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4 오늘] 1929년 주가 폭락…대공황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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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4 오늘] 1929년 주가 폭락…대공황 시작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0.2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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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후 광란의 호황의 결과…2차 대전 전쟁 수요로 종식

 

1918년 11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미국 경제는 초호황을 구가했다.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유럽 본토의 전쟁에서 결정적 승리를 했다는 만족감에다 파괴된 유럽에 물자를 공급하느라 공장이 풀가동되었다. 자동차와 라디오, 영화라는 신기술이 등장했다. 주택 건축이 붐을 이뤘다. 20세기는 미국의 세기라는 자부심에 빠져 있었다. 1920년대 미국은 활기와 자신감에 넘치는, 한마디로 ‘포효하는 20년대’(roaring twenties)였다. 그러나 이 광란도 오래가지 못했다.

 

1929년 10월 24일,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가 11%나 폭락했다. 이 날 하루동안 1,290만 주가 팔리면서 종전의 400만주 거래 기록을 깨뜨렸고, 오후 12시 30분에 시카고와 버팔로 거래소가 문을 닫았고, 11명의 투자가가 자살했다.

경제학자들은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라 부르는 이날을 그후 12년간 지속된 대공황(Great Depression)의 시발점으로 본다. 다음날 주가는 잠시 진정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월요일인 28일 13%, 화요일인 29일 12% 급락했다. 며칠 사이에 시가총액 300억 달러가 날아갔다.

앞서 미국 경제와 증권시장은 신기술이 가져온 초호황을 만들어 냈다. 전기와 기계 장치가 만들어낸 신문명이 소비문화를 확대시켰고, 주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았다. 하지만 사업이 잘 되면 과잉투자가 생겨나고 사업가는 빚을 얻어 공장을 돌리게 된다. 투자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묻지마 투자, 즉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에 빠지게 된다. 주식시장은 항상 오르고, 경제는 호황만 지속된다는 그릇된 믿음이 어느 순간에 무너지게 된다. 그 법칙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나타나는데, 1929년 가을의 상황은 그런 것이었다.

 

▲ 자료: 위키피디아

 

대공황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경제학자, 정치가, 기업가 누구도 미국 경제가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지 못했다. 1929년 초반에도 번영이 지속될 것이라고 있다고 믿었다. 예일대 어빙 피셔(Irving Fisher) 교수는 공황 직전에 “미국은 견고한 번영의 길에서 전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공황 직전에 당선된 허버트 후버(Herbert Hoover) 대통령은 후보 수락 연설에서 “미국의 번영은 무한히 지속”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장미빛 경제전망이 확산하면서 주식시장이 호황을 구가했다. 붕괴 직전 1929년의 주가는 1921년 저점에 비해 무려 4배나 상승했다. 기업은 높은 이윤을 냈고, 주식배당금은 상승했기에 주식 투자는 인기가 높았다. 노동자들도 저축보다는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주식시장이 붕괴하고, 그 여파가 실물 부문에 곧바로 전이했다. 증시 붕괴로 부(富)의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나 소비 의욕이 가라앉고, 소비시장 위축이 기업 투자 감소로 이어졌다.

 

▲ 실업자들이 마피아 두목 알카포네가 경영하는 식당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1931. 시카고) /위키피디아

 

은행 부도가 확산되면서 1930년 가을에는 미국 은행에 돈을 인출하는 뱅크런(bank run) 사태가 빚어졌다. 예금 대량인출은 은행의 지급능력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예금자들이 일시에 예금인출을 요구하면서 재무 상태가 건전한 은행도 파산에 직면했다. 미국은 1930년 이후 네 차례의 뱅크런을 경험하게 된다. 마침내 프랑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대통령은 1933년 3월 6일 전국적으로 은행 휴일(bank holiday)을 선포한다. 1930년에 영업을 하던 은행 가운데 20% 정도가 1933년까지 폐쇄되었다.

 

▲ 대공황 때 뉴욕의 아메리칸 유니언 뱅크 앞에 예금자들이 돈을 인출하기 위해 선 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위키피디아

 

대공황에 가장 피해를 본 사람은 노동자와 저소득층이다. 미국의 실업률은 1929년에 3% 대였지만, 대공황의 수렁이 깊어가면서 1933년에는 25%로 급증했다.

실업률 대책으로 만들어진 정책이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 정책이다. 1932년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은 재정을 통한 총수요 확대정책을 취했다. 테네시 강에 여러개 댐을 건설하고 농업을 구제하고, 정부의 보조금을 확대했다. 하지만 뉴딜 정책이 불황의 고통을 덜어주기는 했지만, 불황을 극복시키지는 못했다.

 

▲ 자료: 위키피디아

 

미국에서 시작된 대공황은 유럽과 일본으로 확대되었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자본주의가 종말이 왔다고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공산주의를 주창했다. 각국에 공산당을 비롯해 좌파들이 득시글거렸다. 각국에 좌파 척결을 대안으로 내세운 파시즘이 등장했다.

일본에서는 군부가 등장해 입헌 민주주의를 중단하고 만주 침략에 이어 중국 본토를 침공했다.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이탈리아에 베니토 무솔리니, 스페인에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즘 정권이 수립되었다.

세계는 전쟁으로 치달았다. 2차대전이 발발하면서 엄청난 전쟁 수요가 대공황의 질곡을 벗어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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