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해야"
"리스크 극복할 수 있는 솔루션 마련하라" 주문
[오피니언뉴스=변동진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하반기 사장단 회의(VCM·Value Creation Meeting)에서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과 관련한 대응책을 주문할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단기 솔루션이 아닌 ‘지속 가능한 경영’에 방점을 찍고 장기적인 전략을 설정했다.
22일 재계에 따르면 신 회장, 롯데그룹 계열사 사장단 등은 지난 16~20일까지 진행한 VCM를 통해 급변하는 사회 환경과 이에 따른 다양한 리스크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신동빈 “롯데, 사회와 공감하는 기업돼야”
신 회장은 VCM 마지막 날(20일) “오늘날처럼 수많은 제품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기에 특징 없는 제품과 서비스는 외면받게 된다”며 “기업이 단순히 대형브랜드,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것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회와 공감하는 기업이 될 것을 당부했다. 그는 “매출 극대화 등 정량적 목표 설정이 오히려 그룹의 안정성에 위협이 되고 있다”며 “이제는 우리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하는 기업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회장은 또한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에 맞게 ‘철저한 수익성 검토’를 비롯해 ▲빠른 의사결정 ▲인재육성 등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신 회장은 “최근 빠른 기술 진보에 따라 안정적이던 사업이 단기일 안에 부진한 사업이 될 수도 있다”며 “투자 진행 시 수익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와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도 반드시 고려돼야 기업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는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리먼 사태 등을 오히려 기회 삼아 더 큰 성장을 이뤄온 만큼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각 사의 전략이 투자자, 고객, 직원, 사회와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지 검토하고 남은 하반기에도 이를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동빈, VCM서 일본 제품 불매운동 언급 無
재계 안팎에서는 신 회장이 사장단회의가 열리기 전 일본을 방문했던 만큼, 시민 및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불붙은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대해 언급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제 롯데그룹은 유니클로·GU(지유), 무인양품, 롯데아사히주류 등 일본 기업과 합작사가 많다.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한 카드사가 최근 집계한 유니클로와 무인양품 매출은 각각 26%, 19% 감소했다. 이마트 기준 올 상반기 전체 수입 맥주 중 매출 2위를 기록했던 ‘아사히 맥주’는 이달 6위로 내려앉았다.
편의점 CU에서 이달 1~18일 일본 맥주 매출은 전달 동기보다 40% 감소했다. 같은 기간 GS25는 24%, 세븐일레븐(1~15일)은 18% 줄었다.
무엇보다 한국 롯데그룹의 지배구조상 일본기업 논란을 일으킬 실마리도 남아있다.
롯데그룹은 롯데지주 출범(2017년 10월) 전 호텔롯데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했다. 이 회사는 롯데홀딩스(19.07%)와 광윤사(5.45%), L투자회사 등 일본계 보유 지분율이 99%에 달하고, 여전히 일부 계열사의 대주주다.
신 회장은 ‘롯데 = 일본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 지난 2015년 호텔롯데를 상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와 함께 일본계 지분율을 50% 이하로 줄이고, 롯데지주 지배 아래 둘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신 회장이 지난 2016년 경영비리에 따른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상장 작업은 무산됐다. 상장 발표 이후 4년(2015~2018년) 동안 호텔롯데에서 일본 롯데에 지급한 배당금은 511억원이다.
◆신동빈, 단기 대책 아닌 ‘지속 가능한 경영’ 전략 수립 주문
예상과 달리 신 회장이 ‘사회적 역할’을 거론한 배경에 대해 재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우선 현안 해결에만 몰두하지 말고, ‘지속 가능한 경영’을 위해 장기적 전략 수립을 계열사 사장들에게 주문했다는 분석이다.
신 회장 역시 올초 신년사에서 “불확실성의 시대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새로운 비전을 수립한 만큼, 이에 맞춰 구체적인 성장전략과 실행방안을 모색해나가야 할 때”라며 “사회적 가치 창출이라는 기본 방침 아래 주변 공동체와 공생을 모색하며 기업활동을 해나가자”고 말한 바 있다.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롯데뿐 아니라 삼성과 SK 등 국내 대기업들도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사회적 가치 민간축제인 ‘SOVAC’를 개최해 정·재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밖에 다보스포럼 등 국제 무대에서도 SK의 사회적 가치 도입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국내 기업 가운데 사회적 가치를 처음으로 산출한 기업은 삼성전자다. 2015년부터 경제적 효과와 사회·환경적 영향을 화폐단위로 환산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통해 매년 발표하고 있다.
◆신동빈, 불확실한 개인 신상 문제 부담됐나
신 회장 개인 신병 문제와 맥이 닿는다는 분석도 있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특허 취득하기 위해 70억원의 뇌물을 준 혐의(뇌물공여)로 지난해 2월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같은 해 10월 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아 석방됐지만, 대법원의 최종 판단은 미뤄지고 있다.
만약 신 회장이 최종심에서도 유죄 판결을 받으면 롯데월타워면세점은 특허 취소될 가능성이 커진다. 관세법(178조 2항)상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특허를 받은 경우 취소해야 한다. 같은 법 175조에서도 징역형의 실형을 선고받으면 ‘운영인의 결격사유’에 해당된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의 지난해 매출은 약 1조원으로 호텔롯데 면세점 사업 연간 매출액의 13%가량을 차지한다. 신 회장의 개인 신병 문제로 특허권이 박탈되면 호텔롯데 상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반면 롯데가 사회에 꼭 필요한 기업으로 자리를 잡아 사업영토를 확장한다면 신 회장 유무죄와 별개로 호텔롯데 상장을 추진할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송용덕 롯데그룹 호텔·서비스 BU장(부회장)은 지난 19일 VCM에 참석해 선진국 시장을 집중 공략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적극적 해외 진출로 면세점 매출 하락 등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롯데호텔은 지난 2015년 뉴욕팰리스호텔을 8700억원에 인수하며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롯데면세점은 이갑 대표 취임 후 오세아니아에 5개 지점(호주 4개, 뉴질랜드 1개) 등 7개 해외점을 연이어 개점, 해외 시장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롯데 측은 지난해 신 회장 1심 재판 때도 “월드타워점이 상장에 도움은 되지만, 필수요건은 아니라 70억원을 뇌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 양국 모두에서 사업 영위하는 대기업 총수가 불매운동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매우 부담일 것”이라며 “무엇보다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 등 지배구조 개선 문제도 미완의 단계”라고 밝혔다.
아울러 “자칫 말실수라도 한다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며 “비록 사과는 했지만, 유니클로 모기업 일본 패스트리테일링 CFO(최고재무책임자)의 말 한 마디에 일본 제품 불매운동은 더욱 불이 붙지 않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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