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록 칼럼] 한국경제의 진단과 처방③ IMF 트라우마 깰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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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록 칼럼] 한국경제의 진단과 처방③ IMF 트라우마 깰 때가 됐다
  •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 승인 2019.08.12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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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일, 일본 각각 특유의 '트라우마' 있어
한국 '외환위기 트라우마'...작은 충격에도 불안심리 확산, 당국의 정책폭 좁혀
대외환경에 급변 않는 단단한 '외환 하부구조' 만들어야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 사람마다 트라우마가 있어 거길 건드리면 민감하게 반응한다. 국가도 트라우마가 있다. 일종의 집단 트라우마로 이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까지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하고 지속적이다.

미국은 대공황 트라우마...실업에 민감  

미국은 1929년의 대공황 트라우마가 가장 강하다. 미국 통화정책이 물가 못지 않게 실업에 맞춰져 있는 이유다. 그래서 충격이 왔을 때 금리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인하한다. 1987년 10월 19일 하루만에 주가가 20% 이상 빠졌을 때 그린스펀은 파격적으로 금리를 인하했다.

독일의 트라우마는 1차 대전 후의 초인플레이션(하이퍼 인플레이션)이다. 독일 사람들은 당시에 빵 사러 갈 때 수레에 돈을 싣고 다닌 일, 그리고 이것 때문에 히틀러가 등장한 뼈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있다. 오늘날 짐바브웨가 천문학적인 인플레를 보였다고 해도 우리는 독일 사람들이 수레에 돈 싣고 다니는 걸 더 선명하게 기억한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인플레에 강경 대응하는 걸로 유명하다.

독일은 초인플레, 일본은 자산 버블붕괴 '트라우마'

일본은 자산 버블 붕괴 트라우마가 있다. 센 마사오는 나훈아와 같은 일본의 국민가수로 <북녘의 봄>이라는 노래가 유명하다. 1980년대에 부동산을 샀다가 급등하는 바람에 그 길로 가수를 그만 두고 전업 부동산 투자업자로 나섰다. 보유 부동산이 한 때 3조원에 이를 정도였으나 버블 붕괴 후에는 부채를 1조원 지게 되었다. 할 수 없이 다시 가수로 복귀했다. 일본의 주식시장 역시 주가가 1980년대에 6배 오르면서 한 때 시가총액이 미국을 앞질러 세계 1위를 차지했다가 버블붕괴로 침체의 세월을 20년 이상 겪었다. 이 트라우마로 아직도 투자자산을 갖지 않고 연금, 예금,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4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2천억달러가 넘는 국민연금 보유 해외자산에도 한국 외환시장은 해외 악재에 쉽게 동요되기 일쑤다. 이런 '외환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할 때다. 사진= 연합뉴스
4천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액과 2천억달러가 넘는 국민연금 보유 해외자산에도 한국 외환시장은 해외 악재에 쉽게 동요한다. 이런 '외환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할 때다. 사진= 연합뉴스

한국은 외환 '트라우마'...이번에 '제2의 IMF' 공포 불거져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과 혹독한 구조조정 때문에 우리는 외환위기라 하지 않고 그냥 ‘IMF’라고 할 정도다. 뒤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키코(KIKO) 사태를 겪으면서 1997년 외환위기는 기억에 고착화되었다. 10년 동안 두 번의 외환시장 충격을 받은 셈이다.

펀더멘탈 잘못 보다는 외환 부족과 외환관리의 미숙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외환위기는 기업의 과다한 설비투자와 기업부채, 그리고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라는 문제가 있었지만, 이 이유만으로 알짜 자산을 싼 값에 팔고 온 국민이 엄청난 구조조정을 감내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이후 경상수지 흑자 행진과 함께 외환보유고를 4천억 달러 이상 쌓았다. 외환보유고 확충과 함께 외환시장 제도 변화도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그림>에서 보듯이 원/달러 환율의 변동성이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외부적인 충격이 오면 이전처럼 다시 원/달러 환율이 크게 상승할 거라는 두려운 마음은 여전하다. 외환위기 때의 환율 2000원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1600원은 우리가 두려워하는 숫자이다.

이번 韓日 경제전쟁과 美中 무역분쟁으로 주식, 환율 등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 사람들은 달러를 매입했다. '제2의 IMF가 온다'는 말들을 한다. 그 가능성이 낮은 데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이 쉽게 믿어버릴 정도가 되었다. 이러니 환율이 조금만 올라도 당국으로서는 큰 부담이 된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수출 국가여서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 이익과 수출에 도움이 되는데도 불구하고, 외환시장 불안이 만(萬)의 하나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보유고 '많을수록 좋다'...환헤지 안한 국민연금 외화자산 200조원대 

외환시장 트라우마는 우리의 아킬레스건이다. 한국경제는 이 트라우마를 불식시킬 하부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우선, 외환보유고는 충분해야 한다.

한 때 적정 외환보유고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너무 과다한 외환보유고는 기회손실을 가져온다는 논리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과 정상인을 동일하게 취급하면 안 된다. 그뿐 아니라 금융시장은 놀란 토끼처럼 과민하게 반응한다. 외환보유고는 많을수록 좋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시스템 리스크 문제가 생길 때 결정적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성 문제는 보유 외환을 수익성 있는 자산으로 운용하면 된다.

반도체 경기 호황은 우리에게 외환을 축적할 좋은 기회를 주었다. 경상수지 흑자와 함께 축적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경상수지 균형이 좋다는 논리는 우리에게 부적합하다. 독일도 GDP대비 7%에 이르는 경상수지 흑자를 보이고 있다.

둘째, 외환보유고 이외의 민간 보유 외환을 확충해야 한다. 국민연금이 외화자산을 환헤지 않기로 한 것은 시사점이 크다. 5월말 현재 해외투자금이 230조원으로 전체 기금자산의 33%를 차지한다. 5년 후에는 50%를 목표로 한다고 한다. 최대 적립기금이 2041년 1800조원으로 전망하는데 이 경우 외화자산은 900조원에 육박한다. 외환이 부족할 경우 그 자산을 팔면 외환을 공급할 수 있다.

개인 해외투자 '달러 조절 창구'...강력한 응징 의지도

그 외에 민간이 보유하는 해외자산이 앞으로 많아질 전망인데 이들을 환헤지 하지 않을 경우 비상시에 달러 공급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개인 거주자외화예금이 2015년 75억 달러에서 2019년 6월 147억 달러까지 증가했다. 해외펀드, 해외주식, 해외채권 매수도 늘고 있다. 시장 상황을 봐 가면서 가급적 환헤지 하지 않은 외화자산을 보유하도록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연금 적립금이 줄어들 때를 대비해서 퇴직연금 등을 해외자산으로 분산하는 것도 장기적으로 중요한 과제다. 이들 민간 외환보유고는 심장을 보완하는 허벅지 근육 같은 역할을 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스왑 협정과 같이 국가간 협력체제를 마련하고 환에 대한 ‘투기’는 강력히 응징된다는 신호를 보내줘야 한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한국을 한번씩 흔들면 돈을 번다는 인식이 심어져서는 안 된다. 외환 포커판의 ‘봉’은 되지 말아야 한다. 영국은 1992년에 소로스의 파운드화 공격에 무릎을 꿇은 경험이 있다. 금융시장 사람들은 이 사건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당시 만평은 대영제국이라는 늙은 사자가 늑대에게 힘 없이 공격 당하는 걸로 묘사했다. 글로벌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판돈도 많고 실력도 프로다.

결국 거시경제, 재정수지, 경상수지와 같은 펀더멘탈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함은 더 말할 필요 없다.

외환 트라우마 불식시킬 하부구조 만들어놔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 자라는 육식동물로 한 번 물면 놓지 않아서 자칫 손가락이 잘릴 수 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 것이다. 금융자산이 축적되고 있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있는 때에 외환 트라우마를 불식시키기 위한 구조들을 만들어 놓았으면 한다. 이를 통해 고수익채권 신용스프레드처럼 환율이 퀀텀점프 하듯 급상승하는 환율 프로세스를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장기신용은행을 시작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 채권운용 CIO, 미래에셋캐피탈 대표이사, 미래에셋자산운용 경영관리부문 대표이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미래에셋은퇴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앞으로 한국과 글로벌 경제에 대한 진단과 전망의 글을 정기적으로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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