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 멍드는 부동산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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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가락 가계부채 대책, 멍드는 부동산시장
  • 김현민
  • 승인 2015.08.2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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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양적 규제만이 능사가 아니다...리스크 관리 선행돼야

김현민

씨티그룹 글로벌캐피탈마켓 뉴욕투자은행부 차장 (前맥킨지&컴퍼니 컨설턴트)

 

 

 

"Debt is great… Debt is beautiful."

대학 시절, 파생금융상품 수업 첫 강의에서 교수님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가 2008년 가을 학기 였다. 불과 몇 일 전 미국 투자은행인 리먼브라더스가 600조원이 넘는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 신청을 했던 터였다. 금융시장에서 부채 만큼 ‘위대하고 아름다운’ 건 없다는 역설적인 표현으로 시작한 강의는 당시 뉴욕 월가를 혼돈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본질과 정책적 시사점을 끝으로 마쳤다.

최근 국내 가계부채가 1,100조원을 넘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87%를 기록하면서, 지금의 한국 경제가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발생 직전의 모습과 유사하다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작년부터 시행된 정부의 부동산 매매 활성화 정책은 나름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에도 불구하고, 가계부채 이슈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지난 2년 반 동안 정부가 가계부채 증가를 예상하지 않고 부동산 매매만 부추겼다고 할 수는 없다. 그간의 규제 완화가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어느정도 회복시킨 것도 사실이다.

 

부채의 양적 규모 억제가 중요한게 아니라, 질적 관리가 필요하다

가계부채가 급증했다고 걱정을 하는데, 부채의 양적 규모에만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아닌가 싶다. 부채의 양적 규모보다 더 중요한건 부채의 질(quality)이다.

지난 2008년 미국 상황과 비교해보자. 당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연체율은 양질의 프라임 모기지의 5-6배 수준으로 부실 대출이 전체 대출의 20%를 초과했었다. 한국에선 신용등급 7-10등급의 주택담보대출 보유 비중이 2014년 12%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LTV현황도 마찬가지다. 국내 은행의 LTV규제가 완화돼 지금 70%이고, 제2금융권 대출을 합치면 80% 수준에 이른다. 이는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과도한 레버리지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상태다.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자산 건전성 관리가 부족할 경우, 미국 서브프라임과 같은 사태가 일어났다. 한국도 ▲변동금리 대출 비중 증가 ▲비교적 낮은 원금상환 비율 등의 측면에서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와 유사하지만, 건전성 관리 측면에서 미국에 비해 양호한 편이다. 문제는 부채 규모가 얼마냐 하는 것보다 기초 자산의 건전성이 유지되고 있는지, 그에 맞는 리스크가 관리되고 있는지 여부다.

가계 부채는 저축에 대한 소비 비율(소비/저축)의 탄력성을 높이고, 시장 유동성을 키우는 순기능이 분명히 있다. 물론 그 수준이 과도하면 가계의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능력을 훼손시켜 경기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부채의 규모보다는 주택담보대출 구조의 법적 형태, 금융 기관의 자금조달 능력, 제도적 안전장치 수준 등이 가계부채의 리스크를 좌우한다. 늘어나는 가계부채를 마냥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시장 규모가 커지고 매매가 활성화 되면서 부채가 늘어나는건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갑자기 가계부채를 잡는 쪽으로 노선을 갈아탄 것이다. 한달전인 지난 7월22일 정부가 가계부채 종합관리방안을 발표했다. 장기 거치식 대출을 줄이고 원리금 분할상환 대출 비중을 높이겠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조치는 그동안 대출을 장려하던 정부의 시그널에 따라 움직이던 사람들에겐 혼란을 초래했다. 갑작스런 대출상환 부담으로 주택수요 감소는 물론 전세수요 증가로 전세값 폭등도 유발할수 있다. 내수경기 침체로 소득증가분이 저조한 상황에서 원리금 상환으로 빠져나가는 현금 흐름을 생각하면 가처분소득이 줄어 든다. 결국엔 정부가 그토록 관리해온 DTI비율 뿐 아니라 소비심리 위축 등 전반적인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관성 없는 가계부채 대책, 정책에 대한 혼란만 초래

문제는 규제 그 자체라기 보다 일관성없는 정책 방향이다. 이로 인해 정부 정책에 대한 시장 참여자들의 불신을 야기한다. 1년도 되지 않아 상반된 시그널을 주는 정부가 과연 가계 부채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효용을 달성할수 있는지’ 의문이다. 요즘처럼 민간 소비 부문이 침체된 상황에서 차라리 효과적인 재정정책이 대출 규제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마켓 펀더멘탈에 의해 움직인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LTV 한도를 포함해 금융규제, 주택가격에 대한 시장심리, 금리 변동성 등에 의해 매우 가변적이다. 따라서 LTV 규제 완화 정책은 가계부채 문제가 안정화되고 주택담보대출 구조의 질(quality)이 비거치식 구조로 개선된 이후에 점진적으로 실행했어야 했다.

최근 발표한 정부 대응책의 핵심은 이자만 갚는 거치식 대출 및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분할상환대출로 전환하고, 리스크가 높은 상호금융권의 토지 및 상가 담보대출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대출 금리를 강제할 수는 없으므로, 원금을 갚지 않는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조정하면서 부채증가를 막아보자는 속셈이다. 금융위는 또 부동산 대출 담보가치의 객관성을 높이고, 토지와 상가를 대상으로 LTV 가이드라인을 조정하는 방안을 올 하반기 중에 발표할 계획이다. 역시 순서가 뒤바뀌었다. 담보 자산의 건전성을 높이고, 분할상환대출 시스템화가 진전된 이후에 LTV를 손대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1일 긴급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금융 실물시장 동향과 함께 북한 리스크, 중국 증시 불안, 미국 금리인상 등의 복합적인 대외 리스크 가능성을 점검하고 시나리오별 컨틴전시 플랜을 논의 중이라고 발표했다. 컨틴젠시 플랜이 정책 실패를 뒷수숩하는데 사용하는 용어는 분명 아닐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벌써 9번째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대출 자산으로 주택을 마련하는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고, 이에 맞는 규제와 시장 개편이 단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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