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오늘] 포르투갈 왕가의 분열로 독립한 브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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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오늘] 포르투갈 왕가의 분열로 독립한 브라질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9.0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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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 페드루 1세가 부왕을 거역하고 독립선언…왕조는 2대로 끝나

 

브라질 국립박물관이 대형 화재로 그 안에 유물들이 모두 소실되고, 앙상한 뼈대만 남은 모습이 TV화면에 나왔다. 이 박물관은 1818년 나폴레옹 전쟁 때 리우데 자네이루로 망명온 포르투갈 왕 돔 주앙 6세, 즉 브라질 독립을 선언한 돔 페두루 황태자의 아버지가 지은 건물이다. 박물관 자체가 올해로 200년이 되는 유물인데, 화마로 불타 브라질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멕시코에서 아르헨티나, 칠레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의 대부분 나라는 전쟁을 벌여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하지만 유독 브라질만은 본국 포르투갈의 왕족이 분열하면서 독립을 쟁취한 케이스다.

▲ 페두루 1세 /위키피디아

1822년 9월 7일 포르투갈의 황태자 돔 페드루(Dom Pedro)가 포르투갈로부터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했다. 아버지는 포르투갈 황제, 아들은 브라질 황제가 됨으로써 제국이 둘로 쪼개진 것이다.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다. 1807년~1821년 나폴레옹 전쟁때 프랑스군이 포르투갈을 점령하자, 돔 주앙 6세((Dom João VI)가 왕족들을 거느리고 브라질로 망명했다. 본국을 빼앗기자 식민지로 천도한 것이다. 왕족은 리우데자네이루를 수도로 삼았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프랑스가 패하자 아버지 돈 주앙 6세는 본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황태자 페드루는 본국으로 가지 않고 리우데자네이루에 남아 브라질 독립을 선언했다.

포르투갈 황제인 아버지가 분노했다. 포르투갈은 군대를 보내 브라질의 독립을 저지하려 했다. 아버지와 아들 황제는 3년간의 전쟁을 치렀고, 6,000명 안팎의 인명 피해를 냈다. 결국 포르투갈이 패하고 브라질 독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페두루 1세는 초기에 국민적 지지를 얻었다. 그 무렵 라틴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에서는 시몬 볼리바르, 호세 데 산 마르틴, 미겔 이달고 등이 독립운동을 벌이면서 서로 분열을 거듭해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지 못하고 아르헨티나, 칠레, 베네수엘라, 멕시코등 여러나라로 분리되었다. 하지만 브라질에선 포르투갈 왕족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공화파들과 협상을 벌여 입헌군주제를 열었고, 거대한 단일국가를 형성할수 있었다.

 

브라질(Brazil)이라는 국명은 나무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파우브라질(Pau-Brasil)이란 나무인데, 영어로는 Brazilwood라고 한다. 직역하면 브라질나무다.

1500년 포르투갈 왕실은 대규모 원정대를 조직해 32세의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Pedro Álvares Cabral)을 선장으로 하는 대규모 원정대를 조직했다. 원정대는 그해 3월 13척의 배에 군인과 선교사, 승무원을 포함해 1,500명을 태우고 리스본을 출발했다. 한달반만에 브라질에 도착한 원정대는 해안가 밀림을 탐색하던 중 붉은 나무가 군집해 자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들은 ‘불붙은 숯과 같은 나무’라는 뜻에서 그 나무의 이름을 파우브라질이라고 명명했다.

그후 브라질은 포르투갈의 식민지가 되었다.

 

페드루 1세는 재임중 인기를 잃어 갔다. 보수적인 농장주들이 황제를 지나칠 정도로 자유주의자라며 비난했다. 페드루 1세의 가장 큰 잘못은 1825년에 최남단의 시스플라티나 주가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등에 업고 독립운동을 벌인 것이다. 페드루 1세는 아르헨티나와 500일 전쟁을 일으켰지만, 해전에서 패전하고, 결국 프랑스와 영국이 중재로 1830년 시스플라티나 주를 잃게 된다. 이 시스플라티나 주가 지금의 우루과이다.

이듬해인 1831년 페드루 1세는 다섯살짜리 아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페드루 2세는 커피 재배를 장려하고 유럽 이민을 받아들여 경제발전을 드라이브했다. 하지만 노예제 문제로 기득권 세력과 대립하게 되었다. 미국이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를 폐지했지만, 브라질에선 노예제가 존속되고 있었다. 페드루 2세는 1888년 노예제 폐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농장주 등 가진자들의 반발이 커졌고, 1889년 데오도로 다 폰세카 장군이 주도하는 군부 쿠데타로 페드루 2세는 폐위된다.

이로써 브라질 제국은 2대로 끝난다. 그후 브라질은 공화정으로 이관되지만, 군부독재에 시달리게 된다.

페두루 1세는 1834년 9월 결핵으로 리스본 켈루스 궁에서 36세의 젊은 나이에 숨졌다. 그는 브라질에 묻어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하지만 브라질 군부세력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1972년 150주년 독립기념일에 그의 유해가 브라질로 보내져 현재 브라질 독립기념관에 묻혀 있다.

 

▲ 페두르 1세와 그의 두 부인이 묻혀 있는 브라질 독립기념관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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