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코드] 그 옛날 할리우드에서 어떤 일이…명감독 로만 폴란스키 부부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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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코드] 그 옛날 할리우드에서 어떤 일이…명감독 로만 폴란스키 부부의 비극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08.19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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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하반기 개봉 예정
광신도 집단에 살해당한 여배우 샤론 테이트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비극 담겨
성범죄로 체포됐다 풀려난 폴란스키...유럽서 만든 명작 많지만 할리우드 재입성 '불투명'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포스터.사진=IMDb
'Once upon a time in Hollywood' 포스터.사진=IMDb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는 2009년 전쟁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의 원제를 '옛날 옛적에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서 (Once upon a time in Nazi-Occupied France)'로 붙이고 싶어했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대부 세르지오 레오네의 ‘원스 어 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에 대한 오마쥬인 것이다. 1989년 타계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였다.

끝내 아쉬웠던지 타란티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라는 제목의 영화를 완성했다. 지난 5월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이 영화는 국내에는 하반기 개봉 예정이다.

영화는 1969년  LA의 한물간 웨스턴 TV 스타 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그의 친구이자 대역 배우인 클리프(브래드 피트)가 할리우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릭과 클리프는 가상의 인물들이지만 영화 속 배경이나 에피소드들은 팩트를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에선 어느 날 이들 옆 집에 사는 여배우가 살해당하는 사건을 다루는데  이것이 바로 할리우드 최대의 비극적 사건으로 불리는 '여배우 샤론 테이트 살인사건'이다.

 

영화 ' Eye of the Devil' 스틸 컷. 사진=IMDb
실존 인물이었던 영화배우 샤론 테이트. 영화 ' Eye of the Devil' 스틸 컷. 사진=IMDb

 

◆샤론 테이트 그리고 추방된 천재 감독

1969년, 사이비 종교집단 '맨슨 패밀리'의 교주인 찰스 맨슨의 추종자들이 영화배우 샤론 테이트와 친구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 배우 중 한 명이었던 샤론은 미모와 연기로 이제 막 주목받기 시작한 영화배우이자 사교계의 스타였다.

가수가 되고 싶던 찰스 맨슨은 한 음반 제작자에게 자신의 음악을 들려줬으나 그가 혹평을 퍼붇자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그 제작자의 집을 습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제작자는 이미 이사한 후였고 파티를 즐기던 샤론 테이트와 지인들은 아무런 이유없이 사이코패스들에 의해 살해당한 것이다.

영화감독이었던 샤론의 남편은 런던에서 영화 시사회에 참석중이었다. 그가 바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이다. 샤론 테이트와 폴란스키는 영화 ‘박쥐성의 무도회’에서 주연배우와 감독의 관계로 만나 1968년 결혼했다. 하지만 다음 해 1969년 임신 8개월이던 아내 샤론이 죽음을 당한 것. 비탄에 빠진 폴란스키는 할리우드를 등지고 유럽으로 향한다.

로만 폴란스키(왼쪽)와 샤론 테이트. 사진=IMDb
로만 폴란스키(왼쪽)와 샤론 테이트. 사진=IMDb

로만 폴란스키는 1933년 파리에서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부모와 함께 1936년 폴란드로 돌아갔으나 가족 모두 체포돼 유태인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 아버지는 후에 살아 남았으나 어머니는 아우슈비츠에서 사망했다.

아버지와 함께 체포될 당시 일곱살이던 폴란스키는 수용소를 탈출, 폴란드 시골을 돌아다니며 부랑아처럼 음식을 구걸하거나 훔쳐 끼니를 이어갔다고 한다. 그러다 나치 병사들을 만나 그들 사격 연습을 위해 목표물을 들고 조수 노릇도 했다고 전해진다.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와 재회했으나 기술 학교에 가라는 아버지 뜻을 따르지 않고 폴란스키는 영화 쪽으로 자신의 관심을 이어 나갔다. 1953년 배우로 먼저 영화에 데뷔했던 폴란스키는 '폴란드 우츠 국립영화학교'( Łódź Film School)에 입학한다.

1962년 발표한 장편 데뷔작 ‘물속의 칼 ‘(1962)는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 영화상 후보에 오른 수작이었다. 그 후 ‘반항’(1965)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 ‘막다른 골목’(1966)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 황금 곰상 (대상)을 수상하며 전도유망한 감독으로 이름을 알린다.

1968년 할리우드로 진출한 폴란스키는 심리 스릴러 ‘로즈마리의 아기’를 발표했지만 아내의 죽음 후 유럽으로 돌아가버린다. 1974년 다시 미국에 돌아와 ‘차이나 타운'을 발표하는데, 이 영화는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 미스테리물로, 그는 골든 글로브 작품상, 감독상 등 4개부문과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한다. 특히 주연배우 잭 니콜슨은 이 영화로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외 주요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다.

'차이나타운'의 성공 후 폴란스키는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가나 싶었으나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기게 된 사건이 일어난다.

폴란스키는 1977년 잭 니콜슨의 집에서 당시 13세였던 배우지망생 소녀에게 술과 최면제를 먹이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 (당시 잭 니콜슨은 집에 없었다) 폴란스키 감독은 플리바겐(plea bargain, 유죄인정후 감형 협상)후 구금에서 풀려났으나 판사가 플리바겐을 파기하고 징역형을 선고할 것이 예상되자 선고 직전 파리로 도망가버렸다.

프랑스와 미국은 범죄인 인도조약이 체결되지 않았기 때문에 폴란스키는 현재도 파리에서 거주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고 있다.

'대학살의 신' 촬영 중인 폴란스키(가운데). 왼쪽 존 C.라일리,오른쪽 조디 포스터.사진=네이버영화
'대학살의 신' 촬영 중인 폴란스키(가운데). 왼쪽 존 C.라일리,오른쪽 조디 포스터.사진=네이버영화

 

◆‘테스’와 ‘피아니스트’ 등 작품으로 인정받은 폴란스키 

1979년 ‘테스’는 프랑스에서 촬영됐다. 생전에 아내 샤론은 토마스 하디의 소설 '테스'를 폴란스키에게 읽어보라 권했고 둘은 샤론을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을 계획이었다. 폴란스키는 영화를 그녀에게 헌정했다.

원작의 스토리에 충실하면서 영상미와 음악이 잘 조화를 이룬 '테스'는 폴란스키의 뛰어난 연출력으로 개봉되자마자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당시 18세였던 신인배우 나스타샤 킨스키는 청순하면서도 강인한 여성상을 연기, 골든 글로브 신인여우상을 수상했고,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 그리고 아카데미 미술상, 의상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2002년 개봉한 ‘피아니스트’는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들 중 걸작으로 손꼽힌다. 유대인 피아니스트 스필만의 자서전 ‘피아니스트’를 영화화한 것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유대인 가족이 나치의 침공에 의해 해체되는 모습을 그렸다. 

독일군 장교(토마스 크레슈만,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독일인 사진기자 역할의 배우) 앞에서 자신이 피아니스트임을 증명하기 위해 쇼팽을 연주하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힌다.

독일군 앞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스필만.사진=네이버영화
독일군 앞에서 쇼팽을 연주하는 스필만.사진=네이버영화

폴란스키는 정치와 이념을 배제하고 전쟁의 광풍 속에 철저히 파괴되는 인간 군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 영화는 실존 인물인 스필만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폴란스키 감독의 자전적 스토리기도 하다.  칸 국제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아카데미 각색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당시 69세로 여전히 파리에 머물던 폴란스키는 직접 수상할 영광을 시상자 해리슨 포드에게 넘겨줄 수 밖에 없었다.

폴란스키는 2009년 '취리히 영화제'에서 공로상을 받기 위해 스위스에 입국했으나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체포돼 가택연금 상태로 10개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 후 스위스 당국은 미국의 신병인도 요청을 거절하고 그를 풀어주었다. 두번째 체포에서도 그는 운좋게 피할 수 있었다. 

폴란스키는 여전히 유럽을 무대로 활발히 작품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 ‘유령작가’로 베를린 영화제 은곰상 (감독상)을 수상했고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 번지는 블랙 코미디 '대학살의 신’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학살의 신'은 미국 뉴욕 브루클린이 배경으로 설정됐으나 실제 촬영은 파리에서 이뤄졌다. 조디 포스터, 케이트 윈슬렛, 크리스토프 왈츠, 존 C. 라일리 등 당대 할리우드 톱 클래스 배우들이 그의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기꺼이 대서양을 건넜다.

할리우드에선 그의 비극적인 삶에 대한 연민과 외교적인 갈등을 거론하며 이제 86세로 고령인 폴란스키에게 선처를 베풀자는 영화인들과 미성년자 성범죄는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영화인들이 최근까지도 팽팽히 맞선 상황이다.

2017년 최초 피해자였던 여성이 사건종결을 탄원했음에도 불구하고 3명의 피해자가 더 등장하는 바람에 그의 할리우드 재입성은 요원해졌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수용소에서 탈출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훗날 사랑하는 아내마저 참혹하게 잃었던 폴란스키. 게다가 자신의 성범죄로 40여년 동안 미국으로부터 쫓기는 신세인 폴란스키 감독. 

로만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 만큼이나 무겁고 비극적이며 때로는 잔인한 묘사로 관객들의 호불호가 갈리지만  장르를 떠나 폴란스키의 영화들은 뛰어난 심리묘사와 인간의 부조리에 대한 관조가 뛰어나 미장센 만큼은 최고로 손꼽히는 감독으로 평가 받는다.

최근엔 유대계 프랑스 장교 드레퓌스의 일대기를 그린  '더 드레퓌스 어페어' (J'accuse)의 촬영을 마쳤고 하반기 개봉 예정(유럽)이다. '아티스트'로 아카데미 주연남우상을 수상한 장 뒤자르뎅이  주연을 맡았다.

 

"Films are films, life is life."  (로만  폴란스키, IMDb)

 

"영화는 영화, 인생은 인생."

그의 영화는 훌륭하다. 그의 인생은,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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