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코드] 침탈과 폭력에 맞선 이들을 기억하라…저항영화 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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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코드] 침탈과 폭력에 맞선 이들을 기억하라…저항영화 네 편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08.07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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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 소재로 실존 인물, 가공 인물들이 그려낸 저항영화 네 편 추천
'밀정'의 이병헌 대사 "실패가 쌓여도 높은 곳으로 전진한다"
단식투쟁 '헝거' "제겐 신념이 있고, 그게 가장 큰 무기예요"
등장인물들의 용기있는 행동, "인간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 던져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 유대인 여성과 복수와 '개떼들'의 활약을 그린 '바스터즈'.사진=IMDb
나치 점령기의 프랑스. 유대인 여성의 복수와 '개떼들'의 활약을 그린 '바스터즈'.사진=IMDb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존엄을 침해받아선 안된다. 그가 설령 나와는 다른 인종, 다른 민족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나와 이념과 사상이 다르다 하더라도 말이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수많은 전쟁이 발발하고 침략과 찬탈이 이뤄졌으며 무고한 이들이 희생됐다. 그들은 나라를, 자유를, 존엄을 박탈당했다. 역사적 사실은 기록을 통해 인지되지만 예술 작품으로 구현됐을 때 더 생생하고 감동은 증폭된다.

이번 주 시네마코드에서는 역사를 모티브로 때로는 사실적으로, 때로는 판타지와 픽션을 가미해 완성한 웰메이드 영화 네 편을 추천한다.

영화 속 인물들이 겪었을 고통과 좌절, 그리고 마침내 이루어낸 용기있는 행동들은 시공간을 넘어 우리에게 크나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인간다움'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던져 준다. 

 

항일 의열단의 투쟁을 그린 영화 ’밀정’

‘밀정’(2016)은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조선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의열단 이야기다.

1923년 일본 경찰관이었던 황옥이 의열단 단원과 함께 중국에서 국내로 폭탄을 반입했다가 발각된 '황옥 경부 폭탄사건’을 배경으로 했다. 극 중 인물들은 가명이지만 대부분 실존 인물이다.

경무국 경부 이정출(송강호)은 의열단의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고미술상으로 위장한 의열단원 김우진(공유)에 접근한다. 둘은 서로의 정체를 알아채지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탐색한다.

구인 의열단원 김장옥을 살리지 못해 마음이 괴로웠던 이정출은 김우진을 감시하러 상해까지 따라갔다가 미술품으로 위장한 폭탄을 경성까지 무사히 옮기게 도와달라는 김우진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일본 형사들과의 총격전 후 열차에서 뛰어내려 사라진다.

폭탄은 무사히 경성으로 옮겨졌으나 이 과정에서 대부분 의열단원들은 숨지거나 투옥되고, 일본 경찰복을 벗은 이정출은 김우진이 자신에게 맡겨놓은 폭탄을 들고 일본 경무국 파티에 잠입하는데…

조선인이면서 일본 경찰인 이정출은 김우진을 만나면서 갈등한다. 사진=네이버영화
조선인이면서 일본 경찰인 이정출(맨 오른쪽)은 의열단원 김우진을 만나면서 갈등한다.사진=네이버영화

의열단은 1919년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 독립운동단체로 1920년대부터 부산경찰서 폭파사건, 상하이 황포탄 의거, 종로경찰서 폭탄투척, 동양척식주식회사 및 식산은행 폭탄투척 의거 등의 활동을 벌였다.

의열단 단장 정채산(이병헌)은 김원봉을 모델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창단하고 요인 암살이나 일제 관공서 타격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벌인 인물.

특별 출연한 이병헌은 분량이 많지 않지만 묵직한 대사를 남겼다.

이정출에게서 폭탄을 넘겨 받은 의열단원 선길(권수현)이 전하는 정채산의 말은 의혈단원들에게, 아니 지금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인 듯 깊은 울림이 있다.

 

"우린 실패 해도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실패가 쌓여 그 실패를 딛고서 앞으로 전진하고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서야 합니다."

 

’옛날 옛적 나치가 점령한 프랑스에서’…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2009)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5개의 에피소드가 순차적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나치의 대대적인 유대인 소탕 작전으로 프랑스 농가에 피신한 쇼산나(멜라니 로랑) 드레퓌스 가족.  유대인 사냥꾼으로 불리는 한스 란다 대령(크리스토퍼 왈츠)은 지하에 숨어있는 그녀의 가족에게 총격을 가하고 쇼산나는 기적적으로 도망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그녀는 이름을 바꾸고 파리의 한 영화관을 인수한다. 전쟁 영웅으로 불리며 나치의 선전 도구로 이용되는 독일군 졸러(다니엘 뷜러)는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며 자신이 주연한 영화 시사회를 쇼산나의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편 유대계 미국인들로 게릴라 부대 ‘바스터즈’를 결성, 게슈타포와 SS(나치 친위대원)을 암살하고 머리 가죽을 벗겨내 '아파치 알도'로 불리는 알도 레인(브래드 피트) 중위는 영국군과 새로운 작전을 꾸미는데...이중첩자 브리짓 본 하머스마크(다이앤 크루거)의 정보에 따르면 괴벨스(나치 정권의 선전장관) 등 독일군 장교들과 히틀러가 쇼산나의 극장에서 열리는 시사회에 참석한다는 것.

바스터즈의 암살 모의는 모른 채 쇼산나는 부모의 복수를 꿈꾸며 독일군 장교들을 몰살 시킬 계획을 세운다. 나치 선전 영화 ‘조국의 자랑’ 의 상영이 시작되고 바스터즈와 쇼산나의 작전도 개시된다.

 

유대계 미국인 게릴라 부대 '바스터즈'의 리더 알도 메인역의 브래드 피트(오른쪽)와 도니 병장 역의 일라이 로스. 사진=네이버영화
유대계 미국인 게릴라 부대 '바스터즈'의 리더 알도 메인역의 브래드 피트(오른쪽)와 도니 병장 역의 일라이 로스. 사진=네이버영화

 

타란티노가 10년에 걸쳐 각본을 완성했다고 알려져 있다. '전쟁영화'  혹은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로 염두에 두고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가 고려했던 제목 '옛날 옛적에 나치 점령 프랑스에서(Once upon a time in Nazi-Occupied France)'는 결국 첫번째 에피소드 소제목으로 사용했다. ('0nce upon a time in the west'라는 스파게티 웨스턴 무비에 대한 오마쥬)

한편 타란티노는 란다 대령 역할에 맞는 배우를 찾지 못해 영화를 포기할까도 고민했다. 그러다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 크리스토퍼 왈츠를 만나서 오디션을 본 후 바로 캐스팅을 결정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토퍼 왈츠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심지어 이탈리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왈츠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같은 타란티노 감독 영화인 ‘장고:분노의 추적자’ 에서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파시즘을 고발한다…영화 ’판의 미로’

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파시스트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군은 산으로 쫓겨 들어갔고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은 곳곳에 배치됐다. 

오필리아(이바나 바쿠에로)는 만삭의 엄마와 함께 새아버지 비달 대위(세르지 로페즈)가 있는 숲 속 진지로 거처를 옮긴다. 재단사였던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냉혹한 새아버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오필리아는 어느 날 숲 속에서 숨겨진 미로를 발견한다. 그곳에서 기괴한 모습의 요정 판(더그 존스)를 만나는데 판은 ‘거짓도 고통도 없는’ 지하왕국에서 도망친 공주가 오필리아라고 생각하고 보름달이 뜨기 전까지 세 가지 임무를 끝내면 다시 지하왕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선택의 책'을 건넨다.

오필리아는 비인간적이고 폭력이 난무한 인간 세계를 떠나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세가지 임무를 완수하려 하는데...

새아버지 비달대위로부터 겁박을 당하는 오필리아.사진=네이버영화
새아버지 비달대위로부터 겁박을 당하는 오필리아.사진=네이버영화

영화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2006)는 스페인 내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판타지를 결합한 영화로 스페인 내전은 인민전선이 집권하자 독일과 이탈리아 독재정권의 도움을 받은 프랑코 장군이 반군을 조직해 벌인 비극적인 전쟁이다.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는 바로 스페인 내전 중 프랑코 장군을 지지하는 독일 비행기가 스페인 북부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 2천여명의 무고한 시민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피카소가 완성한 그림으로 전쟁의 잔학성을 고발한 걸작이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폭력과 광기가 지배하는 지상 세계와 완전한 세상인 지하 왕국을 대비시킨다. 델 토로는 “나에게 파시즘은 궁극적인 공포를 상징하고 동심과 유년 시절에 대한 도착증과 같은 형태”라면서 이념과 폭력의 세상에서 벗어나 완전한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로 만들고자 했다.

또한 이 영화로 아카데미 촬영상을 수상한 기예르모 나바로 촬영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등의 촬영을 맡았던 명장으로 '헬보이'에 이어 이 영화에서도 델 토로와 함께 수작을 만들어냈다. 

비달을 피해 아기를 안고 지하 왕국으로 가기 위해 판을 만난 오필리아. 판은 마지막으로 순결한 피가 필요하다며 아기에게서 피를 얻어내려 하지만 아이를 지켜낸 오필리아는 뒤따라온 비달에게 총상을 입는다. 오필리아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는 지하로 흘러들어가는데...

드디어 지하 왕국의 문이 열리고 오필리아는 그 곳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난다. 왕은 말한다.

,

"너는 다른 사람을 희생하지 않고 자신의 피를 흘렸구나.
그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란다."

 

피로 권력을 잡은 독재정권 프랑코. 델 토로 감독은 가장 반역사적이며 가장 반인간적인 그를 고발한다.

 

신념은 가장 큰 무기…영화 ’헝거’

영화 ‘헝거’(2008)는 북아일랜드 IRA 단원으로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해 옥중 단식 투쟁을 벌인 보비 샌즈의 마지막 66일을 그린 영화다. ‘헝거’는  '헝거 스트라이크', 단식 투쟁을 의미한다.

북아일랜드 메이즈 교도소에 수감된 IRA(영국으로부터의 완전독립을 목표로 하는 의용군)의 조직원들. 항의의 표시로 수의 착용과 샤워를 거부하며 투쟁을 벌인다. 그들을 정치범이 아니라 테러리스트로 규정한 마가렛 대처 수상에게 강력한 반발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대처 수상은 그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대화를 거부한다.

IRA의 핵심인물 보비 샌즈(마이클 패스벤더)는 그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할 것을 요구하며 75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단식투쟁을 결행한다. 교도소에 고립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가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목숨을 선택한 것.

‘헝거’는 ‘노예 12년’으로 아카데미와 골든 그로브 작품상을 수상한 스티브 맥퀸 감독의  데뷔작이다. 또한 TV 시리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인기를 얻었던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을 맡은 첫 영화.

보비 샌즈와 신부가 나누는 17분 간의 대화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 사진=네이버영화
보비 샌즈와 신부가 나누는 17분 간의 대화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 사진=IMDb

맥퀸 감독은 보비 샌즈 역할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에게 리얼리티를 위해 극단적인 체중 감량이 가능한지 물었고 마이클 패스벤더는 하루 600kcal만을 섭취하며 10주 만에 14kg을 감량했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뼈가 드러나는 앙상한 몸으로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을 생생하게 연기한 마이클 패스벤더의 연기는 극찬을 받아 이후 영화 '셰임'과 '노예 12년'에서도 맥퀸 감독과 함께 작업했다. 

단식을 결행하기 전 도미닉 모란 신부(리암 커닝햄)와 보비 샌즈가 대화를 나누는 17분 가량의 롱테이크가 이 영화의 백미.

이를 위해 리암 커닝햄은 마이클 패스벤더의 아파트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호흡을 맞췄다고. 덕분에 촬영 당일 4번의 테이크만에 감독의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는 후문. 

단식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신부에게 보비는 덤덤하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절대 굽히지 않을 그의 신념에 대해 말한다.

 

"제 의도가 자살기도인지 아닌지가 궁금하세요?
자살 같겠지만 제겐 타살이에요
그게 신부님과 저의 차이죠
둘다 카톨릭 신자고 공화주의자지만
신부님이 낚시할 때 우린 시위 현장에 있었어요.
공통점도 많지만 신념이 다른 저를 이해하세요?
제겐 신념이 있고 그게 가장 강력한 무기예요."

 

한편 IRA는 1996년 '성 금요일 평화협정(벨파스트 협정)'이 체결된 후 2001년 10월 첫 무장 해제를 실시했고 2002년 4월 2차 무장 해제를 마무리 하면서 현재는 북아일랜드 구교파의 준 군사조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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