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스크린으로 "그"를 다시 만나다...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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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스크린으로 "그"를 다시 만나다...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리뷰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08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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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라미 말렉, 프레디 머큐리 완벽 재현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컷

70년대 말, 세상이 뿜어내던 무거운 공기를 아이들도 맡던 시절이었다. 음악이 숨을 쉬게 했지만 접할 수 있는 음악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 부모님이나 형 누나들이 듣던 음악을 최고의 음악으로 알았을 것이다. 친구들과 음악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당시 내 귀에 가장 세련된 음악은 대학가요제 ‘그룹사운드’의 노래였다. 중학생이 되면 제일 하고 싶었던 게 내방에서 대학가요제 테이프를 들으며 따라부르는 것이었으니. 당시 우리 집에는 스피커가 하나인 모노 카세트 라디오가 있었다. 전축이 놓인 응접실이 부러움을 받던 그 시절 오디오는 사치품이었다.

 

중학교에 올라가니 쉬는 시간이면 팝송 얘기로 주의를 끄는 친구가 있었다. “너희 그거 들어봤어?” 집에 전축이 있다고 뻐기는 거였지만 진짜 부러웠다.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을 때 들을 수 있다는 건 당시로선 아무나 누리지 못하는 호사였다.

그룹사운드의 거친 소리에 빠졌던 내게 그 친구는 “진짜 거친 게 뭔지 들려주지”라며 집으로 데려갔다. 나는 그날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스테레오’는 좌우에서 나오는 소리가 다르다는 믿지 못할 소문이 사실이었다는 걸 확인했고, 진짜 록 음악이 뭔지도 듣게 되었다.

친구는 내게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을 틀어주었다. 나는 거칠지만 아름다운 그 소리에 폭 빠져버렸고, 그런 음악을 듣는 형을 가진 그 친구가 부러웠다. 물론 응접실을 장식한 스테레오 사운드 시스템도.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떼를 써봤을 거다. 그날 집에 들어가자마자 교복 입은 채로 드러누웠다. “내게 스테레오를 허하라!” 얼마후 내 방에는 ‘금성 스테레오 카세트 라디오’가 입성했다.

그날 이후 나는 라디오에 나왔던 새로운 팝송을 녹음한 테이프를 흔들며 “너희 그거 들어봤어?”라며 뻐기는 재수 없는 소년이 되었다.

모든 중학교 남학생이 검은 학생복을 입고, 국방색 가방을 들고, 머리를 빡빡 깎던 시절 ‘어떤 음악을 듣는가’로 자기를 표현했던 것 같다. 그래서 “너희 그거 들어봤어?”라는 말을 하며 허세를 부렸던 것. “너희랑 같은 옷, 같은 헤어스타일을 했지만 난 좀 다르지”라는 말 대신.

그래도 혼자 듣기보단 음악을 함께 들으며 좋아하던 시절이었다. ‘워크맨’이나 ‘마이마이’도 없던 시절이니 녹음기가 있는 집에 모여서 음악을 함께 들었다. 각자 녹음한 음악이 모이는 광장이었던 것.

그렇게 알게 된 그룹이 ‘Queen’이다. 어떤 음악을 먼저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듣자마자 빠져버렸을 것이다. 음반가게에서 내 돈 내고 산 첫 테이프가 Queen이었으니. 음악뿐 아니라 Queen에 대한 ‘루머’도 우리의 귀를 만족시켰다.

“프레디 머큐리는 4 옥타브를 넘나든다며?” “브라이언 메이의 기타는 직접 만든 수제 기타래.” 지금 들으면 아무것도 아닌 얘기를 하며 왜 그리 젠체했는지 모르겠다. 그래 봤자 빡빡머리에 검은 학생복으로 통일을 한 중학생일 뿐이었는데.

정보가 권력이었던 그 시절, 팝송을 많이 안다고 자부했던 우리에게도 모르는 게 있었다. “너희 그건 들어봤어?” 나를 스테레오의 세계로 인도한 그 친구는 Queen에 대한 은밀한 얘기를 해주었다.

세상에나, ‘금지곡’이 있다는 거다. 그 노래는 내가 갖고 있던 테이프의 원래 앨범에도 실렸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되었다는 얘기.

제왕 같던 대통령이 갑자기 죽고 흉흉한 소문이 들리던 계절이었다. 당시 “금지”라는 단어는 그 어떤 말보다 “무서운” 단어였다. 절로 목소리가 낮춰졌다. 그런 걸 들어도 되는지 무서웠지만 궁금했다.

그날 방과 후 몇몇은 그 친구네 마루에 모였다. 친구는 형 방에서 색바랜 파란색 LP를 꺼내왔다. 일명 “빽판!” 금지곡이라니 레코드판도 위험해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보헤미안 랩소디>와 처음 만났다.

분위기는 반반. 열광하거나, “이게 음악이냐?”라는. 난 전자였다. 음악도 감동이었지만 스테레오의 진수를 들었던 것. 좌우는 물론 내게는 위아래로도 넓게 들렸다. 입체적 사운드라는 표현에 딱 들어맞는 그런 음악이었다. 오, 맘마미아!

“그런데, 왜 금지곡이야?” 소문은 분분했다. 가사가 불량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뭐니. 아무튼, 금지곡이 아니더라도 라디오에서 나오긴 애당초 글러 먹은 곡이었다. 그렇게 기니. 그날 녹음한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들었을 것이다.

 

이후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며 음악 취향은 계속 달라졌다. 그래도 Queen의 음악은 때로 한 번씩 꺼내어 듣곤 한다. 그리고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을 때면 그 시절 친구들과 나눴던 이야기와 분위기가 떠오르곤 한다.

해외여행도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갈 수 있던 그 시절, 먼 나라의 음악을 들으며 소년들은 바깥세상을 동경했던 것 같다. 그 자유스러움과 그 해방감을. 뭔지 모르게 움츠리게 만든 세상에서 음악이 소년들을 견디게 했던 것. 금지곡을 들으며 소심스럽게 반항도 하며.

그렇게 견디며, 반항하며 살아왔고,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극영화라고? 그럼 ‘프레디 머큐리’를 배우가 연기 한다고? 감히, 누가?

의구심이 들었다. 그만큼 Queen이라는 그룹에서 프레디 머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그리고 그는 아직 살아서 노래하는 뮤지션이기도 하고. 그의 팬들에게는.

그런데 영화를 보는 도중 눈에 눈물이 맺혔고, 마지막 공연 장면에선 터져 흘렀다. 프레디를 연기한 배우의 연기와 노래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왜 그랬을까? 그 모든 장면이 절절했다.

사랑하는 부인과의 영원한 사랑을 염원하며 부른 “Love of My Life”는 역설적으로 헤어져서야 영원한 사랑을 이룬 프레디와 전 부인의 사랑을 은유했다. “내 평생의 사랑”이라고.

세상에 대한 반항과 절규라고 생각했던 “Bohemian Rhapsody”는 프레디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는 고백이었다. “엄마, 난 죽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한 공연 장면은 가족과 밴드와 팬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인사였다. 이렇듯 영화에서 프레디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묘하게도 그의 삶을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프레디의 노래에 눈물이 흘렀을까? 노래가 좋아서? 잘 불러서? 그렇긴 했지만 “이 세상에 이유 없는 삶은 없어”라고 외치는 거로 들렸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들렸다.

인생의 어느 정점에서 느껴지는 과거에 대한 회한이랄까? “그때 난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게 외치는 듯했다. 그런 마음이 내게도 전해진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던 것.

“맞아. 너도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는 마.” 이런 얘기로 내게는 들렸다. 영화는 어느덧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며 “Show Must Go On”이 흘렀다. “그래,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삶은 계속되는 거야.” 프레디는 그렇게 얘기했다. 현재형으로.

친구들에게 영화 얘기를 했더니 다들 부러워한다. 보고 싶다고. 그러면, 아저씨들! 극장으로 달려가라고. 멀지 않아.

▲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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