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낙규의 "철학, 축제에 빠지다" <7회>니체, 춘천마임축제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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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낙규의 "철학, 축제에 빠지다" <7회>니체, 춘천마임축제를 가다
  • 오피니언뉴스
  • 승인 2015.08.12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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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神)의 죽음

‘쉿 오직 몸으로만’, ‘태초에 몸이 있었다’, ‘미치지 않으면 축제가 아니다’...

2015 춘천마임축제의 카피다.

춘천마임축제에는 3대 난장이 있다. 첫 번째 난장은 개막축제인 ‘아! 水라장’, 두 번째 난장은 금요일 밤의 ‘미친 금요일’, 세 번째 난장은 ‘도깨비 난장’이다.

춘천시내 곳곳에서 축제가 열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미로로 얽힌 도깨비굴에서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테세우스가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하고 미궁을 무사히 빠져나오듯이, 도깨비 난장을 마음껏 즐기고 탈출하기 위해 아리아드네의 실을 꼭 붙잡고 춘천마임축제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개막난장 ‘아! 水라장’

춘천의 중심부인 브라운 5번가, 명동, M백화점에 이르는 4차선거리에서 물과 사람,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하나 되는 질펀한 난장 한 판이 벌어진다.

‘아! 水라장’의 또 다른 카피는 ‘도심을 뒤집어라~~아! 水라장’.

일 년에 딱 한 번 도심의 일상적인 공간은 일탈 공간으로, 공감 공간으로, 난장 공간으로 그 자리를 양보한다. 길거리 전체가 무대다.

시민과 깨비장(스태프), 깨비(자원활동가), 공연자들이 한데 어울려 다양한 놀이와 공연으로 마음껏 ‘끼’를 발산하며 시내 한복판을 발칵 뒤집어 놓는다. ‘아! 水라장’의 주제공연은 수신(水神)과 화신(火神)의 대결 그리고 정화(淨化), 난장 공연이다.

물의 도시 춘천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공연으로 세상의 분란을 상징하는 ‘화신’과 정화와 새로움을 뜻하는 ‘수신’의 싸움, 이를 통한 화합과 평화를 보여준다.

 

 

컬러링 로드. 도로 위에 온갖 낙서를 한다. 빗자루가 붓이 되고, 아스팔트가 스케치북이 되고, 각종 분필과 컬러가 물감이 되어 꿈과 동심을 그린다. 어떤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낙서를 물로 다 씻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제 물의 도시 춘천답게 머리 위로 떨어지는 차가운 물폭탄, 소방차와 물탱크차에서 뿜는 물대포! 폭발하는 에너지와 살아있는 음악으로 축제는 시작된다.

영웅시대의 도래! 기관총 물총, 뚫어뻥 같이 생긴 피스톤 물총, 람보의 무기인 M60, 물 수류탄, 소화기처럼 생긴 물통과 연결된 화염방사기 같은 물대포, 심지어는 오른손엔 물총, 왼손엔 바가지를 든 쌍총까지 각종 신무기를 장착한 영웅들이 물총을 쏘거나 물을 뿌린다.

귀여운 4살짜리 영웅은 다림질용 분무기로 오빠들에게 물을 뿌린다. 최고 용감한 영웅은 큰 물통을 번쩍 들고 사방팔방으로 물을 쏟아붓는다. 빨강, 노랑, 파랑, 분홍, 핑크빛 우의를 입고 황금 망토를 걸친 전사들은 옛날 어린시절의 영웅이 되어 괴성을 지르며 아무한테나 마구잡이로 물을 뿌린다. 물이 가진 생명력이 기(氣)를 선사하면서 씻김의 정화의식을 치른다.

어디선가 쿵닥 쿵닥 타악기가 경쾌하게 소리를 내며 축제의 흥을 북돋운다. 브라질 타악기그룹 ‘라퍼커션’이다. '바투카다'라는 브라질 타악기를 이용해 흥겨운 리듬과 파워풀한 퍼레이드로 무리를 이끈다. 점점 축제의 열기는 높아진다. 경상도 팀 ‘물!방!울!’은 은하철도 999 퍼레이드 카로 이동하며 비눗방울을 날리고 물분수를 발사한다.

관객들은 물벼락을 맞으며 ‘아! 水라장’ 속에서 리듬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춘다. 남녀노소, 동서양인 구분 없이 온몸으로 춤을 춘다. 마침내 춘천 도심을 ‘아! 水라장’으로 함락시키고 마는 도깨비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의 춤, 또는 발자크 동상 아래서 춤을 추는 모딜리아니의 춤과는 다른 디오니소스 축제의 춤이다!

대형 비닐이 관중들을 덮고 얼마 후 비닐을 찢고 한 명이 고가 크레인을 통해 구출된다. 공중에서 천상을 향하는 춤을 춘다. 세월호 때 숨진 영혼들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기를 바라는 의식이다.

빌딩 벽에는 네 명의 공연자가 매달려 네 가지 빛깔의 별들로 상상의 여행을 떠난다. 하늘을 날고자 하는 꿈, 새로운 세상을 향하고자 하는 도전정신이다. 마임노래와 함께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은 관객들과 깨비들은 함께 춤을 춘다. 이제 춤추는 자들은 물로써 정화되어 자유로운 정신으로 편견없이 누구나 하나가 되며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다. 축제의 첫 번째 난장이 마무리된다.

 

미친 금요일!

19금 성인들의 놀이가 공지천공원에서 펼쳐진다. 밤10시부터 새벽5시까지 7시간 동안 도전적이고 반사회적인 작품들로 공연, 영상, 미디어, 전시, 음악 등 예술 마니아들이 밤새 한 판 굿을 펼친다.

‘예술은 권력과 자본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캐치프레이즈로 억압된 욕망과 금기를 풀어헤쳐 준다. 공연장에 입장하면 맥주 한 캔과 가면을 나눠준다. 공연장 곳곳에는 폐현수막 위에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왠지 으스스한 도깨비굴을 연상시킨다.

‘미친 금요일’에 임할 관람객의 숙지사항을 보자.

“조금은 소심해 보였던 당신, ‘미친 금요일’에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세염. 축제 속에서 맘껏 일탈하며, 미친 듯 소리도 지르고, 몸도 흔들고, 축제 속에서 맘껏 즐기는 당신의 모습은 어찌나 매력적인지...^^ (가끔 부작용도 --; ) 당신의 자상함을 맘껏 뽐내기 위해서는... 쉿! 밤에 정말 정말 추워요. 그녀는 분명히 낮의 더위만을 생각해 얇은 옷만을 준비했을 거예요. 점점 추워지기 시작했을 때 가방에서 꺼내 그녀에게 건네는 따뜻한 점퍼. (앗! 점퍼를 깜박 잊었다면, 당황은 금물~! 깨비몰로 가세요. 춘천마임축제 기념품 담요가 있답니다. 캬캬캬) 그녀의 마음은 이미 당신에게로~~~^^ (가끔 준비성이 철저한 그녀라면... 음... 차라리 모성본능을... 가방의 점퍼는 쉿!!!)"

이동식 핍 쇼! ‘마담의 홀’은 쇠로 만든 자극적인 큰 가슴과 엉덩이를 흔들며 관람객들을 유혹한다. 깔때기 모양의 가슴을 직접 만지며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위안부에 관한 애니메이션이다. 관음증에 걸려 관망할 뿐 행동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조명하고, 잊고 방치된 사회문제를 들여다보게 한다.

부부 공연팀인 아크로부포의 물폭탄!

관객들을 무대로 데리고 나와 다양한 포즈를 따라하게 하고는 “칼을 뽑으시오!” 물풍선 검투를 시킨다. 오페라 음악에 맞춰 물풍선을 던지면 송곳처럼 튀어나온 방패로 막는다. 뾰족한 바늘이 솟아있는 독일군 병정 헬멧으로 헤딩하듯이 물풍선을 터트리면 풍선이 터지면서 온 몸이 물로 젖는다. 진짜 영웅이 되는 순간이다.

아무런 말도 없이 오직 몸짓으로만 두 외국인의 작전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는 관객들은 어느새 승리자가 되어 관중의 박수를 받는다.

 

 

죽지 않는 것들을 위한 레퀴엠.

연주자가 기타 바구니를 끌고 퍼포먼스 장소로 간다. 백남준의 바이올린 끌기의 오마주다. 입고 있던 상의를 벗고 흰 와이셔츠로 갈아입는다. 멜로디언이 연주를 시작한다. 서예가가 들어와서 연주자의 등 뒤에 시를 쓰기 시작한다. 새 와이셔츠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면 다시 흰 와이셔츠로 갈아입고 동일한 행위를 반복한다. 바닥에 있던 상의를 입고 기타 바구니를 정리하고 연주자는 퇴장한다.

광장을 광장답게 만들고 공연자와 관객의 구분을 없애고 다 같이 놀아보고자 하는 굿판으로 가벼운 레퀴엠의 성격이다.

플레이밍 파이어 갈라 나잇!

사진을 ‘빛이란 물감으로 필름이란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이라 정의하듯, 불의 향연은 불이란 물감으로 밤 허공에 그리는 그림이라고 해도 좋겠다. 모닥불의 불은 용처럼 혹은 악마처럼 활활 타오르고 쥐불놀이하듯 횃불공연은 화려한 붓놀림처럼 여러 가지 홀로그램을 그려낸다. 아름다운 동선과 기하학적인 모양을 창조한다.

황해도 만신 이해경 굿.

‘미친 금요일’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하는 굿이다. 무구와 신복이 다양하고 화려하다. 중간 중간에 관객석으로 나와 점괘를 뽑아주기도 한다. 작두 타는 모습은 아찔하다. 제를 지낸 쌀을 던져주는데, 받아서 씹어 먹으며 복을 기원한다.

 

도깨비 난장

불과 빛의 컨셉으로 무박 2일 동안 당신의 혼을 앗아갈 몸짓의 난장을 맞이하라! 부적도 소용없다. 날뛰는 도깨비들의 잔치!

불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원초적 몸짓의 향연! 보고, 즐기고, 날뛰어라!

예술가들의 감성교류, 위험한 장난, 낯선 휴식, 소란스런 흥분, 대범한 일탈!

몸의 원초성에 주목한 열광과 흥분의 장!

KT&G상상마당과 수변공원에서 펼쳐진다.

곳곳에 도깨비불이 날아다닌다. 빨강, 노랑, 초록, 파랑색의 뿔과 왕관, 팔찌와 발찌를 한 도깨비들이 곳곳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긴다.

호반의 꽃.

예술 불꽃 화(花, 火)랑 호수와 산, 아름다운 밤하늘에 형형색색의 불의 꽃들을 연출한다. 불꽃이 하나의 공연예술 장르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더 해프닝 쇼.

저글링, 마임, 아크로바틱, 벌룬 아트, 마술, 디아볼로 등 21세기의 새로운 형식의 무언극을 펼친다. 호각을 불면서 관중들과 수시로 소통하며 참여를 유도한다. 해맑은 공연자의 표정과 더불어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표적인 공연이다.

푸에고 렌토.

프랑스의 두 공연자가 보여주는 탱고와 아리아, 파이어 아트를 결합하는 독창적인 공연이다. 불꽃과 춤으로 만들어진 사랑에 관한 공연으로 하트의 불길 안에서 추는 탱고는 아름다움의 극치다. 폭발할 듯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이중주로 느리게 불꽃이 타오르며 불과 춤을 승화시킨 작품이다.

고스트 댄스.

무대 위에서 각자 나눠준 무선 헤드셋을 끼고 동시에 두 가지 채널에서 다른 음악이 흘러나오는데 디제이의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춘다. 헤드셋을 쓰지 않은 사람들은 무슨 상황인지 알지 못한다. 다함께 펄쩍펄쩍 뛰기도 하며 괴성을 지르는 ‘도깨비 난장’의 밤은 깊어만 간다. 무대는 어느새 클럽이 된다.

 

‘신의 죽음’이란 서양의 온갖 자명성(自明性), 철학, 종교, 문화의 죽음을 일컫는다.

춘천마임축제를 만든 사람들은, 예술 공연은 서울이라는 수도중심에서 개최되어야만 하고 특히 일반인들에겐 낯선 마임은 더더욱 그나마 문화를 이해하고 또 이해해줄 수 있는 서울에서 개최되어야만 한다는 기존 생각을 뒤집어버린다.

기존의 자명성을 망치로 내리치는, 신을 죽이는 사람들이다. /강낙규·기술보증기금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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