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해부대 위의 스승이 가르치는 어느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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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책이야기] 해부대 위의 스승이 가르치는 어느 교실
  •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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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한전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리뷰
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몸을 해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대호 북칼럼니스트] 책을 읽는 건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다. 공부하는 목적이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나 좋은 자리를 얻고 싶어서일 때가 많지만 그렇게 공부한 내용이 살아가는 데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오히려 입시나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얻을 때가 많지 않을까? 인문학이나 자연과학을 읽는 이유가 그렇다. 물론 아는 체하기 위해 읽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자들이 걸어간 길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인문 교양서적이나 대중 과학서적이 그런 역할을 한다. 자기계발서의 경우 평소에 어렴풋이 알고 있던 걸 책에서 정리된 문자와 문장으로 확인하고 만족감을 얻는 데에 미덕이 있다. 그러나 인문 교양서적이나 대중 과학서적은 어떤 경지에 오른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일반인 시각에 맞춰 엿보는 데에 미덕이 있다.

이 책은 제목부터 그런 지적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주 특별한 해부학 수업. 타이완 츠지 대학교 의대에서 해부학을 강의하는 허한전이 썼다. 목차를 보니 해부학 교실을 글로 옮긴 것 같았다. 해부학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손과 발, 배와 가슴, 얼굴과 뇌까지 해부하는 과정을 수업 순서처럼 쓴.

해부는 의사 등 특수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 외에는 절대 접할 수 없는 비밀 영역이다. 그 때문인지 'CSI' 등 법의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들이 사람들 눈을 사로잡곤 한다. 이 책도 사람들이 잘 모르는 영역을 자극적으로 그렸는가 했는데 머리말과 리뷰 기사를 보니 조금 다른 면이 보여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 세계를 엿보고 싶다는.

시신 스승 그리고 인간에 대한 예의

끝까지 읽어본 다음에 든 느낌은 부위별로 해부를 하며 설명하는 사람 몸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해부를 당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죽은 사람들, 죽음 앞에서 자신의 몸을 기증한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타이완뿐 아니라 전 세계 의대는 기증받은 시신으로 해부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신 기증이 흔한 일일까?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 문화권에서는 자기 주검이 온전히 보존되기 바라는 사람이 많아서 자발적 시신 기증이 드물다고.

그런데 저자가 해부학 교수로 있는 츠지 대학에는 시신을 기증하겠다는 동의서만 3만 장이 넘게 접수되었다고 한다. 이 학교를 운영하는 종교재단의 정신을 이었다지만 그걸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 걸까?

이 학교에서는 해부할 때 쓰는 주검을 시신 스승이라 부르며 말 없는 스승이라고 예우한다. 서문을 읽을 때는 형식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읽을수록 시신 스승이라는 말이 진심으로 와 닿았다. 해부에 쓰이는 시신을 학습 도구가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와 학생들의 진심이 느껴진 것.

그 과정 중 하나로 해부 수업을 앞둔 학생들이 시신 기증 가정을 방문한다. 향후 수업에서 메스로 조직과 장기를 가를 시신의 자녀 혹은 배우자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기증자가 살아온 삶을 느껴보고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라는 의미. 학습 도구로 타자화하는 것이 아닌 관계를 맺게 하는 것이었다.

기증계약서에 쓴 그들의 이야기도 들려준다. 특히 죽음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남긴 메모들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내가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의대생들의 말 없는 좋은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정말 기쁘다.” (26)

 

당신이 이런 메모를 읽은 학생이라면 수업에 어떻게 임하겠는가? 시신 스승의 아낌없는 희생과 사랑에 보답하듯 성장해 가는 학생들 모습을 잔잔하게 그렸다. 서툴지만 정성껏 가르고 자르고 하는 모습. 시신을 생명이 없는 학습 도구가 아닌 배울 기회를 준 스승으로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마음을 곳곳에서 묘사하고 있다.

해부학 과정을 모두 마치면 장기와 조직 그리고 신체 부위를 원래대로 봉합한다. 생전 모습 그대로는 아니겠지만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꼼꼼히. 그리고 학생과 교수들이 함께 시신 스승들의 장례를 정성껏 치러준다. 학생들이 제문도 직접 써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이렇게 교육받으면 어떤 의사로 자라날까? 읽다 보니 교육 이야기, 선생 혹은 스승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혔다.

글 곳곳에 저자가 품은 마음이 느껴졌다. 학생을 생각하고 해부학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해부를 공부하는 학생이 나중에 의사가 되어 품게 될 마음가짐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비록 이 한 권 책으로만 만나 봤지만, 저자가 좋은 스승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경험이 저자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책 마지막 부분에 저자가 어린 시절 오빠에게 닥친 안타까운 사건을 회상한다. 오빠의 선생님은 그를 불량소년이라며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다고. 주변의 기억과는 다른 평가를 한 그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같은 학교에 다닌 저자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의 말 한마디는 학생에게 큰 영향을 주는데. 그렇지만 저자는 그 일을 교훈으로 삼은 듯하다.

 

이제 나도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이 되었다. 나의 뇌리에 새겨진 옛이야기는 마음을 아프게 했든 감사한 것이었든 나에게 특별한 체험을 하게 해주었다. 내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었고, 주어진 이 직분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깨달음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진지하고 열성적이며 따뜻한 스승이 되고 싶다.” (231)

 

이런 마음가짐이 책 전체에 녹여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저자가 아이를 낳은 후 나온 태반을 해부학 교실에 제공하는 모습에서. 태반은 시신 스승에게서는 절대 받을 수 없는 조직이었는데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고 술회한다. 이런 스승의 마음을 제자도 닮는가 보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나중에 제가 아이를 낳으면 제 태반을 선생님께 드릴게요.” (151)

 

결국,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보게 된 낯선 일들은 모두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고, 옳게 실천한 사람들 덕분이었다.

기증자가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증받은 장기와 조직의 보관도 중요한 현실이다.
기증자가 늘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증받은 장기와 조직의 보관도 중요한 현실이다. 사진=연합뉴스

사후 기증자들의 숭고한 마음을 기억한다면   

전체적으로는 해부와 의학에 관한 이야기라 한국 상황과도 비교해보고 싶었지만, ‘기증이라는 화두가 더 크게 와 닿았다. 지난 주말 이틀 동안 나온 어떤 뉴스가 그런 마음을 확 들게 했다. ‘한국공공조직은행에 관한 뉴스다.

조직은행은 뼈와 인대 등 인체 조직을 기증받아서 필요한 환자들에게 연결하는 공공기관이다. 그런데 잘못된 보관방법 때문에 오염된 인체 조직이 많다고 고발한 뉴스였다. 게다가 오염된 조직을 병원에 공급하기까지 했다는.

예산이 부족해서 제때 투자하지 못해서 생긴 일이기도 했지만, 사명감 없는 사람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뼈나 조직을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직원도 있었고.

다른 생명을 사랑하는 숭고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기증한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떠올랐다. 그 뉴스를 봤다면 어떤 마음일까. 작년에는 뇌사자에게서 장기 적출 수술을 한 시신을 병원에서 나 몰라라 했다던 뉴스도 기억이 났고. 이런 뉴스가 계속된다면 예비 기증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까? 저자의 마지막 말이 계속 떠올랐다.

 

생명을 존중하고 과감히 헌신하는 정신도 있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 (255)

 

나도 믿는다. 아니,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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