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9 오늘]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 잔지바르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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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오늘]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 잔지바르 독립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2.18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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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살 때 공산혁명 피해 영국 이주…잔지바르-탕가니카 병합, 탄자니아 탄생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로 최근 한국사회에서 다시 뜬 영국 록밴드 퀸(Qu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1946~1991)가 잔지바르(Zanzibar)라는 아프리카의 섬나라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는 현재 탄자니아의 자치주로 편입되어 있다. 잔지바르는 남쪽 웅구자섬과 북쪽 펨바섬의 두 개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구 100만명, 면적 1,651㎢으로 서울의 2.5배 정도 규모다.

동아프리카 인도양 해상에 위치한 이 섬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북쪽으로는 아랍권에 연결되고, 서쪽에는 흑인 지역이다. 수에즈 운하가 뚫리기 이전에 유럽인들이 아프리카 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길목에 있다.

 

▲ 잔지바르 위치 /위키피디아

 

유럽인들이 아시아에 무역하기 이전에 잔지바르 섬은 페르시아인(이란인)들이 무역항을 건설했다. 잔지바르라는 이름도 페르시아어 잔지(Zanzi: 검다)와 바르(bar: 사주해안), 즉 ‘검은 해안’이라는 의미다. 페르시아가 쇠퇴하고, 아랍인들이 아프리카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삼았다. 1107년 이슬람 사원이 건립되었다.

1498년에는 포르투갈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면서 이곳을 방문해 유럽 사회에 알려졌다. 16세기에는 포르투갈이 점령해 식민화했다.

하지만 아랍세력이 서양인에게 넘어가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1698년 아라비아반도 남쪽을 지배하던 오만(Oman) 술탄국이 점령해 포르투갈 세력을 내쫓고 이슬람 국가를 건설했다.

그후 오만 술탄국은 이곳을 노예와 상아 거래의 중심지로 삼았다. 잔지바르의 수도는 동아프리카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가 되었다. 아랍인들은 곳곳에 요새를 지어 방어했고, 오만술탄국은 수도를 아라비아 반도 무스카트에서 잔지바르로 옮겨 왔다.

아랍인들은 잔지바르 해안에 석조도시(Stone Town)를 건설해 번영을 자랑했다. 이 석조도시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 잔지바르 술탄국의 왕궁으로 건설된 석조도시 /위키피디아

 

하지만 술탄 가문에 분열이 생기면서 1861년 잔지바르는 아라비아 반도의 오만에서 분리, 잔지바르 술탄국으로 독립했다.

독립한 후에도 술탄국은 노예 무역국으로 성장했다. 한해에 실려나간 노예가 4만~5만명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돈을 번 잔지바르 술탄은 탄자니아 해안과 아프리카 동부 후수지역까지 쳐들어가 영지를 만들었다.

 

▲ 잔지바르 술탄국 전성기의 영향권 /위키피디아

 

세계 해양을 장악한 영국이 이 섬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영국은 1890년 잔지바르 술탄국을 보호령으로 만들었다.

1896년, 영국에 고분고분하던 술탄이 죽자,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다. 독일의 지원을 얻은 장남이 왕궁을 점거하고 새로운 통치자로 선언하자 영국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왕자를 내세워 전쟁을 벌였다.

그해 8월 27일 전투는 38분만에 끝났다. 전세계 전투 중 가장 짧은 전투로 기록된 이 전투에서 신식무기를 앞세운 영국이 일방적으로 승리했다. 영국 전함은 바닷가에서 왕궁을 향해 함포사격을 퍼부었다. 500여명의 잔지바르인들이 사망하거나 부상당하고, 궁궐이 참혹하게 파괴되었다. 영국군 피해는 부상자 1명.

잠칭 술탄은 때마침 파견된 독일 전함에 올라타고 도망쳤다. 영국은 새 술탄을 앞세워 보호령으로 이곳을 통치했다. 영국은 잔지바르를 보호령으로 통치하면서 인도인들을 많이 데려다 인력으로 활용했다. 영국의 이민 장려 정책에 인도에서 건너온 사람들 가운데 머큐리의 부모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1963년 12월 10일이 되자, 영국이 약속한 보호령 만기일이 돌아왔다. 영국은 잔지바르의 독립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술탄은 더 이상 보호조약이 필요없다면서 12월 19일 독립을 선언했다.

주권을 되찾은 잔지바르 술탄국은 한달도 생명을 부지하지 못했다. 원주민 흑인들이 이듬해 1월 12일 이민족인 아랍계 술탄가에 대항하며 공산혁명을 일으켰다. 이 혁명에 수천명의 아랍인과 인도인들이 살해되거나 투옥되고 추방되었다. 300년 가까이 잔지바르를 통치하던 아랍 이슬람 지배층은 노예의 후손에 의해 붕괴되었다.

혁명정부는 소련과 동독,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비슷한 시기에 독립한 바다 건너 탕가니카(Tanganyika)와 합병하는 것이었다. 나라의 덩치를 키워 제국주의 세력을 견제하자는 뜻이었다. 1964년 10월 29일 탕가니카와 잔지바르는 나라 이름의 앞 글자를 합쳐 탄자니아 연합공화국(United Republic of Tanzania)을 수립해 오늘에 이른다.

 

▲ 록그룹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 /위키피디아

 

프레디 머큐리는 1946년 영국 보호령이었던 잔지바르에서 영국 총독부 공무원의 1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파로크 불사라'였다. 그의 아버지는 인도 국적을 가진 파키스탄인으로, 8세기에 무슬림들에게 쫓겨 인도로 망명한 페르시아인 조로아스터교 교도의 후손이었다. 머큐리가 태어났을 때 잔지바르는 명목상 술탄국이었고, 실질적으로는 영국의 보호령이었다.

머큐리와 그의 가족은 17살이던 1964년에 잔지바르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는데, 잔지바르의 공산혁명 와중에 인도-파키스탄인들이 무차별로 살상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가 잔지바르에서 영국에 가지 않았다면 세계적인 록가수로 부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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