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뼛속까지 포철인' 故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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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뼛속까지 포철인' 故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
  • 이성노 기자
  • 승인 2019.08.08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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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향년 87세로 별세...박태준 전회장 권유로 포스코 창립멤버로 입사
'실패하면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로 일했다고 회고
삼성, 고려제강으로 이직하다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으로 복귀해 은퇴

[오피니언뉴스=이성노 기자] "1968년 포스코가 창립되고 생산관리부에 잠깐 있은 뒤부터 나의 부서이동 역마살(驛馬煞)이 발동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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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창립 요원인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이 7일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사진제공=포스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후 일본이 제공한 보상금 일부로 지었다는 포항제철. 한일간 경제전쟁이 격렬한 가운데, 포항제철을 지은 창립멤버중 한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어제(7일) 향년 87세로 별세한 고(故)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 자신의 회고록에 잦은 이직을 '역마살'이라고 자조했지만, 포스코를 일구고 한국의 산업시대를 연 주역의 '인생 역정'인 셈이다.  

장 전회장은 지난 1968년 당시 34명의 포항종합제철 창립 요원 가운데 한 명으로 입사했다.  그는 생산관리부를 시작해 건설본부, 토건부 조정과장, 기획조정실 차장, 본사 기술부장, 설비기획부장, 건설공사부장, 기술실장, 제철소 생산관리부장, 기획실장, 설비계획부 부본부장 등 다양한 부서를 경험·경영했다. 

그는 창립 요원들과 함께 '롬멜 하우스'로 불렸던 경북 포항시 영일만 해변 제철소 공사 현장의 건설사무소에서 숙식하며 '실패하면 모두 영일만에 빠져 죽는다'는 각오로 일했다고 한다.  포스코를 국내 1위·세계 2위의 철강업체로 성장하는 토대를 마련한 인물이었다.   

◆대한중석서 '박태준' 만남, 인생 전환점

장 전 회장은 지난 1932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경북고와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그의 첫 직장은 대한중석. 여기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고(故)박태준 전 포스코회장과의 만남이 이뤄진다. 1964년 대한중석 사장으로 박 회장이 부임했던 것.  

장 전 회장은 회고록에서 "박태준 사장과 첫 조우가 이루어진 것은 대한중석에서 7년쯤 근무했을 때"라며 "상동광산, 서울제련소를 거쳐 본사 기술부에 있을 때 박 사장이 취임했다"고 회상했다. 

장 전 회장에 따르면 당시 대한중석은 좋은 직장으로 통했지만 제때 급여를 주지 못할 정도로 경영이 악화돼 있었다. 월급 대신 쌀표를 주기도 했다. 박 전 명예회장이 경영혁신에 나서면서 외부 인력을 발탁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황경로 전 포스코 회장으로 개혁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한다. 

황 전 회장 역시 포스코 창립 인사로 박 전 명예회장에 이어 포스코 제2대 회장을 역임했다. 지난 1992년 10월, 당시 박 전 명예회장이 김영삼 정부와 갈등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나자 당시 부회장이었던 황 전 회장이 긴급이사회를 통해 회장으로 선임됐다. 황 전 회장은 이듬해 3월 정기주주총회를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1996년 포스코 고문 겸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으로 선임돼 포스코에 복귀했다.  

◆ 1968년 포스코 창립 요원으로...'실패하면 죽는다'

장 전 회장은 대한중석에서 박 전 명예회장, 황 전 회장과 함께 의기투합하며 경영혁신에 이바지했다. 대한중석은 1967년 정부가 주도한 철강육성 계획에 따라 종합제철사업의 주체로 선정됐고, 이듬해 포스코(당시 포항제철)가 대한중석을 모태로 설립됐다. 장 전 회장은 박 전 명예회장의 권유로 황 전 회장 등과 함께 포스코 창립에 힘을 보탰다. 

장 전 회장은 포스코 입사 이후 16년간 생산기술부에 이어 기획, 기술, 생산관리 및 설비기술본부를 거친 끝에 임원 타이틀을 달았다. 이후 관리, 재무 , 판매, 운송, 총무, 인사 등을 거쳤다.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해 3월 26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 창립요원 초청 만찬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장경환 전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이 지난해 3월 26일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포스코 창립 50주년 기념 창립요원 초청 만찬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제공=포스코

특히, 포항제철 도쿄사무소장을 맡고 있던 1983년에는 박 전 명예회장의 지시를 받아 광양 2제철소 건립을 위해 일본 철강업계의 협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당시 일본의 기술협력으로 한국 철강업계가 오히려 일본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일본내 인식이 강해 지원을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장 전 회장은 이나야마 요시히로 신일본제철 회장을 설득한 끝에 일본의 협력을 이끌어내 광양만 제2제철소 건설에 일등 공신이 됐다. 

장 전 회장은 박 전 명예회장과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명예회장의 메신저 역할도 했다. 장 전 회장의 아버지인 고(故) 장영모 전 의원과 이 명예회장은 대구에서 양조장 사업을 함께 했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와세다대학교 동문이기도 한 이 전 회장과 박 전 회장은 장 전 회장의 가교 역할에 친분을 쌓게 됐고 추후에는 이 전 회장이 박 전 회장에서 삼성중공업을 맡기고 싶어할 정도로 신뢰가 두터운 사이로 발전하게 됐다. 

◆회사 옮기기도 했지만, 결국 포스코에서 은퇴

장 전 회장 역시 이 회장과 교분으로 1985년에는 삼성중공업으로 넘어가 기계·특수부문 부사장과 사장을 지냈고, 1989년에는 삼성그룹 일본 총괄 사장을 맡기도 했다. 

몸은 삼성으로 옮겼지만, 광양제철소 설비 제작과 설치 공사 등에도 참여했던 장 전 화장은 1991년 다시 포스코로 돌아와 사장 대우와 회장 특별보좌역까지 역임했다. 

이후 1994년에는 고려제강그룹 용접봉회사에서 고문을 역임했고, 1999년 다시 포스코로 복귀해 포스코경영연구소 회장으로 근무하다 2002년 모든 직무에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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