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디트로이트의 비극’ 초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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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에 ‘디트로이트의 비극’ 초래하나
  • 김인영 발행인
  • 승인 2015.09.0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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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노조 판치던 美빅3 노조엔 ‘파업’ 사라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9일 현대자동차 노조의 총파업 투표 실시를 언급하며 "파업 수순을 밟는 현대차의 모습은 국민과 고객의 실망과 분노의 대상이 됐고, 고객 이탈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져 '디트로이트의 비극'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조합원 4만8,000여 명을 대상으로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10일 나온 개표 결과에서 파업 찬성이 가결됐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 4년 연속이다. 파업이 연례행사가 되고 있다.

노조는 ▲임금 15만9,900원(기본급 대비 7.84%) 인상 ▲ 당기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포함한 완전고용보장 합의서 체결 등을 요구하고 있다. 게다가 회사와 정부가 요구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반대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현대자동차가 국제경쟁력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게다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공동투쟁을 벌이겠다고 하니, 두 대기업 노조가 파업하면 울산은 김무성 대표가 우려한대로 ‘디트로이트의 비극’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면 세계를 주름잡던 미국 자동차 업계가 지난 20년간 몰락의 과정을 걷는동안 노조는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짚어보자.

▲ 현대기아차그룹 18개 노조대표들이 지난 7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에서 임금피크 도입저지 등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연합뉴스

 

빅3노조, 2008년 공적자금 지원받고 이중임금제 채택

17년전의 일이다. 1998년 여름, 미국 최대자동차회사인 제너럴 모터스(GM) 노조가 장장 54일간의 파업을 벌였다.

그때 노조(UAW)가 얻은 것은 미시건주 플린트라는 도시에 있는 두개 압연공장 근로자의 직업안정 자금 1억8,000만 달러였다. 미국에서는 파업에 가담한 근로자에 대해 회사가 임금을 주지 않는다. ‘무노동 무임금(No Work, No Pay)‘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진다. GM 노조원들은 파업으로 인해 10억 달러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잃은 것이 얻은 것의 5배가 넘는, 비싼 대가를 치른 파업이었다. 파업이 끝나자 버클리대의 할리 셰이큰 교수는 "회사가 졌다. 그러나 노조가 이긴 것은 아니다"라고 단정지었다.

GM 파업의 가장 큰 손실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회사와 노조가 동시에 낙오하게 됐다는 점이다. GM은 경쟁사에 비해 아웃소싱하기 어렵게 됐고, 노조로서도 공장폐쇄를 허용했기 때문에 더 많은 노조원의 해고를 인정한 셈이다. 그후 GM에서 노조 파업 뉴스가 나오지 않았다.

중요한 사실은 1998년 GM의 대규모 파업 이후 빅3의 어느 노조도 협상을 하면서 파업을 준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파업을 할 경우 노사 모두가 공멸한다는 사실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노련(UAW)는 전통적으로 강성노조였다. 잘나가던 1980년대엔 노조원수가 140만명에 이르렀지만, 20년 후엔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완성차 회사들이 많은 일거리를 아웃소싱하고, 노조 없는 회사로부터 부품을 들여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UAW는 밖으로는 외국 회사, 안으로는 노조원 감소라는 이중의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업계에 파업은 사라졌지만, 그동안 강성 노조가 회사로부터 보장받은 각종 복지혜택으로 빅3의 경쟁력은 무너져갔다.

미국 자동차 산업은 아시아와 유럽 자동차와의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 내수 시장을 빼앗겼다.  1980년대 75%였던 빅3의 미국 시장 점유율이 지금 60%대로 하락했다.

도요타의 미국 현지공장엔 노조가 없고, 빅3에 비해 복지 혜택이 적다. 미국의 빅3는 이 비용을 줄이지 않고는 당연히 도요타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 사태로 미국에 금융위기가 불어닥쳤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보이지 않는 경제 원칙이 무너졌다. GM을 비롯해 빅3가 모두 부도의 위기에 빠졌다. 당시 릭 왜고너 GM 회장은 “정부의 지원 없이는 한래를 버티기 어렵다”고 고백해 충격을 줬다.

미국 정치인들도 도덕적 해이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빅3를 파산시켜야 마땅하지만, 미국 민주당은 250억달러 규모의 빅3 구제금융 법안을 제출했다. 공화당은 구제금융에 반대했다. 당시 존 카일 상원 금융위원회 공화당 간사는 “빅3는 혁신을 모르는 공룡”이라며 “250억달러 지원은 심판의 날을 6개월 연장해줄 뿐 어떠한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며 성토하기도 했다.

미국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빅3 중 1~2개를 파산시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마련하자”며, “파산은 고통스럽지만 군살을 빼고 복지병을 치유할 절호의 기회”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데이비드 예맥 뉴욕대 교수는 ‘정부가 250억달러를 빅3에 지출해 경쟁력이 없는 근로자의 일자리를 보존해주는 것보다 차라리 근로자 1인당 1만달러를 주는 것이 낫다“고 비꼬았다.

파산직전의 미국 자동차 업계가 정부로부터 공적자금을 받으면서 노조의 동의를 얻어 채택한 것이 이중임금제였다. 이중임금제는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되, 새로 채용한 노동자들을 저임금으로 채용하는 제도다. 이렇게 하면 노동비용을 줄일 수 있다. 실제로 전체적인 노동비용이 낮아졌다. 2007년 시간당 78달러였던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노동비용이 2015년 시간당 54달러 까지 낮아졌다.

미국 자동차 빅3가 집중된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시는 인구감소, 세수 부족 등으로 2013년 마침내 파산을 선언한다. 경제용어가 된 ‘디트로이트의 비극(Tragedy of Detroit)’이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올해 흑자를 냈다고 한다. 20년의 세월 동안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면서 얻은 값진 수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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