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우민의 입법혁신] 입법전문가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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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민의 입법혁신] 입법전문가는 없다
  •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 승인 2019.07.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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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입법에 개별 및 소수 전문가 의존성 탈피해야
입법전문가 양성체계 정립방안 고민 필요
코디네이터로서의 입법전문가 상(像) 정립 … 시민 입법의지 실현에 기여해야
심우면 경인교대 교수
심우민 경인교대 교수

[심우민 경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필자는 직업상 이유로 입법 실무 현장에서 전문가들을 찾는 경우를 자주 봐왔다.

그도 그럴 것이 인공지능이나 데이터 등 소위 신기술(emerging technologies)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즉 혁신에 직면한 현재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관련 문제를 먼저 고민해본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과연 현실 문제에 대한 전문성이 입법에 대한 전문성으로 바로 직결될 수 있는 것일까? 달리 말해, 문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그것에 대한 입법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직결될 수 있는 것인가? 물론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일수록 그 대답이 간단치 않다.

실제로 정부나 국회가 입법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관행적으로 소수의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존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정부 관료나 국회의원들은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문가들의 의견은 특정 입법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좋은 토대가 된다. 그리고 많지는 않을 것으로 기대하고 싶지만, 전문가들의 견해가 인위적으로 짜맞추어져 허구적 정당성을 산출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그런데 단순히 특정 분야나 지식에 대한 전문가가 아닌 ‘입법전문가’는 과연 존재하는가? 실제 입법 실무 현장에서는 제 각각 자신이 입법에 관한 전문가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입법전문가를 양성하는 교육 및 실무 수습 시스템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들이 주장하는 입법전문성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들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고해 입법활동을 하지만, 이들 전문가들이 입법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아 부작용도 적지 않다. 사진= 연합뉴스
대한민국 국회. 국회의원들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참고해 입법활동을 하지만, 이들 전문가들이 입법전문가가 아닌 경우가 많아 부작용도 적지 않다. 사진= 연합뉴스

입법에 관한 전문교육 내용과 체계의 부재

그나마 입법이 법을 다루는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법률전문가 전문교육 체계를 통해 입법전문가들이 양성될 가능성이 있다. 보통 법학교육이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로 법적 사고방식(legal mind)이 거론되곤 한다. 그런데 여기서 법적 사고방식은 매우 다양한 부분들을 포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사법판결(법원)을 중심으로 한 법적 판단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법적 사고방식은 문제 사실을 규범적 언어로 생각 또는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판례와 학설, 그리고 실무계 관행 등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런 견지에서 법학 전공 초년생들은 일상 대화를 법률 및 학설 용어로 즐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마찬가지로 입법적 사고방식(legislative mind) 또한 문제 사실에 관해 규범적 언어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유사성을 가진다. 이런 측면에서 법적 사고와 입법적 사고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런데 이들 사고방식 간에는 차별성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법적 사고방식은 기존 법규범을 사안에 적용하는 행위를 중심으로 하고, 입법적 사고는 기존 규범의 공백과 문제점을 포착해 그것의 적용상 문제점들의 해소를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이상적으로만 따지자면, '법적논증(사법부)'은 전제된 규범을 활용한 추론으로 설득력을 확보하는 작업임에 반해, '입법논증(입법부)'은 전제된 규범은 물론이고 그와 연계된 제반 사실 논거들을 활용한 추론으로 설득력을 확보하는 작업이다.

여기서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사법부의 판결(법적논증)중 상당수는 불가피하게 사실상 '사법적(司法的) 입법'인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즉 법원의 판결이지만 실질적으로 법규범을 만들어 내는 입법에 해당한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경우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입법논증 및 입법적 사고방식의 단초를 미약하게나마 발견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또한 사법과 입법의 경계에서 그것이 입법의 문제인지 사법판결의 문제인지를 구분해 볼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도 있다. 바로 이런 추상적 논의들은 법률전문가 교육에서 입법을 교육할 수 있는 이론적 예시이자 단초라고 할 수 있다.

입법에 방점을 둔 연구와 교육이 진행될 때, 보다 나은 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현재의 중심적 법학교육 체계인 법학전문대학원이 개원할 당시만 하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대학들은 입법학 과목들을 신설했다. 그러나 현재 입법학을 정상적으로 교육하는 법학전문대학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는 변호사 시험을 중심으로 하는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체계 전반의 문제와 결부되어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당초 전문대학원 체제의 법학교육이 가지는 이상(理想)을 잃어버린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입법에 관한 전문적 교육이 이루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입법 혁신에 관한 다양한 입법대안들이 제시된다고 하더라도, 현실 정치 및 입법 문화의 문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입법 실무를 전문적이고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토대로서의 인적자원이 없다면, 아무리 정치 및 입법 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당초 목적을 달성하기 힘들 것이다.

코디네이터로서의 입법전문가 관념 요청

사회가 체계적으로 복잡화 및 분절화 되지 않았던 사회에서는 소위 전문가 개인이 가지는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그것은 입법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은 일반적 수준의 지식과 경험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전문 영역들의 분화와 출현으로 귀결되고 있어, 이제까지 관념화되어 온 전문가 역할에 대해서는 진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우선 입법이 법규범을 만드는 행위라는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입법전문가를 법률전문가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이런 관념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법률 지식에 관한 전문성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개별 법안 구성 작업이나 문제 사안의 영역에 관한 전문성까지 갖추고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현재의 법학 교육이 법의 해석과 적용(사법판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그러하다.

이와 더불어, 현실 문제 사안 및 영역에 관한 전문성만으로 또한 누군가를 입법전문가로 칭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더 나은 입법을 위해 문제 사실 및 그 원인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지식만으로 실정법 대안(입법)을 구성하기에 무리가 있다. 특히 현대사회에서와 같이 법규범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현실의 문제점만 해소하려할 뿐 실제 법체계 분석을 온전히 수행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입법은 법체계를 복잡화시키고 그 결과 혁신은 저해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현행 법제들이 이러한 문제점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결국 전통적·고전적인 입법전문가 관념은 오늘날 입법 환경에서 혁신적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학제간·영역간 협업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바로 입법의 영역이고, 따라서 입법 실무 현장에서는 영역별 전문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문성이 더욱 적극적으로 발현 및 활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 조직 및 그룹을 사안에 맞게 구성하여 대응할 수 있는 메타 전문가로서 '코디네이터(coordinator)'의 역할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의 입법 현장에서 이러한 조직 구성이 현실화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한 검토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입법지원조직(국회의 국회사무처, 국회도서관, 국회예산정책처, 국회입법조사처, 그리고 정부 각 부처의 규제개혁법무담당관, 법제처 등)의 경우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화의 노력을 꾀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수평적 협업 체계보다는 전통적인 수직적 분할체계를 취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시민 의지 실현을 지원하는 전문성

입법전문성 문제에 있어 재차 강조되어야 하는 지점은 전통적 전문성의 한계이다. 현대 사회에서 강조되는 전문성은 단순한 지식에 대한 전문성이 아니라, 사회 구성 및 운영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될 수 있는 ‘경험적 전문성’이다. 입법 대안 구성작업은 고정적인 정답을 추구하는 행위가 아니고, 사회적 교류와 상호작용의 결과에 따라 다른 결론들을 제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정 전문가의 전문성은 반드시 사회적 의견수렴 및 논의의 과정을 통해 더욱 다듬어지고 보완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입법과정은 입법예고 및 의견수렴 절차 등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제도화되어 있지만, 그러한 과정을 다분히 형식적이고 귀찮은 과정으로 치부해 버리는 관행이 우리 입법 현장에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입법전문성은 비단 특정 영역의 전문성으로 치환될 수 없으며, 또한 관련 영역에 오래 종사해왔다고 해서 자연적으로 갖추어지는 것도 아니다. 단연코 과거와 같은 개인적 수준의 입법전문가 관념은 너무나도 허황된 것이다. 간혹 입법 현장에서 그러한 관념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효과적인 입법 논의가 단절되는 사례들을 종종 목도할 수 있다.

입법전문가에게 요구되는 전문성은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방법론으로 구체화시켜 입법 논제로 다른 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역량이어야 할 것이다. 입법전문가는 누군가를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의지를 현실화하는 데 기여하고 봉사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심우민 교수는 연세대에서 법학박사를 취득한 이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을 거쳐 경인교육대 사회과교육과 교수(입법학센터장)로 재직하고 있다. 입법학이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를 개척하면서, 우리나라의 미래 입법 패러다임 전환에 기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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