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⑳ 부실 숨긴채 증권사 통해 CP 판매…LIG‧동양 ‘CP 사기발행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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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⑳ 부실 숨긴채 증권사 통해 CP 판매…LIG‧동양 ‘CP 사기발행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7.14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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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건설, 2011년 법정관리 신청 열흘 전까지 CP발행...피해 규모 2150억원
2년 뒤 '동양사태' 발생...법정관리 예상되자 구조조정 중단한 채 회사채·CP 발행
2009년 자본시장법 도입으로 불공정거래 행위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규제의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있었다. 특히 LIG그룹 등 2010년대 잇달아 발생한 'CP 사기발행 사건' 당시 자본시장법을 통해 가해자들을 처벌할 수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2009년 2월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시행에 따라 새 국면을 맞이했다. 이 법은 ▲증권거래법 ▲선물거래법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신탁업법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 등 6개 법을 폐지한 후 통합해 2007년 8월 제정됐다.

자본시장법상 불공정거래 제재는 증권거래법 규정뿐 아니라 기존 법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을 포함해 신종 불공정거래 행위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도록 했다.

먼저 미공개정보 이용과 관련 내부자에 ▲계열회사 임직원 ▲주요주주 ▲변호사‧회계사 등 해당연도에 법인과 계약 체결을 맺은 대상 등이 추가됐다. 인수합병(M&A), 블록딜 등 대량취득·처분 정보 이용 행위에 대한 규제 근거도 신설됐다. 

또 기존 증권거래법에서는 선물에서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현물의 시세조종을 금지하는 한편 현·선물 연계 시세조종을 처벌하지 못했다. 반면 자본시장법에서는 장내파생상품과 그 기초자산인 증권 간의 양방향 시세조종을 금지하는 규정으로 규제의 사각지대를 없애고자 했다.

◆ 자본시장법 도입…불공정거래 행위에 포괄적 접근 가능

자본시장법을 도입한 데 따른 가장 큰 변화는 불공정거래 행위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부당이득을 취했더라도 미공개정보 이용 행위 및 시세조종 등에 해당하지 않아 규제할 수 없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곤 했다. 불공정거래 행위 수법 유형을 열거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자본시장법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제178조(부정거래행위 등의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이 조항에서는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그 종류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다. 즉 부정거래 행위의 유형이 다양한 만큼 일일이 열거하지 않고 모든 부정거래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일부 발췌
제178조(부정거래행위 등의 금지)
① 누구든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증권의 경우 모집·사모·매출을 포함한다. 이하 이 조 및 제179조에서 같다), 그 밖의 거래와 관련하여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 부정한 수단, 계획 또는 기교를 사용하는 행위
 2. 중요사항에 관하여 거짓의 기재 또는 표시를 하거나 타인에게 오해를 유발시키지 아니하기 위하여 필요한 중요사항의 기재 또는 표시가 누락된 문서, 그 밖의 기재 또는 표시를 사용하여 금전, 그 밖의 재산상의 이익을 얻고자 하는 행위
 3.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그 밖의 거래를 유인할 목적으로 거짓의 시세를 이용하는 행위
② 누구든지 금융투자상품의 매매, 그 밖의 거래를 할 목적이나 그 시세의 변동을 도모할 목적으로 풍문의 유포, 위계(僞計)의 사용, 폭행 또는 협박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특히 이 조항이 빛을 발한 건 2010년대 초 잇달아 발생한 ‘기업어음(CP‧Commercial Paper) 사기발행 사건’을 처벌할 때였다. CP는 기업의 간편한 자금 조달 수단이자 투자자들에게는 고수익 안전 상품으로 통한다.

기존 증권거래법에서는 CP 발행 요건이 까다로웠으나 자본시장법 도입으로 규제가 비교적 완화됐다. 자본시장법 하에서 CP를 발행할 때에는 회사채와 달리 유가증권신고서를 작성·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이사회 의결 절차를 거칠 필요도 없다. 즉 기업 입장에서는 재무 상태를 공개하지 않고 경영자의 판단만으로 CP를 발행할 수 있는 셈이다.

CP는 무담보 금융상품으로 안전자산으로 볼 수 없다. 그럼에도 CP 투자자들은 신용등급과 금리를 고려해 투자에 나서곤 한다.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금리가 높아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CP의 만기는 보통 3개월 혹은 6개월로 1년 미만이어서 투자자로서는 ‘짧은 시간에 별 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또 굵직한 기업의 계열사 CP는 부도 위기에 몰리더라도 모회사의 자금 지원을 기대할 수도 있다.

◆ LIG건설 인수 포기 의사 숨긴 채 CP 발행

비상장기업인 LIG건설의 CP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CP 투자자와 비슷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LIG건설은 LIG그룹 최대주주가 2006년에 주택건설로 인수한 이후 합병을 거쳐 종합건설사로 발전한 곳이었다. 인수 당시 최대주주는 금융기관에 자금을 차입하면서 보유하고 있던 LIG그룹 및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다.

LIG그룹은 2011년 3월 말까지 LIG건설의 최대주주 지분을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지배구조 개선)이었다. 만약 기간에 맞춰 지배구조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최대주주에게 최대 387억원의 과징금 및 벌금이 부과될 수 있었다.

투자자들은 LIG그룹이 LIG건설을 정식 자회사로 편입한다는 정보를 믿고 단기간동안 고수익을 얻을 목적으로 LIG건설 CP에 자금을 넣었다. 당시 LIG건설 CP는 예·적금금리의 두 배 가량에 해당하는 7%~8%의 이자를 지급했다.

그러나 2011년 건설경기 침체 속에 저축은행업계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부실화로 타격을 입자 LIG건설의 자금 사정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에 LIG건설의 CP 부실화가 우려된 우리투자증권은 2011년 2월 15일 LIG건설 측에 CP 발행 관련 몇 가지 질문을 전달했고 사흘 후 ‘계획 변동이 없고 자금 수지가 양호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우리투자증권 담당자는 투자자들에게 “LIG건설이 실적이 좋지 않지만 CP 금리가 높고 LIG그룹이 LIG건설을 곧 자회사로 편입할 예정이어서 부도가 날 확률은 극히 낮다”고 홍보하며 2011년 3월 10일까지 계속 LIG건설 CP를 판매했다.

문제는 LIG건설이 같은달 21일 돌연 회생절차 개시신청(법정관리)을 법원에 제출하면서 본격화했다. 불과 열흘 전까지 LIG건설 CP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최악의 경우 원금 손실이 불가피했다. 

분노한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에 몰려가 LIG건설과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조사‧처벌 등을 요구했다. 금감원은 LIG건설의 불공정거래를 조사하는 한편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전방위 검사를 실시했다.

조사에 따르면 LIG그룹은 2010년 후반부터 LIG건설의 자금 수지가 악화된 걸 인지하고 있었다. 일례로 LIG그룹 대표이사는 LIG건설로부터 월초 ‘월별 이동자금 수지’ 등을 정기적으로 보고 받았다. 이 과정에서 누적적자 규모가 커지는 가운데 건설경기까지 침체하자 그룹 차원의 자금 지원이 무의미하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그럼에도 LIG건설 인수를 포기할 경우 법정관리를 맞닥뜨려야 하는 데다 최대주주가 2006년 담보로 제공한 LIG그룹 주식 지분을 포기해야 하므로 CP를 발행해 주식담보대출을 상환하겠다는 비상식적인 결정을 내렸다.

◆ 부당이득금액 2150억원…그룹 최대주주 등 구속기소

금감원은 LIG건설의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한 시점에 주목했다. 만약 LIG건설이 법정관리 신청을 결정하고도 우리투자증권에 알리지 않은 채 CP를 발행했다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금지를 위반했다고 볼 수 있었다.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LIG그룹은 2011년 1월부터 S은행에 LIG건설 인수를 위한 대출금을 신청했는데 차입 목적을 ‘LIG건설 인수’에서 같은해 2월 25일부터 ‘LIG건설에 대한 자금대여’로 변경했다. 최소한 이 시점부터는 LIG그룹 내부적으로 LIG건설 인수를 포기한 셈이었다. 

금감원 조사국은 S은행 대출상담일지를 검토하고 대출심사 담당자와의 문답을 통해 이 사실을 밝혀냈다. 조사 결과 바탕으로 2011년 2월 25일부터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신청을 한 시점인 3월 21일까지 판매한 CP 발행금액 242억원을 부당이득 금액으로 판단, LIG그룹‧LIG건설 최대주주와 임원 등을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통해 부당이득금액을 2150억원으로 늘려 LIG그룹 최대주주 등을 구속기소했다. LIG그룹 최대주주의 경우 구속된 후 사재를 출연해 모든 LIG건설 CP 투자 피해자에게 보상하면서 최종적으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또 사건에 연루된 최대주주의 두 아들은 각각 징역 4년과 3년에 처해졌다.

2013년에는 동양그룹의 CP 사기발행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연합뉴스

◆ LIG그룹 이어 동양그룹 CP 사기발행 사건

LIG그룹에 이어 2013년에는 동양그룹의 CP 사기발행 사건이 발생했다. 동양그룹은 1955년에 설립된 이래 시멘트, 레미콘 등 건설관련 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기업이었다. 2013년 당시에는 재계 순위 40위권의 대기업집단이었으며 동양증권이라는 증권사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양그룹 역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가 부진한 가운데 해외자원개발 등 신사업까지 실패하면서 동양증권을 제외한 계열사의 경영실적이 급속히 악화됐다. 2012년의 경우 그룹 부채비율이 1700%에 이를 정도였다.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가 몇 년간 이어졌고 부실위험이 누적되고 있었다.

동양그룹 오너인 현모 회장은 2012년 하반기부터 사업부문 매각 등 자체 구조조정 안을 마련해 추진해오고 있었다. 그러나 2013년에도 적자 수준은 확대되고 있었다. 특히 같은해 6월 말 경 현 회장이 그룹차원의 자금수지 현황을 보고받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진행되더라도 세 달 뒤 법정관리 신청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됐다. 

문제는 현 회장이 법정관리에 들어갈 경우에 대비해 계열회사의 경영권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기업회생 절차를 통해 재기 기회를 노리겠다는 결심을 세웠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동양그룹은 구조조정 안에 포함된 소위 ‘알짜’ 회사 매각을 중단하고 상환능력을 상환한 사실을 숨긴 채 동양증권을 통해 7월부터 9월까지 계열사의 회사채‧CP를 대량으로 발행했다.

결국 2013년 9월 30일과 10월 1일 사이 동양그룹 내 상장사 세 곳과 비상장사 두 곳, 총 5개 기업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신용등급은 ‘디폴트(D)’로 강등됐다. 법정관리 신청 당시 개인투자자들에게 판매된 회사채와 CP는 총 1조6999억원이었으며 개인투자자 수는 4만1398명에 달했다.

동양그룹 회사채‧CP 발행 피해자들은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사진=연합뉴스

투자자들은 그야말로 ‘패닉’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피해자 모임을 결성해 동양그룹을 비롯한 현 회장 자택, 금감원 앞 등지에서 대규모 집회를 벌였다. 같은해 10월 국회 정무위에서는 현 회장을 국감증인으로 채택, 책임을 갖고 대응할 것을 요구했다.

이듬해 1월 현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 4명은 검찰에 의해 사기 및 주가조작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현 회장은 1심에서 사기성 회사채‧CP 발행 혐의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심에서 사기성 채권 발행 기간이 부도 직전 한달 전으로 대폭 줄어 징역 7년으로 감형됐고 대법원에서 항소심 결과가 확정됐다. 동양그룹 채권을 주도적으로 판매한 동양증권 대표이사는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는 등 중형을 면치 못했다.

피해자 중 일부는 법원에 현 회장에 대해 개인파산을 신청했다.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면서 현 회장의 1000억원에 이르는 재산은 모두 매각됐고 피해자들에게 일정하게 배당됐다.

◆ 막대한 사회적 손실 규모…재발 방지 노력

이처럼 CP 사기발행 사건은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냈다. 투자자뿐 아니라 기업 오너였던 가해자들 역시 징역형에 처해지고 파산 절차를 밟았다. 다만 자본시장법이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사건 혐의자들에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또 회사채‧CP를 발행한 증권사들은 불완전판매에 대한 피해자들의 민원과 손해배상소송 등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증권사 직원 중 몇 명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사건 이후 자금이 필요한 기업들은 돈을 제때 조달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금감원은 이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서둘러 종합 대책을 마련했다. 먼저 불완전판매를 막고자 금융상품 판매 시 판매사의 설명 의무를 강화했다. 미스터리 쇼핑(금감원 소속 모니터링 요원이 고객으로 가장하고 금융회사 영업점을 방문해 설명의무의 적절성 등을 평가하는 제도)의 빈도를 늘려 적발 건수가 많은 금융사에 대해서는 검사를 연계토록 하였다. 또 부실위험 대주주 지원을 위해 계열금융사 자금을 동원할 수 없도록 차단벽을 강화하는 일련의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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