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1 오늘] 세 번 침몰선서 생존한 바이올릿 제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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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1 오늘] 세 번 침몰선서 생존한 바이올릿 제솝
  • 김인영 에디터
  • 승인 2018.11.2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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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자매선 브리타닉 침몰…올림픽급 여객선 세척 모두 침몰 경험

 

1916년 11월 21일 오전 8시 12분, 영국 해군의 병원선 브리타닉호(HMHS Britannic)가 그리스 에게해의 케이스 섬을 지나던중 갑자기 우현에서 커다란 섬광과 함께 폭발음이 들렸다. 배수량 4만8,158톤의 거대한 선박은 엄청나게 요동쳤고 탑승한 부상병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공교롭게도 이 배는 4년전인 1912년 4월 10일 처녀 출항하다 침몰한 타이타닉(Titanic)의 자매선이었다. 운항사도 영국 화이트 스타 라인(White Star Line)으로 타이타닉의 선주였다.

침몰의 원인이 독일의 유보트(U-Boat)의 공격인지, 기뢰에 의한 폭발인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독일의 공격에 의한 것임은 분명했다.

불의의 공격을 당한 브리타닉은 급속히 가라앉았다. 선장 존 코로퍼(John Cropper)는 인근 케오스(Keos) 섬까지 항해한 뒤 배를 좌초시켜 침몰을 모면하려 했지만 결국 배를 포기하고, 승객들에게 하선을 명령했다. 환자와 의료인이 대부분이고, 승객들은 승조원들의 지휘로 일사불란하게 탈출했다.

브리타닉은 사고후 55분 만에 침몰했다. 승객 1,066명은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하지만 구명정이 내려갈 때까지 배가 이동했고, 이로 인해 구명정이 프로펠러 날에 산산조각이 나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4년 전 타이타닉의 침몰 때보다는 많은 사람이 생존할수 있었다. 타이타닉 침몰때의 뼈아픈 경험을 살려 구명정을 충분히 구비했기 때문이었다.

브리타닉호는 타이타닉호처럼 두동강 나지 않았다. 1986년 에게해에서 브리타닉의 잔해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 영국 올림픽급 여객선 브리타닉호 /위키피디아

 

브리타닉은 화이트 스타 라인이 대서양을 운항하기 위해 올림픽급으로 만든 세 번째 선박이었다. 첫 번째가 올림픽호, 두 번째가 타이타닉, 세 번째가 브리타닉이었다. 건조는 모두 할랜드 앤 울프에서 제작되었다.

원래 이름은 자이갠틱(Gigantic)이였지만 타이타닉 침몰 후 타이타닉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이름을 브리타닉으로 바꾸었다.

자매함인 올림픽호와 타이타닉호보다 늦게 진수 되었는데 타이타닉의 침몰 이후 타이타닉의 결점을 보완하기 위해 수밀격벽 및 다른 부분에 설계를 바꾸어야 했기에 진수는 더 늦어졌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해군에 징발되어 병원선으로 개조되었다. 그 후 몇 번의 항해를 하였고 원인 불명의 폭발로 에게 해에서 침몰했다.

 

화이트 스타 라인의 첫 번째 올림픽급 선박인 올림픽호는 1911년 6월 14일 영국 사우스햄프턴을 떠나 뉴욕까지 무난하게 첫 항해를 했다. 그러나 5번째 항해를 하던 9월 20일 영국 해군의 순양함과 충돌해 선수 우현에 손상이 발생했다. 올림픽호는 6주간의 수리를 거쳐 11월 29일 운항을 재개했다.

이듬해 두 번째 올림픽급 여객선이 운항했으니, 타이타닉이다. 타이타닉은 출항 5일후에 침몰해 탑승인원의 70%인 1,514명이 사망하는 대 참사가 빚어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브리타닉의 선상 간호사 바이올릿 제솝(Violet Jessop)은 올림픽호 충돌사고 때에도 배에서 근무하였고, 타이타닉 사고에서 살아남은 710명 중 하나였으며, 이후 브리타닉에서 근무하다 또 다시 사고를 당하고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녀의 별명은 ‘미스 불침몰’(Miss Unsinkable)었다고 한다.

 

▲ 바이올릿 제솝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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