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뉴스=박대웅 기자] 'LTE보다 20배 빠른 5G, 그러든지 말든지 난 2G 쓴다.'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5G(세대) 시대가 개막했지만 여전히 '더 빠르게 또는 가장 빠르게'란 속도 경쟁에 신경 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2G폰 사용자들이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국내 2G 가입자는 180만명 규모다.

이동통신사별로 보면 SK텔레콤이 100만5000명(55.7%)으로 가장 많고, LG유플러스가 71만6000명(39.7%), 알뜰폰이 8만5000명(4.7%) 정도다. KT의 경우 2012년 LTE 주파수 대역 확보를 위해 2G 서비스를 강제 종료하면서 2G 가입자가 없다. 통신업계는 2G 주파수 할당이 종료되는 2021년 6월에는 100만 명 미만이 2G 서비스를 이용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같은 `문화 지체자` 현상은 2G서비스 이용자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이젠 생활 필수품이 된 윈도우나 한글 워드프로그램이 업그레이드 될때 마다 `최신판`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제조사들은 편의성과 안정성 등을 이유로 업그레이드 버전을 지속적으로 내놓지만 이미 익숙해진 구(舊)버전을 고수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기술진보가 익숙함과 이별이라면 차라리 옛것을 지키겠다는 소비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다.    

◆'나의 길을 간다' 2G폰을 고집하는 이유

2G폰은 보통 음성통화와 문자 서비스를 제외한 인터넷 사이트 검색, 스마트뱅킹, 모바일 뱅킹, 모바일 메신저, 모바일 커뮤니티, 음악 감상, TV 시청 등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2G폰을 고집하는 소비자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경기도에서 유통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 씨(54·남)는 직업상의 이유에다 통화품질 특정때문에 2G폰을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직업 특성상 전화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화 번호를 바꿀 수도 없고, 바꿀 생각도 없다"며 "모터나 변압기 등을 거래하는 직업의 특성상 상품 교체 주기가 길다보니 10년 전에 설치한 상품을 교체하겠다는 문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전화번호가 바뀌면 손해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어 그는 "취미로 등산을 즐기는데, 스마트폰은 송수신이 안 되는 곳이 있고 통화 음질도 별로다. 반면 2G는 잘 터지고 통화품질도 좋다"고 만족해 했다. 

국내 유력 보험사에서 설계사로 재직 중인 김모(49·여) 씨 역시 비슷한 이유로 2G폰을 고집했다. 그는 "보험업을 한 지 20년쯤 됐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011' 번호를 쓰고 있다"면서 "고객과 신뢰가 생명인 보험업 특성을 고려할 때 번호를 바꿀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울러 그는 "2G폰이 고장도 잘 안나고 통화 연결도 바로 바로 되고 음질도 좋다. 오히려 영업에는 2G폰이 더 적합하다. '011' 번호가 귀하다보니 오히려 고객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다"라면서 "실제로 담당 보험설계사가 바뀌어 상품 교체를 고려하던 한 고객은 제 011 번호를 보고 '신뢰가 간다'며 계약을 한 적 있다. '011' 번호는 나에게 훌륭한 마케팅 수단인 셈"이라고 말했다.

◆2G폰 이용자, 카톡은 어떻게 할까

"카톡, 카톡" 그와 인터뷰 중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렸다. 2G폰은 대부분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떻게 카카오톡을 이용할까.

해결책은 테블릿PC였다. 어딘가에서 카카오톡 알림 소리가 들리자 그는 지체없이 테블릿PC를 꺼내 메시지 내용을 확인했다. 보험업에 종사하는 김 씨는 "워낙 많은 업무가 카카오톡으로 진행되다 보니 테블릿PC로 카카오톡, 모바일 뱅킹, 전자계약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했다. 테블릿PC를 2G폰 사용을 위한 보완재로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출장이나 여행 등 국외로 나갈 경우는 어떨까. 2G폰은 로밍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김 씨와 보험업에 종사하는 김 씨 모두 "2G폰은 로밍 서비스가 되지 않는다"면서 "로밍도 해외에서 '포켓 와이파이'를 준비해 테블릿PC를 이용하면 별 문제는 안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익숙함과 생이별할 생각 없어요" 

2G폰 이용자들은 5G 시대가 열렸지만 2G폰을 유지하겠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통화 품질을 두고는 다소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나왔다. "5G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근래들어 통화 품질이 예전같지 않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상대방 목소리가 작게 들리거나 상대는 문자를 보냈다고 하는데 수신이 안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들은 "2G 서비스를 종료시키려고 통신사들이 통화 품질 개선에 소극적인 게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SKT와 LG유플러스는 이같은 의심 어린 눈초리에 억울하다는 태도다. 업체 관계자는 "통화 품질이 나쁘다면 통신망 뿐만 아니라 단말기에도 문제가 있다. 2G 단말기는 오래된데다 수리도 어려워 단말기에 문제가 생긴다면 통화 품질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과 LG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는 2014년을 마지막으로 2G폰 생산을 중단했다. 

이같은 불편에도 2G폰 사용자들의 고수 의지는 꺾일 줄 모른다. 이들은 "100만원 내외의 최신 스마트폰을 최대 지원금을 받아 산다고 해도 70만원을 훌쩍 넘는다. 굳이 최신 스마트폰을 써야하는 필요를 느끼지 않는 상황에서 경제적 부담만 키우는 선택은 꺼려진다"라면서 "배터리 수명이 길고 스미싱 등 신종 모바일 사기 피해가 없는데 십수년 전부터 사용한 번호를 바꿀 필요가 있가 있겠냐"고 반문했다. 

'01x'번호를 계속해서 유지하려는 움직임은 비단 이들에게만 국한된 건 아니다. 지난 2012년 2G 이용자들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010통합반대운동본부' 블로그를 개설하고 집단행동에 나섰다. 이들은 정부의 번호 통합 정책이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2013년 헌법재판소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청구를 기각, 저지노력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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