 국가채무비율 논쟁 이어져
일본 수출규제로 치열하던 논쟁 숨죽여...균형 잡힌 정책모색 계기 되길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교수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부교수] 일본이 한국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수출을 제약하는 이상한 경제 조치를 취하기 전까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많은 질문을 받았고 할 말도 많았다.

경제학계, 문 정부 들어 경제정책 치열한 논쟁 벌여 

종종 현실 경제 문제에 대해 ‘한편으로는’과 ‘다른 한편으로는’이라는 자세로 임해 비판을 면치 못하는 경제학자들이 문재인 정부 경제 정책에 대해서는 점잖은 한국 경제학계 답지 않게 아예 ‘한 편’과 ‘다른 한 편’에 서서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가장 큰 논쟁의 대상이 된 주제는 물론 ‘소득주도 성장’이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로 인해 소득과 부의 격차가 위험한 수준으로 확대되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계기가 되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론'은 그러한 주장에 실증적 증거를 제공했다. 불평등의 확대, 특히 중산층의 붕괴와 저소득층의 저임금 및 고용불안정으로 인한 사회적 불안은 경제성장의 저해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포스트 케인지언이 아니라도 중산층의 재건과 저소득층의 소득환경 개선이 필요하다는 점에 많은 경제학자들이 동의했다. 문제는 불평등 개선을 위한 정책에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 있었던 것 아닌가 싶다.

성장이란 생산 측면의 현상이고, 소득 정책은 수요측면에서 경기 변동 대응 정책으로 활용된다는 논리를 갖고 있는 주류 경제학자들은 ‘케인지언 학파에서도 아주 작은 분파’인 포스트 케인지언의 논리에 따르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에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국제기구에서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정도를 권고하고 있다”며 국가채무비율 논쟁을 촉발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국제기구에서는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정도를 권고하고 있다”며 국가채무비율 논쟁을 촉발했다. 사진= 연합뉴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정책...공감과 논란 섞여있어

다음으로 논쟁의 대상이 된 주제는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여겨지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였다.

우리 경제에서 최저임금 수준의 적정 수준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이 있겠으나, 문재인 정부가 집권하기 전 대선 기간 동안 최저임금에 대한 모든 후보의 태도에 비추어 볼 때 한국 경제 성장 단계에 비해 최저임금이 낮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률은 우리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영업 부문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로 인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저소득층 소득 증대 효과보다도 일자리 감소라는 부정적 효과가 더 크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노동연구원 등 국책연구기관에서 최저임금이 실업률 상승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연구논문을 제시하였고 통계청의 계층별 소득발표 자료를 두고서도 다분히 감정적 논쟁이 벌어졌다.

저소득층의 저임금 문제와 고용불안정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최저임금 인상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추진 문제와 더불어 소위 을과 을의 갈등을 유발한 것으로 비춰지면서 성급한 정책으로 비판 받기도 했다.

정부의 정책 방향과 관련된 이들 논쟁에 비해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 여부에 대한 논쟁은 비교적 차분하게 진행된 편이었다.

지금은 대내외적으로 경기하방 위험이 워낙 뚜렷해서 금리 인하 정책에 이견이 없는 편이지만 2017년 11월과 2018년 11월 금리를 인상할 때만 해도 국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 미국 금리 인상에 맞추어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

한국은행으로서는 내외 금리차 확대에 따른 외자유출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초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총수 들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자리에는 5대 그룹을 포함해 총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30개사와 경제단체 4곳이 참석했다. 사진=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7월초 청와대에서 30대 기업 총수 들을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관련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날 자리에는 5대 그룹을 포함해 총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30개사와 경제단체 4곳이 참석했다. 사진= 연합뉴스

국가채무비율 논쟁 커지다가 일본 수출규제에 압도돼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가 있기 직전, 다시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적정 재정적자 규모에 대한 문제였다.

현 경제 상황에 비추어 적극적인 재정지출의 역할이 필요함에도 국내총생산 대비 40% 수준으로 국가채무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소득주도성장이나 최저임금 문제만큼 일반에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첨예하게 논쟁이 이루어진 주제로 볼 수 있다.

현재 수준의 재정건전성 유지를 주장하는 측은 정부가 경제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개선은 등한시 한 채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손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가진다. 저출산 고령화라는 인구 구조적 문제가 향후 커다란 재정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국가 채무를 늘리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도 주장한다.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 대비 40%를 넘기더라도 확장적 재정을 운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은 실질이자율이 경제성장률을 밑도는 상황에서 경기 부진에 대응하여 확장 재정을 운용하기 위해 국내에서 국채 발행을 늘려도 향후 국채상환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또 경기 침체기에 소극적인 재정 운용으로 경기 회복을 지연시키고 성장잠재력 축소를 방치하는 것이 오히려 무책임한 재정운용 행태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던 이러한 논쟁들이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 이후 단숨에 물밑으로 가라앉아버렸다. 일본의 수출 제약 조치 문제는 기존의 경제정책 관련 논쟁을 일거에 압도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제약 조치에 대해서는 경제학자가 할 말도, 또 경제학자에게 던질 질문도 많지 않다. 우리가 선택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뿐더러 일본의 의사결정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본은 스스로가 국제 무역 질서에서 믿을 수 없는 국가임을 선언했다. 믿을 수 없는 교역국에 대해서는 의존도를 줄이는 방법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논쟁이 가라앉은 지금에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 그리고 확대 재정정책에 대한 그간의 논쟁을 돌아본다.

‘한편’과 ‘다른 한편’을 가진 정책의 양면을 경제 상황에 비추어 저울질하면서 적정한 정책 강도와 진행속도를 모색하기 보다는 ‘한 편’과 ‘다른 한 편’이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우면서 대립 상황이 지속되어 온 것은 크게 아쉬운 일이다.

일본의 수출 제한 조치는 경제정책을 두고 맞서던 이해당사자들이 뜻하지 않게 한 발 물러서는 계기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당장은 대외 갈등 현안을 풀어내는 데 초점을 두면서도 이번 기회가 그간의 대립적 논쟁을 넘어서 균형 있는 경제정책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래본다.

● 주동헌 한양대 경제학부 부교수는 1996~2011년 한국은행 자금부, 금융시장국, 조사국 등에서 근무했다. 2009년 미국 일리노이 주립대학(아바나샴페인 소재)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8년부터 금융위원회 경쟁도평가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2011년부터 한양대에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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