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7 오늘] 부탄 왕추크 왕조 수립…내란 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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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7 오늘] 부탄 왕추크 왕조 수립…내란 종식
  • 김인영 에디터
  • 승인 2018.12.1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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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겐 왕추크로부터 5대째…인도 보호 아래 민주화, 탈중앙화 추구

 

히말라야 산맥의 불교왕국 부탄의 왕추크(Wangchuck) 왕조는 1907년 12월 17일 우겐 왕추크(Ugyen Wangchuck)의 군주 취임으로 시작되어 오늘날 5대에 이른다.

1870년대에 부탄 산골엔 서쪽의 파로(Paro) 지역과 중앙부의 통사(Tongsa) 지역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 부족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피를 흘렸다. 이 내전을 종식시킨 사람이 통사 지역의 우겐 왕추크다. 우겐 왕추크는 부탄을 통일한 후 각지의 불교 수도승들로부터 만장일치로 군왕 취임을 인정받았다. 그는 왕축 왕조의 초대 임금에 올랐다.

 

▲ 부탄 초대왕 우겐 왕추크 /위키피디아

 

히말라야의 왕국 부탄은 오랫동안 이웃 티베트, 인도, 몽골등의 침략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독자성을 유지하며 자치를 유지했고, 영국이 인도를 점령해 통치하던 시기에 부탄은 독자적인 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3년후 부탄은 영국에 외교권을 내주어 보호령이 되는 조약에 동의했다. 이에 반대 세력이 등장하고, 인도의 간디가 반대세력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왕축 왕조는 변함없이 대를 이어 부탄을 지배했다.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한 이후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했을 때, 부탄 정부가 인도를 가장 먼저 승인했다. 인도는 과거 영국이 장악하던 부탄의 외교권을 달라고 했고, 부탄은 이웃 중국(티베트)을 견제하기 위해 외교와 군사 부분에서 인도와 협력하고 있다. 굳이 따지면 인도의 보호국이다.

 

▲ 부탄 수도 팀부의 티시초종(Tashichho Dzong) /위키피디아

 

절대군주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높아져 1972년에 국회에서 왕의 절대적 권한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되었다. 4대 왕에 들어서도 왕의 권한에 대한 의회의 견제가 심해졌고, 1998년 공식적으로 절대왕정은 무너졌다.

2005년 12월 지그미 싱예 왕추크(Jigme Singye Wangchuck)왕은 2008년부터 입헌군주제를 채택하고, 신헌법과 새로운 선거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2006년 그는 이러한 약속을 번복하고 왕권을 그의 아들이 지그미 케사 남기엘 왕추크(Jigme Khesar Namgyel Wangchuck)에게 이양했다.

부탄의 군사력은 왕조를 호위하는 경호인력과 치안 능력밖에 보유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근년에 중국과 국경분쟁이 벌어졌을 때 인도군이 파견되어 부탄 경계를 지키기도 했다. 군사 및 외교 분야에서 인도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왕축 왕조의 제5대왕 지그미 케사 왕추크와 가족 /위키피디아
▲ 부탄의 위치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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