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9 오늘] 블랙먼데이에 돈 번 사람, 잃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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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오늘] 블랙먼데이에 돈 번 사람, 잃은 사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10.18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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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프렌드와 메리웨더의 두 갈래 투자…상황 판단이 성패의 갈림길

 

1987년 10월 19일, 뉴욕 증시의 다우존스 지수는 508 포인트(종가 1,738.74), 22.6%나 폭락했다. 사상 최대의 낙폭이었다.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개장하자마자 매물이 쏟아졌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미국의 경제학자들이 3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날 뉴욕 증시가 폭락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 주가는 그 다음날인 20일 폭락했다.

증권시장은 주기적으로 폭락한다. 대공황의 원인이 된 1929년,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위기에 빠진 2008년에도 월요일 뉴욕증시가 폭락했다. 모두 월요일에 발생한다고 해서 '블랙먼데이‘(Black Monday)라고 했다.

 

▲ 출처: 위키피디아

 

주기적인 증권시장의 폭락은 투자자들의 갑작스런 공포에 그 원인이 있다. 투자자들은 잘못된 신호로 일거에 도망치기도 한다.

 

양떼들이 들판에서 풀을 배불리 뜯고 있다가 비가 후득후득 듣자 목장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계곡을 지나는데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 목동은 양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으나, 겁에 질린 양떼들은 좁은 계곡을 서로 밀치며 도망쳤다. 양떼들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동료의 몸을 밟고 맹렬하게 도망쳤다.

 

이 간단한 비유가 금융시장의 패닉 분위기를 단적으로 설명한다. 1997년 7월 태국 바트화 폭락으로 아시아 금융위기가 발발하자, 풍요를 구가하던 국제 금융시장의 투자자들이 안전한 곳으로 몰려들었다. 1998년 러시아 모라토리엄 선언도 목동의 총에 비유된다. 양떼들이 갑자기 좁은 탈출구를 향해 돌진하자,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밟혀져 죽었고, 돈을 잃은 투자자는 하루아침에 거지가 되는 사태가 빚어진다.

 

▲ 증시상승을 의미하는 황소와, 하락을 의미하는 곰 형상 (프랑크푸르트 증권거래소) /위키피디아

 

그러면 뉴욕증시 사상 최대폭락을 기록한 1987년 블랙먼데이 때 월가의 유명한 두 펀드매니저들의 투자를 보자.

월가의 투자은행 살로먼브러더스에는 존 굿프렌드(John Gutfreund)와 존 메리웨더(John Meriwether)라는 펀드매니저가 있었다.

굿프렌드는 그 회사의 회장을, 메리웨더는 그저 평범한 펀드매니저였다. 굿프렌드와 메리웨더는 다른 데스크를 사용했다. 월가 투자회사에서는 회장이라도 개별 펀드매니저의 투자에 간여하지 못한다. 펀드매니저들은 각자의 판단에 따라 투자하고 회사에 이익을 내준다. 경영진은 다만 수익이 나지 않은 펀드매니저를 해고시킬 뿐이다.

블랙먼데이 상황이 터지자 굿프렌드와 메리웨더는 상황판단을 달리했다. 같은 회사내에서 두 팀은 다른 방향으로 투자했다.

 

굿프렌드의 팀은 주가가 폭락하자 드디어 1929년의 대공황이 발발한 것으로 판단했다. 착각이었다. 대공황때 미국 증시는 4년동안 내리 하락했고, 대신에 정부가 발행한 채권 가격은 상승했다.

주식은 투기성이 강하지만, 호황시에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 이에 비해 채권은 호황시의 주가 상승률만큼의 수익률을 보장하지 못하지만, 고정 이자를 지급함으로써 안정적 수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다. 위기 시에 주식과 채권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주가가 폭락으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은 채권쪽으로 몰리고, 상대적으로 채권 유통가격이 올라간다.

굿프렌드는 금융 공황이 지속될 것으로 믿고 주식을 팔고 채권에 베팅을 걸었다. 그는 이성적이거나 과학적이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여건을 볼 때 당시 공황 가능성은 없었다. 금융시장의 이상 과열에 지나지 않았던 현상을 그들은 즉흥적으로 판단했다. 굿프렌드는 20억 달러를 투자, 신규발행된 30년 만기 TB(재무부채권)를 샀다.

그러나 블랙먼데이는 3주만에 진정되고 주식시장이 회복됐다. 오르기를 기대하고 사두었던 채권 가격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굿프렌드는 완패했다. 그들은 7,5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경제전문 잡지인 비즈니스 위크지는 그들을 ‘자만심의 화신’이라고 명명했다.

 

이에 비해 메리웨더는 하이에나처럼 영악했다. 그는 흥분하거나 감정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차분하게 먹이감이 움직일 방향을 계산했다. 그는 경제학 이론과 금융시장의 현실을 접목하려고 한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다.

메리웨더의 팀은 블랙먼데이가 터지자 하루아침에 1억2,000만 달러의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그는 위기의 순간에도 잔인하리만큼 냉정했다. 자신의 부하들에게 그는 특별한 주문을 냈다. 신규발행한 30년 만기 TB를 매각하고, 3개월전에 발행된 30년 만기 TB(정확히 말하면 29년 9개월 후에 만기가 돌아오는 TB)를 사라는 것이었다. 만기가 30년이나 되는 장기 채권에 3개월의 짧은 기간이 어떤 가격차를 결정할 것인가. 메리웨더는 여기에 중요한 투자가치를 발견하고 있었다. 그도 굿프렌드와 같은 액수인 20억 달러를 투자했다. 메리웨더는 굿프렌드와 달리 블랙먼데이가 대공황의 전조가 아니며, 금융시장이 금방 정상화될 것으로 판단했다. 증시에서 실패한 투자자들이 신규발행된 30년 만기 TB로 몰려 가격이 폭등했다. 이에 비해 3개월전에 발행된 30년 만기 TB 가격은 상대적으로 쌌다. 그는 30년 만기 TB를 팔고, 29년 9개월 만기 TB를 샀다.

시장이 정상화됐을 때 메리웨더는 유유히 굿프렌드를 누룰수 있게 됐다. 회장이면 다인가. 월가에서는 돈을 많이 벌면 최고지, 회장이니 사장이니 하는 직책이 소용없다. 메리웨더의 팀은 블랙먼데이의 대혼란 와중에서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20억 달러를 투자, 3개월만에 1억5.000만 달러를 벌었으니, 연간수익율로 환산하면 30%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해 월가 최대 투자은행인 메릴린치사가 연간 3억9,100만 달러의 이익을 낸 점을 감안하면 메리웨더가 석달동안 번 수익은 엄청난 액수였다. 이로써 메리웨더는 블랙먼데이로 월가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그는 11년후 롱텀매니지먼트캐피털(LTCM)이라는 헤지펀드를 만들어 파산시키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메리웨더는 1998년 가을 파산 위기에 처한 LTCM의 회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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