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흑역사30년]⑤“실적 좋아”...친구에게 슬쩍 ‘바로크가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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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흑역사30년]⑤“실적 좋아”...친구에게 슬쩍 ‘바로크가구 사건’
  • 김솔이 기자
  • 승인 2019.03.29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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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공개 `중요 정보`기준 마련 계기..."투자자에 영향 미치면 중요"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 그해 4월 증권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은 최초로 상장기업의 내부자거래를 적발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다. 금융감독원이 얼마 전 펴낸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는 자본시장 30년의 역사를 담았다. 금융감독원의 도움과 다방면의 취재를 통해 30년간 적발된 불공정거래 주요사건을 정리한다. 이 연재 시리즈의 목적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과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일조한다는 데 있다. [편집자 주] 

[오피니언뉴스=김솔이 기자] 1980년대 중반 이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내부자거래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내부자거래를 한 상장법인 임직원과 주요주주에 대한 재는 이익 박탈이라는 간접적인 형태로 이뤄졌다. 불법행위로 챙기는 이익이나 다른 투자자에 대한 피해규모에 비해 제재가 약하다 보니 있으나마나한 규제 아니냐는 지적들이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시장의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1987년 11월 증권거래법 제9차 개정에서 감독당국은 내부자거래에 대한 규정을 강화한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기적 거래 금지 조항과는 별도로 미공개정보 이용을 금지‧처벌하는 조항을 도입했다. 누구든지 특정 유가증권의 매매와 관련해 직무‧지위에 의해 얻은 내부정보를 자기‧타인을 위해 이용, 유가증권을 매매거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게 하는 것이 골자다.

또 그 전까지는 내부정보 이용의 입증 책임을 매매차익 반환 청구자가 하도록 돼 있어 규정의 실효성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개정안에서는 입증 책임 소재를 바꿨다. 6개월 이내의 단기매매로 매매차익을 얻은 경우 내부자가 내부정보를 이용하지 않았다는 걸 입증하도록 전환한 것이다. 또 상장법인 외 등록법인 임직원‧주요주주도 단기매매차익의 반환 대상자에 포함시켰다.

이후에도 내부자 거래에 대한 제재는 강화됐다. 1991년 12월 제10차 증권거래법 개정에서는 현행 자본시장법과 유사한 수준으로 ‘중요정보’나 ‘공개시기’ 등의 개념을 규정하면서부터 규제 실효성을 높였다. '내부자'의 범위도 확대됐다. 기존에는 내부자를 ‘미공개정보를 직무 또는 지위에 의해 지득한 자’로 규정했으나 개정안에서는 회사 내부자, 준내부자와 정보수령자를 모두 내부자 범위에 넣었다.

내부자 거래의 규제 대상이 되는 내부정보의 개념도 기존 ‘특정 유가증권에 관하여 일반적으로 공개되지 아니한 정보’에서 ‘증권거래법상 상장법인의 신고사항 중 투자자의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로 규정됐다.  

◆ 미공개정보 이용 판례 만든 ‘바로크가구 사건’

미공개정보 이용에 대한 법원 판례가 생겨난 것도 이 즈음이다. 당시만 해도 ‘중요정보’의 구체적 판단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법원은 주로 미국의 판례를 참고해왔다. 앞서 소개한 ‘신정제지 사건’에서 법원은 1968년 미국의 ‘텍사스 걸프 설퍼(Texas Gulf Sulphur‧TGS) 사건’ 판결을 원용, 정보의 중요성 여부에 ‘중대성·개연성 기준(magnitude·probability test)’을 적용했다.

당시 미국 연방제2항소법원은 ‘TGS사가 광물탐사 결과 양질의 광물질이 저장된 지층을 발견했다’는 정보가 ‘Rule 10b-5’의 구성요건인 중요정보 여부를 판단하면서 ‘중대성·개연성 기준’을 언급했다. 법원 측은 “유동적인 부분은 있지만 동 탐사정보가 해당 정보의 중요성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사실로 확정될 개연성(probability)이 있다면 중요정보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993년 적발된 ‘바로크가구 사건’은 ‘신정제지 사건’과 더불어 미공개 ‘중요정보’에 대한 법원의 판단기준이 미흡한 상황에서 판례를 만든 사례다.

인천에 있는 가구전문 생산업체였던 바로크가구는 1992년 초 실적 부진으로 주가 하락을 겪었다. 시장에는 부도설이 돌았고 회사는 같은해 4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증권거래소를 통해 부도설 관련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주가는 1년 만에 ‘반전 신화’를 썼다. 1993년 초부터 상승세를 보이더니 3500원 수준에서 2만원까지 급등한 것이다. 당시 증권감독원은 증권거래소로부터 내부자거래 혐의 사실을 통보받고 2월과 4월, 6월 세 차례의 예비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혐의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후 7월말부터 12일간 본격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 임원이 증권사 다니는 친구에게 실적 정보 전달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바로크가구의 박모 경리담당 상무이사는 1992년 12월 하순 열린 임원회의에서 회사의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940억원, 14.8억원으로 1년 전보다 70.1% 및 131.2%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씨는 이 사실을 친구인 동부증권 영업부장 임모씨에게 전화로 전달했다. 또 “예상 배당률 및 자금사정의 호전으로 부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도 알려줬다.

내부정보를 입수했다고 판단한 임씨는 1993년 1월 5일부터 사흘간 영업부에 증권계좌를 보유한 자신의 관리고객 7명에게 이 정보를 주식매매에 이용하도록 권유한 뒤 바로크가구 종목의 매매거래를 일임 받아 주식 20만5600주(약 31억원)를 매매했다. 

당시 바로크가구의 대표이사였던 위 모씨의 내부자거래 혐의도 조사 과정에서 포착됐다. 위씨는 한양증권 부평지점 등 5개 증권사 8개 지점의 14개 계좌를 이용해 1991년 10월 25일부터 1992년 11월 11일까지 주식 7만5783주를 매수했다. 이후 6개월 이내 전량 매도하는 과정에서 단기매매차익 1억5000만원을 챙겼다. 

위씨는 차명계좌에서 매매한 주식과 지인에게 담보로 제공한 주식 등을 포함한 총 57만8958주에 대한 소유주식 변동내용을 법정기한 내에 증권관리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도 받았다. 

증관위는 증감원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1993년 11월 박씨와 임씨를 내부자거래 금지 위반으로 고발했다. 위씨에게도 소유주식 변동보고의무 위반 및 내부자로서 단기매매차익을 취득한 행위를 고발하는 한편 단기매매차익을 법인에 반환하도록 청구했다.

◆ 대법원, 중요정보 판단 기준으로 ‘시세영향 기준’ 적용

1심 재판부는 박씨에 대해 증감원의 조사 결과를 인정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박씨는 자신이 임씨에게 알려준 실적 내용은 이미 신문에 보도된 공개된 정보라고 주장했다. 즉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는 취지였다. 결국 대법원 상고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 미공개 중요정보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일부 언론에 추측 보도된 바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관계 법령에 따라 일반인에게 공개된 바 없는 이상 미공개 정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특히 대법원은 중요정보 판단 기준으로 ‘시세영향 기준’을 적용, “일반투자자들이 안다고 가정할 경우에 그 유가증권의 가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실을 말한다”고 판시했다. 즉 미공개정보 이용 행위의 위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 투자신탁회사의 첫 주가조작 적발 사례

‘바로크가구 사건’은 당시 영향력이 막강했던 기관투자자였던 투자신탁회사의 주가 조작이 처음으로 적발된 사례이기도 하다.

1993년 중앙투자신탁에서 운용부 차장으로 근무하던 남 모씨는 신탁재산에 편입된 바로크가구 주식(9만5910주) 일부를 매도하는 과정에서 시세를 조정했던 것이다. 남씨는 1월 15일 오전 2만주를 1만6000원에 매도 주문한 후 매도물량 누적으로 주가가 하락하면 주문을 취소해 매도물량을 줄였다. 그런 다음 2만주를 다시 매수 주문해 1만6000원 대 이하의 매도물량을 소진시키고 이후 매수 주문가격을 상한가인 1만6300원으로 정정하는 수법으로 바로크가구의 시세를 안정‧고정시켰다. 

이는 본인이 소유한 주식을 고가에 매도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주문과 주문 취소를 반복한 행위로 당시 증권거래법 제105조에서 금지하고 있는 시세조종으로 판단됐다. 다만 증관위는 남씨가 반복적‧지속적으로 주문을 하지 않은 점을 감안해 형사조치 대신 회사 측에 견책 처분을 요구하는 행정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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