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 오늘] UPI 기자, 케네디 암살사건 특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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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오늘] UPI 기자, 케네디 암살사건 특종
  • 김인영 에디터
  • 승인 2018.11.21 2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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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먼 스미스, 무선전화기 독점하며 AP 기자 따돌려…사건 4분후 1보

 

1963년 11월 22일 낮 12시 34분(미국 텍사스 시간), 미국 통신사 UPI는 미국 제35대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저격 소식을 타전했다.

“Three shots were fired at President Kennedy’s motorcade in downtown Dallas.” (케네디 대통령이 탄 자동차가 댈러스 시내에서 세발의 총격을 받았다.)

5분후인 12시 39분, UPI는 2탄의 기사를 쏘아올렸다.

“Kennedy seriously wounded perhaps seriously perhaps fatally by assassins bullet.” (케네디가 심각하게 부상당했다. 저격용 탄환에 맞아 아마도 치명적인 것 같다.)

 

UPI 통신이 쏜 특보(bulletin)에 워싱턴의 방송사들이 난리가 났다. CBS 방송의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는 그 와이어(wire, 통신뉴스)를 보고 “빨라 기자”고 소리치며 방송준비를 서둘렀다. CBS는 UPI 통신을 읽어 댔다.

많은 미국인들은 CBS 라디오를 통해 케네디 저격소식을 들었다. 범인 리 하비 오스월드(Lee Harvey Oswald)의 저격 시각은 이날 낮 12시 30분. 첫 보도가 4분 후였다.

후에 분석된 자료에 따르면, 케네디 저격후 30분 내에 소식을 접한 사람은 성인 미국인의 68%였고, 90%가 총격 90분 이내에 뉴스를 들었다고 한다. 55년전 휴대폰이 있거나 셀카가 있던 시절이 아니었다. 인터넷도 없었다. TV가 있었지만, 속보 뉴스는 라디오였다.

 

▲ 임살 직전에 존 F 케네디 대통령 부부가 텍사스 댈러스 거리를 리무진을 타고 지나는 모습 /위키피디아

 

하지만 라디오를 통한 뉴스 전달에 앞서 통신사 기자들이 특종 경쟁을 벌인 사연이 있다.

그날 케네디의 댈러스 카퍼레이드에는 백악관 기자들이 58명이나 수행 취재했다. 케네디가 탑승한 차량은 퍼레이드의 두 번째 차량이었다. 그 차에는 케네디와 부인 재클린, 텍사스 주지사 부부가 탑승했다. 네 번째 차량에 린든 존슨 부통령이 탑승했다.

▲ 메리먼 스미스 기자 /위키피디아

특종을 한 기자는 통신사 UPI의 메리먼 스미스(Merriman Smith) 기자였다. 그는 여섯 번째 차량을 타고 있었다.

그 차량은 와이어 카(wire car)라 불리는 차량이었는데, 미국 통신사 AT&T가 제공한 무선 전화기가 장착되어 있었고, 그 전화기는 달라스 교환국과 연결되어 있었다. 차량에는 UPI 기자는 물론 통신사 AP의 잭 벨(Jack Bell) 기자, ABC 방송의 밥 클라크(Bob Clark), 댈러스 모닝 뉴스의 로버트 배스킨(Robert Baskin) 기자도 타고 있었다.

미국의 양대 통신사 기자가 타고 있었기 때문에 와이어 카에 탑승한 기자는 풀(pool)기자의 역할을 했다.

그날 UPI 기자는 앞좌석 운전사 옆에 타고, 나머지 기자 3명은 뒤에 탔다. 전화기는 UPI의 스미스 기자 옆에 있었다. 스미스는 개인적으로 총기류를 몇정 가지고 있었고, 총에 관한 풍부한 지식이 있었다.

낮 12시 30분,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 와이어카는 케네디가 탑승한 차량에서 100m쯤 뒤에 따라가고 있었다. 스미스는 바로 총격사건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전화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1보를 불렀다.

스미스는 전화기를 놓지 않았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윌본 햄프턴(Wilborn Hampton)이라는 젊은 기자였다. 햄프턴은 스미스가 부른 내용을 받아 타이핑했다. 그리고 UPI 남서부 지국장에게 보고했다. 지국장 잭 팰런(Jack Fallon)은 기사를 본 후 즉시 “보내라”(send it)고 지시했다. 그 시각이 12시 34분이었다. 지국장은 기사를 송고한 후 스미스와 통화했다.

스미스 기자는 다시 2보를 불렀다. UPI의 2보는 12시 39분에 전파를 탔다.

 

언론사 기자들은 평소엔 화기애애하기 지내지만, 뉴스가 터질땐 경쟁자로 돌변한다. UPI와 AP는 당시 미국 양대 통신사였다.

앞자리에 있던 UPI 스미스 기자가 전화기를 잡고 기사를 부르는 것을 뒷자리에 있던 AP의 잭 벨 기자가 듣고 보고 있었다. 그는 회사내에서도 베테랑 기자로 알려져 있었다. 통신사의 기사경쟁 시간은 1초다. AP의 벨은 UPI의 스미스에게 물을 먹은 것이다.

그는 스미스에게 전화기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스미스가 전화통을 붙들고 주질 않았다. “빌어먹을, 전화기를 달란 말이야.” 벨 기자는 스미스를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전화기를 뺏으려 했다. 그래도 스미스는 전화기를 주지 않았다. 경쟁사에게 특종을 넘겨주기 싫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후에 그럴 의도는 없었다고 말하긴 했지만….

12시 36분 아이어 카는 저격을 당한 케네디를 응급처치하기 위해 인근 파크랜드(Parkland) 병원에 도착했다.

마침내 스미스는 무선전화기를 벨에게 넘겼다. 하지만 전화기는 죽어 있었다. AP의 벨 기자는 그 전화를 념겨받았지만, 쓸 수 없었다.

스미스는 곧바로 대통령의 리무진으로 달려갔다. 그는 대통령 옆에 타고 있던 존 코널리(John Connally) 텍사스 주지사가 가슴에 저격당해 피를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나 대통령이 보이지 않았다. 이미 케네디는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 있었다.

스미스는 경호원 클린트 힐(Clint Hill)에게 물어보았다. “대통령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힐이 다답했다. “그는 죽었습니다. 스미티(스미스의 애칭)”

12시 39분, 스미스는 응급실로 달려가 전화기를 잡았다. 그리고 급보를 날렸다. “케네디가 부상당했고, 아마도 치명적이다(perhaps fatally)”고.

그 시각 AP는 케네디 저격 소식만 전했을 뿐이다.

 

일각에선 UPI 기자가 전화기를 부숴버렸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무선 전화는 성능이 나빴다. UPI 기자가 AP기자에게 전화기를 돌려줬을 때 고장이 나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기자와 언론은 특종에 목말라하고 있다. 특종 경쟁도 치열하다. 을 잡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어쨌든 케네디 저격 사건에서 UPI는 승리했고, AP는 패배했다. 스미스 기자는 후에 언론인으로서는 최고 영예인 퓰리처상을 거머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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