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⑧ '보물선' 이용한 주가조작 첫 사례...삼애인더스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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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⑧ '보물선' 이용한 주가조작 첫 사례...삼애인더스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4.21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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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그룹이 지난해 7월 공개한 돈스코이호 사진.
신일그룹은 지난해 7월 ‘돈스코이호’ 인양계획을 발표했으나 투자사기로 밝혀졌다. 신일그룹이 지난해 7월 공개한 돈스코이호 사진.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지난해 주식시장에서 가장 ‘다사다난’했던 종목 중 하나는 ‘보물선 테마주’였다. 설립된 지 50여일밖에 되지 않은 신생회사였던 신일그룹은 지난해 7월 17일 1905년 러일전쟁에 참가했다가 침몰한 러시아 함선 ‘드미트리 돈스코이(Dmitri Donskoii)호’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곧 증권가에서는 이 배에 150조원에 달하는 금괴가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투자자들은 코스닥시장 상장사인 제일제강에 몰려들었다. 앞서 지난해 7월 5일 제일제강은 최용석·류상미씨와 최대주주변경을 수반하는 주식양수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한 바 있다. 이중 류상미씨가 신일그룹 대표이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일제강이 보물선 테마주로 분류된 것이다. 제일제강 주가는 종가 기준 지난해 6월 29일 1855원이었으나 7월 17일에는 4160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신일그룹의 돈스코이호 인양은 ‘투자사기’로 밝혀졌다. 지난해 8월 경찰 조사 결과 인양 경험이 없었던 회사는 애초부터 돈스코이호 인양 의사가 없었다. 인양업체와 ‘동영상 촬영 및 잔해물 수거’만을 용역 대상으로 계약을 맺은 데다 계약금은 일반적인 선체 인양 비용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또 신일그룹은 자본금이 1억원에 불과해 투자금으로 인양 대금을 충당해야 했다. 사기 논란이 불거기자 제일제강 주가는 금세 주저앉았고 지난해 7월 31일에는 146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 가운데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10월 제일제강에 대한 불공정거래 조사를 통해 부정거래,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등의 혐의를 확인했다. 이어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 1월 정례회의에서 제일제강과 신일그룹 관계자 10여명을 검찰 고발·통보 조치하기로 의결했다.

◆ 보물선을 이용한 첫 주가조작 사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신일그룹·제일제강 사례처럼 보물선을 이용한 주가조작 사례는 심심찮게 등장했다. 물론 실제 1976년 전남 신안군에서 중국 원나라 무역선이 발굴된 적이 있었다. 또 1981년 충남 태안군에서는 700년 전 태풍으로 침몰한 배에서 2만여점의 도자기가, 1984년 전남 완도군에서는 11세기 고려 시대 도자기 운반선(추정)을 통해 많은 유물이 인양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아직까지 보물선 인양이 이뤄진 사례는 없다.

돈스코이호가 세간의 관심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 12월 당시 법정관리 중이었던 동아건설은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고 발표, 투자자들을 흥분케 했다. 주가는 17일 연속 상한가로 치솟았다. 하지만 회사가 돈스코이호의 위치조차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동아건설은 부도를 막지 못해 상장폐지 수순을 밟았다.

2001년 적발된 ‘삼애인더스 사건’은 보물선을 처음으로 불공정거래에 이용한 사건이다. 삼애인더스 대표이사였던 이용호씨는 동아건설 이후 주목받게 된 돈스코이호를 이용해 주가를 띄울 모략을 세웠다. 먼저 2000년 12월 21일 보물발굴권 허가업자인 오모씨에게 전남 진도군 임회면 해저 등에 매장된 금괴 발굴 사업에 투자하겠다고 구두 약속을 했다. 진도 죽도 앞 바다에는 2차 대전에서 패한 일본군이 동남아 등지에서 약탈한 귀금속을 길이 120센티미터(cm), 굵기 20cm의 포탄 탄피 25개에 넣어 바다 밑 천연동굴에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씨는 이어 ▲죽도해저매장물 발굴사업 ▲군산앞바다 침몰선 발굴 인양사업 ▲제주도 서측 해역가스 탐사 사업 ▲파퓨아 뉴기니 금광개발사업 ▲거문도·거제도 앞바다 침몰선 인양사업 등을 내세워 2001년 1월 10일 삼애인더스 내 자원개발사업부를 만들었다. 한 달 뒤인 2월 8일에는 오씨 등과 정식으로 부안 앞 해상매장물 발굴협정서를 체결하고 15일 보물 발굴사업 운영자금 조달을 위한 약 156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

이씨는 이 공시 전에도 약 20조원 규모의 보물선 발굴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정보를 퍼뜨려 삼애인더스 주가를 띄우고 있었다. 2001년 1월 2일 연초 2250원에 불과했던 주가는 공시 당일부터 3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에 힘입어 2월 19일 1만5250원까지 상승했다. 이후 동아건설이 보물선 인양권 인수설을 부인하자 잠시 하락세를 탔지만 5월 14일 삼애인더스가 발굴 사업 체결 계약을 공시하면서 1만5000원대를 회복했다.

2001년 6월 삼애인더스의 보물선 발굴 사업설명회 모습. 사진=MBC 보도화면

◆ 300만달러 규모 해외전환사채 차명 매수…수백억원대 부당이득 

그러나 돈스코이호는 이씨의 주가조작 수단에 불과했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 이씨는 2000년 11월 13일부터 12월 18일까지 총 5회에 걸쳐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삼애인더스가 발행한 외화표시 전환사채(CB) 300만달러어치를 증권사 영업직원 명의로 매수했다. 이어 2001년 2월 1일에 전환사채 전부를 모두 주식으로 전환했고 보물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하자 매도에 나서 수백억대의 부당이득을 취했다.

또 이씨는 대양상호신용금고 실질 대주주인 김모씨에게 삼애인더스의 보물선 발굴관련 미공개정보를전달하기도 했다. 김씨 역시 삼애인더스 전환사채 300만달러를 매수, 주식으로 전환 후 매도하는 과정에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다. 이씨로부터 미공개정보를 받은 유사투자자문업자인 김씨는 회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매매하게 했다.

이씨는 횡령 및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2001년 9월 검찰에 구속됐다. 여기에 한 달 뒤 삼애인더스 보물선 개발을 위해 받은 ‘공유수면 점유·사용 허가기한’이 만료되자 주가는 속절없이 추락했다. 당시 회사 측은 20여일 간 굴착기 2대와 20여명의 인부를 동원해 17미터 아래까지 파내려갔지만 보물 매장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최종적으로 발표했다. 결국 삼애인더스는 2002년 10월 22일 감사의견 거절을 사유로 결국 상장폐지됐다. 

재판에 넘겨진 이씨는 계열사 자금 횡령과 증권거래법 위반 등으로 5년 3월의 징역형과 250만원의 벌금형을 최종 선고받았다. 2003년에는 구치소 수감 중에 휴대 전화를 몰래 들여와 회사 경영에 개입한 혐의로 징역 6월의 실형이 추가됐다. 

삼애인더스 사건은 ‘이용호 게이트’라는 권력형 비리 사건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수사 과정에서 이씨가 여당 국회의원, 검찰, 국정원 등에 전방위적으로 로비를 한 사실이 드러나 세상에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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