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⑩ 첫 해외 현지 불공정거래 조사 ‘가야전자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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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⑩ 첫 해외 현지 불공정거래 조사 ‘가야전자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5.06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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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한국 자본시장을 대상으로 한 불공정거래 사건이 국내에서만 발생하는 건 아니다. 불공정거래 사건 중에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하거나 외국인인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2002년 적발된 ‘가야전자 사건’이다. 가야전자는 차량용 앰프 생산 업체로 2000년 10월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곳이었다.

1999년 JP모간(JP Morgan) 홍콩지사에서 근무하던 한국 국적의 지모씨는 국내 금융기관을 상대로 파생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졸업한 미국 워싱턴 대학교 후배 신모씨와 독립, 같은해 8월 홍콩에 MH라는 투자자문사를 설립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당시 코스닥 상장사 바른손의 최대주주였던 홍콩의 로터스(Lotus) 헤지펀드에게 국내 유가증권 관련 자문을 해주는 것이었다.

◆ 기존 해외 조사 사례 없다는 점 노려

이 가운데 지씨와 신씨는 2002년 8·9월 두 달에 걸쳐 가야전자에 대한 시세조종에 나서기에 이르렀다. 홍콩에서 개설된 역외펀드 명의의 계좌에 대해 금융당국의 추적·조사가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외국인 투자자로 위장한 것이다. 두 사람은 시세조종 방식으로는 ▲통정매매주문(884회) ▲허위매수주문(137회) ▲고가매수주문(334회) 등을 1355회에 걸쳐 이용했다.

그 결과 가야전자 주가는 2002년 8월 6일 3050원 수준에서 같은달 27일 6250원까지 치솟았고 지씨와 신씨는 약 24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당시 금융감독원 시장감시팀은 감시활동을 수행하던 중 2002년 7~9월 사이 가야전자 주식에 대한 시세조종 혐의를 포착, 한국증권업협회에 감리를 요청했다. 이어 증권업협회는 외국인 혐의자가 시세조종을 일으킨 것으로 보인다는 답변을 내놨다.

◆ '옛 LG증권' 주식 미수 사건 연관

특히 조사 과정에서 이 사건과 2002년 12월에 발생한 2000억원 규모의 ‘LG증권(현 NH투자증권)주식 미수 사건’의 연관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야전자 시세조종에 이용된 계좌 개설자와 LG증권 관련 사건에 사용된 계좌 개설자가 일부 일치했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즉시 지씨와 신씨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두 사람은 국내 증권사의 소홀한 고객신용평가를 노리고 역외펀드 명의의 위탁증거금 면제 계좌를 다수 개설했다. 당시에는 외국인투자자라는 이유만으로 신용도를 고려하지 않고 위탁증거금 면제 계좌를 개설해주는 관행이 있었다. 이들은 해당 계좌를 이용해 LG증권 홍콩현지법인으로부터 고이율(연 24%)로 자금을 차입해 주식을 매매했다.

그러나 누적된 투자손실을 단기간에 만회하기 위해 대규모로 매수한 삼성전자 주식 등이 하락세를 타면서 지씨와 신씨는 결제일에 주식매수대금 2032억원(LG투자증권 2009억원·대신증권 23억원)을 결제하지 못하는 미수사고를 저질렀다.

◆ 홍콩 증권감독기관 협조로 조사 진행

금감원은 이 사건의 면밀한 조사를 위해 홍콩 현지 조사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담당 조사원은 조사에 착수하기 전 홍콩 증권감독기관인 SFC(The Securities and Futures Commission)와 20여 차례의 사전 협의를 통해 출석요구서 대리 발송과 조사실 이용 허가 등을 약속 받았다.

이를 통해 조사원은 SFC 내의 조사실에서 외국인 5명과 내국인 4명 등 총 9명에 대한 문답을 실시하고 관련 증거를 입수할 수 있었다. 다만 지씨는 SFC를 통한 출석요구에 불응하는 한편 미국으로 도피해 문답에 나오지 않았다. SFC는 혐의자 경력 조회를 비롯해 홍콩법률 관련 자문, 홍콩법인 관련 서류 제공 등의 각종 편의를 제공해줬다. 특히 당시 조사 결과 혐의자들은 외국인이 아닌 홍콩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 밝혀졌다.

금감원은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지씨와 신씨를 시세조종 혐의 등으로 증권선물위원회를 통해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두 사람을 기소했고 최종적으로 지씨와 신씨에게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 최초의 해외 현지 불공정거래 조사

가야전자 사건은 금감원이 처음으로 불공정거래 사건에 대해 해외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즉 이 사건으로 금감원은 시장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모든 불공정거래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낼 수 있었다.

현재 금감원은 혐의자가 해외에 있는 경우 그 국가의 감독기관과 사전에 체결된 MOU(Memorandum of Understanding·양해각서)에 따라 협조를 요청한다. 해외 감독기관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출석요구서 대리 발송를 비롯해 조사실 제공 등 현지 조사에 필요한 각종 편의를 제공한다. 반대로 해외 감독기관으로부터 국내 거주 혐의자에 대한 조사 협조 요청을 받을 경우 금감원 역시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금융위원회는 해외 증권감독당국과의 감독정보 교류 및 주식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등에 대한 국제 공조를 위해 2005년부터  국제증권감독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Securities Commissions·IOSCO)의 MMOU(Multilateral Memorandum of Understanding Concerning Consultation and Cooperation and the Exchange of
Information) 가입을 추진, 2010년 6월 정회원으로 가입했다.

IOSCO MMOU는 2002년 5월 출범한 ‘자문·협력·정보교환에 관한 다자간 양해각서로서 회원국 간 정보교환 및 상호협력 절차를 규정하고 있다. MMOU에 가입할 경우 기존의 일대일 체결 방식에서의 번거로움이 해소되고 가입 기관 간 상호 공조 및 정보 교환이 일정한 프로토콜에 의해 이뤄져 불공정거래 조사가 수월해진다. 

이어 IOSCO는 2016년 8월 국제공조를 지속적으로 강화할 목적으로 기존 MMOU 보다 강화된 내용의 EMMOU(Enhanced MMOU)를 도입했다. 금감원·금융위는 지난해 3월 가입신청서를 제출, 12월에 10번째 EMMOU 회원국이 됐다.

지난 2002년 가야전자의 해외주가조작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에 벤처 투자붐과 코스닥 신드롬이 시들해진 가운데 투자자들에게 코스닥시장에 대한 불신을 안겨주기도 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사진=연합뉴스.
지난 2002년 가야전자의 해외주가조작 사건은 당시 우리 사회에 벤처 투자붐과 코스닥 신드롬이 시들해진 가운데 투자자들에게 코스닥시장에 대한 불신을 안겨주기도 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없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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