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오늘] 윌리엄 3세, 명예혁명 진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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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오늘] 윌리엄 3세, 명예혁명 진군하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1.04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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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와 휘그당 연합해 윌리엄에 군대동원 요청…영국 민주주의 토대 형성

 

1688년 11월 5일(율리우스력, 그레고리력으로는 11월 15일).

네덜란드 오렌지공 윌리엄(William Henry of Orange)이 이끄는 대규모 군대가 영국 해안 브릭스햄(Brixham)의 토베이(Torbay)에 상륙했다.

도버 해협은 겨울철에 폭풍이 심하고 북풍이 불기 일쑤였다. 오렌지공이 이끄는 선단과 군단은 보름이나 바람의 방향이 바뀌길 기다렸고, 한번은 영국 상륙을 시도하다가 폭풍에 떠밀려 프랑스 해안으로 떠밀려 가기도 했다. 영국인의 카톨릭들은 이 바람을 자신들을 도와준다고 해서 ‘교황의 바람’이라고 했다.

영국왕 제임스 2세의 입장에서 네덜란드의 침공이었지만, 윌리엄의 입장에서는 제임스 2세에 의한 탄압을 저지하기 위한 혁명군이었다.

마침내 바람의 방향이 동남풍으로 바뀌고 윌리엄은 거친 파도를 이끌고 영국 바닷가에 상륙했다. 병력은 보병 1만여명, 기병 3,000여명이었다. 이 병력으로 제임스 2세의 영국군을 이길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의 군대가 도착하자 지지자들이 열렬히 환영했다.

 

▲ 1688년 11월 5일 영국 브릭스햄 토베이에 상륙한 윌리엄 3세 초상화 (by Jan Wyck) /위키피디아

 

영국이 서서히 분열되어 갔다. 현재의 권력 제임스 2세를 지지할 것인가, 침공한 혁명군의 왕을 지지할 것인가로 종교와 정파에 따라 갈라 졌다.

윌리엄의 군대가 천천히 진군하면서 지방의 영주들과 귀족들의 지지를 얻어 냈다. 제임스 2세와 윌리엄 사이에 누가 이길지를 보며 중립을 지키는 세력도 상당했다.

프랑스는 영국왕 제임스 2세에게 원군 제공을 제안했지만, 제임스 2세는 거절했다. 제임스 2세는 토리당을 설득해 자기파로 돌리려 했지만, 실패했다.

12월 11일 제임스 2세는 왕실 인장을 템스강에 던져버리고 도망쳤지만 다음날 어부에게 잡히고 만다. 런던 시내에는 카톨릭과 비카톨릭 시민들 사이에서 약탈과 폭동이 벌어졌다.

윌리엄은 사형될 것이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는 제임스 2세에게 국외로 보내주겠다고 제안했고, 제임스 2세는 12월 23일 왕비가 있는 프랑스로 건너갔다.

12월 28일 윌리엄은 런던을 장악하고 정부를 재편했다.

의회 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윌리엄 단독 왕으로 할 것인지, 그의 부인인 메리를 단독 왕으로 할 것인지, 공동 왕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휘그와 토리당, 온건파와 강경파 사이에 견해가 엇갈렸다. 마침내 합의점에 이르렀는데, 윌리엄과 메리가 공동왕으로 집권한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이듬해 2월 영국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1989년 2월 13일 공동군주인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는 의회게 제출한 권리장전을 전달받아 서명하게 된다. 이에 따라 앞서 찰스 2세와 제임스 2세에 의해 무시되었던 영국 의회의 권한이 복권되었다. 역사가들은 이를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라고 명명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이뤄진 민주 혁명이라는 의미다.

 

▲ 1968년 11월 오렌지공 윌리엄이 강한 돌풍을 이겨내고 영국 토베이를 향해 항해하는 모습 /위키피디아

 

명예혁명은 왕위쟁탈전에서 시작되었다.

제임스 2세는 왕자가 없었기 때문에, 왕위는 장녀인 메리에게 계승되리라고 기대했다. 메리는 프로테스탄트였다. 하지만 1688년 6월 5일 왕자가 탄생해 메리의 왕위계승이 물거품으로 될 위기에 처했다. 다음 치세에도 가톨릭의 지배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었던 프로테스탄트교도들은 절망감에 빠졌다.

제임스 2세의 의회 탄압이 심해지면서 의회 내 토리당·휘그당의 양대 정당지도자가 협의한 끝에 6월 말 네덜란드 총독 오렌지공 윌리엄과 메리 부부에게 영국의 자유와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귀환하도록 초청장을 비밀리에 보냈다.

국내 귀족의 반란으로 소란한 가운데 11월 윌리엄·메리 부부는 군대를 이끌고 영국에 상륙하여 런던으로 진격했다. 귀족과 지방영주들이 연이어 윌리엄과 메리 부부의 진영에 가담했다. 제임스 2세가 파견한 군대도 왕을 배반하고 윌리엄 진영에 투항하고, 왕의 둘째딸 앤도 윌리엄군에 가담했다.

쿠데타에 성공한 윌리엄과 메리 부부는 의회의 요구를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이 권리선언(Declaration of Rights)과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다. 영국 민주주의는 이 헌장을 토대로 형성되며, 지금까지 입헌군주국으로 유지되고 있다.

 

▲ 진군하는 윌리엄공의 군대 /위키피디아

 

권리장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간다.

① 의회의 승인없이 법을 제정하거나 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없다.

② 의회의 승인없이 세금을 거둘 수 없다.

③ 의회의 승인없이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다.

④ 의회의 선거는 자유로워야 한다.

⑤ 의회 내에서의 토론을 자유로워야 한다.

⑥ 의회는 자주 소집되어야 한다.

⑦ 법은 공정하고 적절하게 운영되어야 한다.

 

권리장전은 왕권을 제약하고 의회의 우위를 확인하는 문서다. 의회는 권리장전에 이어 군대의 통수권도 장악했다. 윌리엄 3세에 이어 앤 여왕 때 영국은 스코틀랜드를 병합해 대영제국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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