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7 오늘] 우르반 2세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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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오늘] 우르반 2세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
  • 김인영 에디터
  • 승인 2018.11.26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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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십자군전쟁 선언…프랑스 제후들 중심으로 예루살렘 함락

 

1095년 11월 27일, 프랑스 중부의 작은 마을 클레르몽(Clermont)에 교회 사제들이 모였다.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가 대성당 앞 광장에 모인 군중들 앞에 호소했다.

▲ 우르반 2세, 클레르몽 공의회 연설/위키피디아

“이슬람 교도는 지중해까지 세력을 확장해 너희 형제들을 공격하고, 죽이고, 납치해 노예로 삼고, 교회를 파괴하고, 파괴하지 않는 곳은 모스크롤 바꾸고 있다. 그들의 폭력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지금이야 말로 그들에게 맞서 일어설 때다.”

교황은 목소리를 더 높였다.

“이 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곳에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신께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그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교황은 공개적으로 전쟁을 부추겼다. 청중들은 환호했다. 가슴속 깊숙이서 우러나오는 신앙심으로 그들은 성전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교황의 말씀은 곧바로 제1차 제1차 십자군 전쟁(First Crusade)으로 이어진다.

 

이날 클레르몽 공의회는 세가지를 결의한다.

1. 그리스도들끼리는 곧바로 ‘신의 휴전’에 들어갈 것.

1. 성스러운 전쟁에 참가하는 이들은 모두 가슴이나 등에 붉은 천으로 만든 십자 표시를 붙일 것.

1. 동방으로 출발하는 날은 이듬해인 1096년 성모 마리아의 승천일(8월 15일)로 할 것.

 

▲ 1차 십자군 행로 /위키피디아

 

제1차 십자군은 주로 프랑스 제후들로 구성되었다. 노르망디 공작 로베르, 블루아 백작 에티엔, 플랑드르 백작 로베르.

여기에 신성로마제국 영내의 로렌 공작 고드프루아 드 부용과, 이타리아의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다 알타빌라도 참여했다.

이들 제후가 이끈 병사의 총수는 10만명 정도라고 한다. 당시 유럽 상황으로는 엄청난 군대였다.

 

이들은 각기의 영지에서 출발해 1096년말에 비잔틴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집결했다. 이듬해 1097년 봄 십자군은 소아시아로 건너가 서서히 남진하면서 셀주크 투르크 영내를 진입했다.

1차 십자군은 1099년 7월 마침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학살이 벌어졌다. 종교적 광기는 이교도를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학살이 벌어졌다. 십자군은 신의 이름으로 노인도, 여자도, 어린애도 죽였다. 이슬람교도는 물론 유대인들도 유럽인의 칼에 쓰러졌다. 이슬람 사원 알 아크사 모스크에도, 유대인들의 시나고그에도,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넘은 길에도, 무고한 사람들의 피가 쏟아졌다. 광란의 학살극은 불과 몇 백 명의 생존자들을 남겨둔 채 일주일 동안 진행되었다. 남은 자들은 수만구의 시체들을 치우는 일에 동원되었다. 시체 처리가 끝나자 그들도 시체더미 위에 쓰러졌다. 십자군의 대의명분이었던 “신이 그것을 바라신다”는 게 대량살상 행위였다. 이 원한은 1천년이 지난 지금도 이어진다. 이슬람의 광신도들은 유럽에서 테러를 벌이면서 십자군 만행을 그 이유를 대고 있다.

 

▲ 1099년 7월 15일 제1차 십자군의 예루살렘 함락 그림 (The Bridgeman Art Library) /위키피디아

 

1차 십자군은 예루살렘 왕국은 물론 에데사 백작령, 안티오키아 공작령, 트리폴리 백작령등 4개의 국가 수립에 성공했다.

십자군이 건설한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왕에는 로렌공작 고드프루아의 동생 보두앵이 등극했다.

 

▲ 1차 십자군 영지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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