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트렌드] 간식에서 주식으로...'빵의 역습'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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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트렌드] 간식에서 주식으로...'빵의 역습' 이제 시작이다
  • 김이나 컬쳐에디터
  • 승인 2019.05.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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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의 빵은 우랑떡...선교사들이 숯불에 구워 만들었던 것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 빵돌이들은 전국 빵지를 순례
1인가구 증가와 간편식 열풍으로 빵의 위상 더욱 높아질 것
빵으로 여는 아침. 먹기 간편하고 짧은 조리시간을 장점으로 빵은 점차 밥을 대체하고 있다.사진=pixabay
빵으로 여는 아침. 먹기 간편하고 짧은 조리시간을 장점으로 빵은 점차 밥을 대체하고 있다.사진=pixabay

 

[오피니언뉴스=김이나 컬쳐에디터] 세상엔 생소한게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은 낯선 것에 끌리고 그것이 점차 익숙할 때쯤 또 다른 낯선 것을 찾는다. 낯선 것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트렌드 리더, 트렌드 세터(setter)라 불리운다.

세상은 넓고, 먹고 싶은 빵은 많다. 크르와상, 마까롱, 마들렌브리오쉬 까지는 그래도 따라잡겠는데 까늘레, 빨미 까레 이런 빵들의 등장은 캐치업(catch up) 해야할 것들이 많이 밀려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렇다고 새로운 빵들만 인기있는 것은 아니다. 수십년 동안 사랑받고 있는 빵들은 아직도 남녀노소 구분없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각 지역을 대표하는 맛집 순례에 빵집도 포함되면서 최근에는 오로지 특정 빵을 맛보기 위해 여행을 하는 빵돌이, 빵순이들(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말)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빵집 순례는 빵지순례라고 불리기도 한다)

에스프레소 커피 문화 (대표적인 것이 카페 아메리카노)의 가장 큰 수혜자로 커피를 마실 때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그것, 그리고 어떤 이들에겐 주식이 되기도 하는 그것. 빵이 우리 문화에 차지하는 부분은 그 확장성을 가늠하기 힘들다.

작년 우리나라 국민 1인당 쌀 소비량은 61kg(2018, 통계청 양곡소비량조사). 그마저도 즉석밥이나 간편식으로 소비하는 인구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보다 간편하게 담백한 한 끼를 먹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는 인사치레로 던지는 인사말 “언제 밥 한 번 먹자” 는 말이 “언제 빵이랑 아ㆍ아(아이스아메리카노) 한 잔 하자로 대체될 지 모른다고 하면너무 멀리 나간걸까?

 

◆빵, 서양사람들의 주식

밀가루를 주원료로 하여 소금, 설탕, 버터, 효모 따위를 섞어 반죽하여 발효한 뒤에 불에 굽거나 찐 음식. 종류도 다양하고 조리법도 다르지만 빵을 주식의 하나로 여기는 나라들은 많다. 그들의 빵이 궁금해졌다.

 

△뉴요커의 아침식사, 베이글

과거에는 다른 나라의 식문화를 드라마나 영화로부터 간접 체험했다. 여행이 아직은 보편화 되지 않았던 80년대까지만 해도그랬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커피와 도넛을 먹는 경찰들을 보면서 미국의 대표 빵은 도넛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도넛을 먹고 있던 경찰이 콜을 받고 서둘러 출동하는 장면은 클리셰(cliché,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전형적인 장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 지금도 도넛 가게에 경찰이 들르면 도넛을 공짜로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순찰을 돌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경찰이 들르면서 범죄 예방의 효과를 톡톡히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인인 당뇨 합병증의 주범이었다는 오명도 지니고 있는 도넛을 밀어내고 최근 미국의 대표 빵으로 떠오르는 담백한 빵이 있는데, 바로 베이글(Bagel)이다.

 

다양한 종류의 베이글.미국 동부의 아침 식사로 대표된다.사진=pixabay
다양한 종류의 베이글.미국 동부의 아침 식사로 대표된다.사진=pixabay

 

크림치즈를 듬뿍 바른 베이글을 한 입 베어 물면 마치 뉴요커가 된 듯한 기분이다. 90년대부터 수입된 미국 드라마들이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들이 많다 보니(사인필드 Seinfeld, 프렌즈 Friends, 섹스 앤더 시티 Sex and the city 등) 그들의 라이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베이글은 사실 미국 동부에서나 인기있는 아침 식사다베이글은 독일어로 등자를 뜻하는 뷔글(bügel)에서 유래한 것으로 19세기 유대인들이 미국 동부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빵의 주 원료 세 가지 즉 달걀, 우유, 버터가 들어가지 않고 밀가루, 이스트, , 소금만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지방, 당분 함량이 적고 칼로리가 낮아 소화가 잘된다고 한다.

 

△애프터눈 티에 빠져서는 안되는 빵, 스콘

영국에서 티타임에 홍차와 함께 먹는 것은 스콘(scone)이다. 속을 넣지 않고 가볍게 부풀도록 구운 밀가루 빵으로 처음엔 납작한 모양이었다가 19세기 중반에 베이킹파우더와 베이킹소다 덕분에 두툼한 두께를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스콘은 홍차와 매우 잘 어울리는 빵인데, 특히 오후 3~5시 사이의 티타임을 뜻하는 애프터눈 티(afternoon tea)’에 빠져서는 안되는 빵이다.

 

홍콩 페닌슐라 호텔의 애프터눈 티.사진=홍콩 페닌슐라 페이스북
홍콩 페닌슐라 호텔의 애프터눈 티.사진=홍콩 페닌슐라 페이스북

 

애프터눈 티19세기 영국 어느 공작부인이 오후 티타임에 스콘과 홍차를 즐기기 시작했던 것이 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영국과 홍콩 그리고 최근 한국의 특급호텔에도 오후에 애프터눈 티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애프터눈 티는 스콘과 오이 샌드위치 등 빵과 디저트가 올려져 있는 3단 트레이와 클래식한 티팟으로 상징된다.

 

△새벽에 만들어 아침에 먹는 막대기 모양의 빵, 바게트

막대기란 이름의 빵도 있다. 프랑스어로 막대기가 바게트(baguette). 바게트 빵은 프랑스인들의 아침식탁에 오르는 빵이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이른바 겉바속촉의 대표 빵이다.

 

2019년 바게뜨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파리 12구((區) '불랑제리 르로이 몽티' 제빵사  파브리스 르로이.사진=파리시 공식 트위터
2019년 바게트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파리 12구((區) '불랑제리 르로이 몽티' 제빵사 파브리스 르로이.사진=파리시 공식 트위터

 

프랑스 불랑제(boulager, 제빵사)들은 새벽 4시면 바게트를 만들기 시작하는데 갓구운 바게트를 사기 위해 일어나자마자 빵집 앞에 줄을 서야 한다. 많은 사람이 줄 서있는 가게가 가장 맛있는 바게트를 만드는 곳이다. 다소 거친 빵껍질에 입천장이 벗겨진다고 꺼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로 갓 구운 바게트는 표면이 바삭하고 속은 말할 수 없이 부드럽다. , 버터와 함께 즐기기도 하고 샌드위치로 즐기기도 한다.

 

△이 빵의 이름을 안다면 당신은 진정한 인싸(인사이더)

이렇게 익히 알려진 빵들도 있지만 최근 가로수길,익선동, 망원동 등의 유명 빵집에선 생소한 이름의 빵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사진 위 까늘레( 호텔 세느장 인스타그램). 아래 빨미까레(울산 오블레빵집 인스타그램
위 사진은 까늘레( 호텔 세느장 인스타그램). 아래는 빨미까레(울산 오블레빵집 인스타그램)

 

마치 물컵을 거꾸로 놓인 물컵 같은 모양의 빵 '까늘레(혹은 까눌레, cannelé)'는 사전적 의미로   '세로홈이 있는'의 뜻으로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서 유래한 지역 특산품이다.

밀가루, 우유, 달걀, 버터에 럼, 바닐라 등을 첨가하여 만든 케이크로, 작은 원통형에 세로로 홈이 파진 형태를 띈다. 겉 부분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다.

'빨미 까레(palmier carré)'의 빨미(palmier) palm tree 즉 종려나무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러 개의 얇은 겹으로 만들어진 빵의 일종으로 그 모양이 야자나무 잎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빨미를 정사각형으로 만든 것이 빨미 까레다. 까레(carré) 정사각형이라는 뜻. ‘고급스러운 엄마손파이라고도 불리우는 초콜릿 파이로 커피에 어울리는 디저트로 사랑받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빵은 우랑떡?

서양 사람들의 주 음식인 빵은 19세기 말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졌으리라는 것이 통설이다.

당시 선교사들은 숯불에 빵을 구웠는데 모양이 우랑(牛囊,쇠 불알)과 같다고 해서 '우랑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최초의 빵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제빵기술자들이 들어오면서 빵집이 생겨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것은 6.25 이후 미국이 원조 물자로 밀가루를 지원하면서 부터라고 전해진다.

빵이란 말은 포르투칼어인 팡 Pao이 일본에서 변형된 것. 포르투갈에서 일본에 빵이 들어오면서 이름도 함께 들어왔는데 일본어로는 팡(パン)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단팥빵은 일본의 무사(武士) 기무라 야스베가 1869년에 만든 것으로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단팥을 넣은 것이라고. 지금도 도쿄 긴자에 있는 '기무라야(木村屋)'는 일본 최초의 단팥빵 레시피를 고수하고 있다고.

한편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빵집은 군산 이성당이다.

 

△군산 이성당

군산은 '쌀 수탈'이라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아픈 상처가 곳곳에 남아 있는 항구도시다. 일제는 철도와 선박을 통해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날랐다. 쌀을 보다 빠르게 군산항으로 이송하기 위해 철도와 도로가 개설되었고, 일본에 이송하기 위해 항로도 개설되었다.

일본으로 공출되는 쌀의 양이 늘어날수록, 군산 지역 농민들의 삶은 힘들어져 갔다고 한다. 많은 양이 일본으로 공출되며 농민들은 자신들이 생산한 것을 뺏기고 소비할 수 있는 양은 제한되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일본으로의 쌀 공출은 수탈이다.

쌀 수탈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군산에 아이러니하게도 100% 쌀로 만든 쌀단팥빵을 팔고 있는 곳이 있다. 이 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이다.

 

군산 이성당.사진=이성당 인스타그램
군산 이성당.사진=이성당 인스타그램

 

이성당은 일본 시마네 현에서 온 히로세 야스타로라는 일본인이 1906년 군산시 영화동에 개업한 '이즈모야'에서 출발했다. 이성당이라는 상호는 1945년 해방과 함께 지어졌다. 1906년으로 계산하면 11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특히 이성당은 2006년부터 100% 쌀가루로 빵을 만들면서 전국의 명소로 떠올랐다. 대표 빵은 쌀단팥빵과 야채빵이며 손님들이 폭발적으로 몰리는 주말엔 1인당 구입 갯수를 10개로 제한 하기도 한다고.

전라북도 군산시 중앙로 177. 본관 영업시간은 오전8~오후 10. 매월 1회 비정기적 휴무.

 

대전 성심당

1956년 대전역 앞 작은 찐빵집에서 시작, 가톨릭 정신을 바탕으로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가치있는 기업이 되고자 꿈꾸는 빵집 성심당(聖心堂).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라는 원칙을 고수, 지금까지도 성심당은 대전에만 있다. 이는 프랜차이즈로 도산 위기에서 다시 일어선 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대전역점에는 환승객과 여행객들이 수십명씩 줄을 서 있기도 하며, 일부러 대전까지 기차타고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성심당 튀김 소보로. 사진=성심당 홈페이지
성심당 튀김 소보로. 사진=성심당 홈페이지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을 당시 임영진대표는 통일이 된다면 평양 혹은 함흥에 분점을 낼 생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창업주인 아버지가 실향민이라 아버지 고향에는 분점을 두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대표 메뉴 빵은 튀김소보로와 부추빵.

~목 오전 8~오후 10, 금~일, 공휴일 오전 8~오후 11. 연중무휴.

대전광역시 중구 대종로 480번길 15.

 

◆일용할 양식, 디저트 혹은 선물 아이템

기독교인이 암송하는 주기도문에 나오는 '일용할 양식'은 영어로 daily bread . 사실 빵은 서양에서는 한끼의 식사다. 가장 기본이 되는 음식인 셈이다. 

오랫동안 간식, 디저트로 여겨져 왔던 빵이 최근 우리에게도 주식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구 구성의 변화에 따라 1인 가구, 혹은 가족과 함께 살아도 혼밥을 해야하는 경우 빵은 한끼의 식사가 되기도 한다.

한 끼의 식사로 소비되는 빵도 있지만 다양한 케익은 선물에 적당한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케익은 기념일과 명절에 빠질 수 없는 선물이자 음식이며 때로는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으로 제사 상에도 오른다.

최근에는 지자체 주도로 무리한 '빵의 난개발(?)'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지역 특산물의 원조 격인 천안 호두과자와 경주 황남빵에 이어 성심당과 이성당과 같은 지역 빵집이 전국 소비자를 상대로 판매되는 것에 자극을 받아, 일본의 오미야게(土産. 일본인들이 여행이나 출장을 다녀오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사오는 지역 특산물)를 벤치 마킹하여 저마다 개발에 나선 것.

지역 특산물을 재료로 사용하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아이템을 형상화해서 만든 빵을 개발하였으나 다른 빵들과의 차별화에 성공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난 지자체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근본(?)없고 맛도 없는 빵들은 여행자들의 지갑을 열기엔 역부족인 것이다.  무리한 개발은 역효과만 낳게 된 것.

 

◆빵, 주부의 노고를 덜어줄 것인가

삼시 세끼. 법에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지만 끼니를 책임지는 주부의 손은 마를 날이 없다. 물론 최근엔 전업 남편, 휴직중인 남편들도 적지 않으니 꼭 기혼여성의 문제로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어쨌든 이런 사회적 변화 속에 빵이든 간편식이든 밥을 대체하는 것들이 많아질수록 끼니를 걱정하는 주부들의 부담은 점차 줄어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가 그랬듯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어라”를 흉내내는 건 아니지만 “밥솥에 밥이 없으면 즉석밥을 먹어라” 혹은 밥이 없으면 빵을 먹어라라고 한번씩은 선언해 봄직하다.

불행한 왕비든 행복하고 싶은 주부든 둘 다 민중(?)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다고 원성을 사겠지만 말이다.

먹기도 편하고 선물하기도 편한 빵.  밥의 자리를 넘보다 이젠 가공할 만한 위력을 떨치는 빵.

빵의 역습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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