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통상전문가 이재형 교수 "WTO 승소 쉽지않아...美에 '인권'이슈로 협조 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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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인터뷰] 통상전문가 이재형 교수 "WTO 승소 쉽지않아...美에 '인권'이슈로 협조 구해야"
  • 임정빈 기자
  • 승인 2019.07.11 10: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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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상 정부 자문역 자문위원 이재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 WTO서 다퉈야하지만 '日 안보→수출규제' 논리 깨기 쉽지 않아"
"개별허가 하다가 결정적일 때 불허 카드, 한국 골탕먹이기 나타날 수 있어"
"미국에 중재 요청하는 게 현실적 해법...'역사' 논리 아닌 인권 논리로 설득해야"
"미국, 강제노역· 전시여성인권 침해 등 인류보편적 가치에 움직일 것"

[오피니언뉴스=임정빈 기자] 국내 국제통상 분야의 전문가로 FTA 및 WTO 협정 관련 정부자문 활동을 수년간 담당한 이재형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최근 일본의 수출규제와 관련, "WTO(세계무역기구)에 제소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일본을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 대응책에 대해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이 교수는 "현재 거의 유일한 방법은 한일 간 갈등을 원치 않는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라며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 등을 주장하는 역사논리가 아닌 강제노역, 전시여성인권 침해 등 '인권' 논리로 미국을 설득할 때 우리 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무역장벽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많은 게 사실"이라며 "무역 갈등이 확대될 경우 우리 측이 무역장벽 문제에서 불리한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현재 세계무역기구(WTO) 및 한-미 FTA 분쟁해결절차 패널위원 후보이기도 한 이 교수는 10일 일본의 반도체 핵심 소재 수출 규제와 관련, <오피니언뉴스>와 직격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그에게 현재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지, 앞으로 우리 정부가 대응해야 할 방향은 무엇인지  의견을 들어봤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형 교수가 연구실에서 한일 무역분쟁과 관련한 진단과 해법을 얘기하고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이재형 교수가 연구실에서 한일 무역분쟁과 관련한 진단과 해법을 얘기하고 있다.

 

다음은 이재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일본이 주장하는 '신뢰 문제' 또는 '안보논리'가 WTO 협정의 교역 제한조항에 해당하나

▶WTO협정은 위생, 검역, 환경 등에서 교역 제한을 인정한다. 국가안보 논리도 여기에 해당한다. 일본 측 주장에 따르면 무기나 무기에 사용될 수 있는 반도체 소재 불화수소는 교역제한에 해당될 수 있다. 처음에 아베 총리가 양국 간 신뢰 저하를 명분으로 내세웠는데 무역 규제가 허용되는 WTO의 예외 조항에는 '신뢰 저하' 사유가 없다. 

하지만 국가 안보 상의 신뢰 저하라면 말이 달라진다.  한국과 일본간 관계가 가깝고 가깝지 않고를 떠나 한국으로 수출되는 제품이 북한 등 자신들의 적성 국가로 유입되는 것을 '한국이 충분히 방지할 수 있냐'라는 논리에서 신뢰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국가안보'상의 이유로 교역제한을 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미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국가안보'를 이유로 특정 물품의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일본의 이번 수출규제가 합당하다는 것인가.

▶강제징용 배상판결이라는 정치적 이유로 수출규제를 한 것이 뻔한데, 어찌 합당하겠는가. 그러나 국제통상 전문가 입장에서 봤을 때 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했다. 처음 우리 정부가 WTO 제소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솔직히 승산을 5% 내외로 본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도 2004년 이전에는 일본의 우대국가(수출 우대 화이트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15년동안 우대국 지위를 누려오다가 이번 사태로 인해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것을 의견 수렴중이고 3개 품목에 대해 포괄적 수출허가에서 개별허가로 변경했다. 하지만 지금 우대국에 포함되지 않는 어떤 나라도 여기에 항의하지 않는다. 2004년 이전에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일본이 발동한 조치는 수출허가제도이다. 일본 기업이 한국에 수출하기 위해 허가를 신청하고 일본 정부가 언제나 이를 받아들인다면 무역제한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허가신청에 대해 거부할 수 있는 재량이 있는 한 무역규제에 해당한다. 일본은 아마 이걸 노리고 있을 것이다. 수출허가를 내어주다가 한국 기업이 중요한 상황에 왔을 때 결정적으로 수출을 막아버리는 방법일 거다. 

우리는 먼저 일본이 과거에 개별허가를 받는 국가에 대해 어떤 사유로, 어떤 품목을 수출 거부했는지 파악해야 한다. 그런 상황을 분석해야 대응하는데 용이할 텐데 아직 우리 정부 차원에서도 거기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본이 유독 국가안보를 내세우는 이유는

▶일본이 수출규제 제한 이유를 국가안보 쪽으로 끌고 간다면 상황은 쉽지 않다. 분쟁해결절차에서는 통상적으로 분쟁당사국이 아니라 제3자인 재판관이 규정 위반 여부를 판단한다. 그런데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 발동의 필요성은 당사국이 판단한다. 다만 당사국이 무제한적인 재량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며, WTO는 당사국이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 판단했는지만 검토한다. 당사국 결정이 옳은지 그른지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WTO를 통한 해결이 쉽지 않은 것이다.

또 국가안보적 필요에 의해 국가를 분류해 수출규제하는 수준이 서로 다른데 이를 어떻게 볼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다. 

-G20에서 자유무역을 강조하던 일본이 곧바로 수출규제를 발표한 건 부당한게 아닌가.

▶감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아무리 자유무역이라도 국가안보, 환경, 국민위생 등 자국 권리가 갖춰졌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자유무역 국가에서도 수출규제를 하는 경우는 흔할 뿐더러, 오히려 지금 상황에서 일본에게 왜 자유무역을 하지 않냐고 외치는 건 '한국의 대응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느냐'는 비웃음을 살 일이다.  

일본은 당연히 우리가 WTO에 제소할 것까지 염두하고 조치를 결정했을 것이다. 우리한테 그나마 유리한 것은 아베 총리나 일본 정부가 강제징용 판결 문제를 직접 언급한 사실이다. 이 점은 우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이번 수출규제가 국가안보와 무관함을 스스로 확인해 주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필요하면 대응하겠다고 밝혔는데 WTO 제소 외에 어떤 대책이 있을까. 현실적으로 미국의 중재를 언급하는 시각도 있는데.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은 게 사실이다. 무역으로 한일이 싸우면 현실적으로 일본에 유리한 싸움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무역장벽이 일본보다 높기 때문이다.

결국 현실적으로 미국을 통한 해결을 생각해볼 수 있다. 미국은 한일간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갈등을 봉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는 우리 쪽에서 그런 중재 움직임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한 면이 있어 지금은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3자인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와 국제법이 충돌하는 이번 같은 사례에서 전자보다는 후자에 좀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 역사라고 하면 우리의 이야기지, 미국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역사로 접근하게 되면 제3자인 미국을 우리 논리로 끌어 들이기가 어렵다.

미국은 60년이 넘는 전쟁피해 주장에 대해 '이제 그만하라'는 입장일 수 있다. 반면 '인권'이라든지 '노동' 이슈는 인류 보편적 가치이기에 미국도 경청할 것이다. 미국 내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것도 그들이 역사가 아닌 전시의 '여성인권 침해'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가 아닌 '인권'이슈로 접근방법을 바꿔야 한다. 여성인권, 강제노역 등의 이슈로 접근하고 이에 대한 일본의 진지한 사과와 한일 양국이 함께 참여하는 경제적 보상 마련 등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어떨까 싶다.

-중국의 사드보복 때에 비해 지나친 강경대응이라는 지적도 있는데.

▶이번에는 WTO에 제소하는 게 맞다고 본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국민감정은 좋아지겠지만 일본과의 감정은 나빠지게 된다. 지금 시대에 누가 친일을 하겠는가. 그러나 대법원의 징용판결이 났을 때 통상전문가로서 ‘큰일이다’는 생각이 든 게 사실이다. 판결에 관련된 기업이라면 즉각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고, 강제집행 당할 것을 우려하면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그런 분위기가 되면 다른 기업들도 한국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는 당연히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강제집행한다고 하면 다른 이야기다. 요즘 우리 기업도 노사문제나 정부 규제 때문에 외국으로 나가지 않는가.

-우리측이 WTO에 제소했지만 분쟁해결을 위한 2심 격인 상소기구가 무력화될 위기에 있는데, 실제 제소이후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WTO에 제소를 하면 법적으로 양국은 60일간 협의를 해야한다. 지금까지 WTO 분쟁 중에 협의 과정에서 해결된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두 번 정도 만남을 갖는데 전략 탐색전으로 끝난다. 결국 상소기구로 가야하는데, 현재 WTO는 입법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다. 회원국들끼리 새로운 룰을 못 만들고 있다.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준사법기구인 분쟁해결절차의 상소기구도 7명 위원 중 3명뿐이다. 올 12월이면 한명밖에 남지 않게 된다.  WTO 제소에 실효성 논란이 생길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설사 분쟁해결안이 나온다 하더라도 일본이 이를 이행하는 데는 또 시간이 걸린다. 이번 수출규제는 입법사안이 아니어서 결과가 나오면 일본 정부가 조치를 취하겠지만, 그 조치가 합당하지 않으면 또 제소하는 절차를 밟게 된다.

-WTO 승소 가능성은. 또 일본이 수출규제를 다른 산업으로도 확대할 것으로 보나.

▶양측 모두 승소할 것이라 장담할 것이다. 국가안보' 논리라면 우리가 불리하지만 승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다만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매우 많다. 참 어려운 일이다. 우리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고 일본도 피해가 생길 것이다. 

우리 정부도 그런 점을 알기에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입장인 듯 하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상당하다. 일본이 반도체뿐만 아니라 다른 품목으로 수출규제를 늘려 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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