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 오늘] 오페라 극장에서 시작된 벨기에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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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5 오늘] 오페라 극장에서 시작된 벨기에 혁명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24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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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와 종교·언어·경제·정치 구조 다른 벨기에 독립운동 촉발

 

1830년 오후 6시 30분 브뤼셀의 모네 극장에는 ‘포르티치의 벙어리 처녀’(La muette de Portici)라는 오페라가 공연되었다.

내용은 나폴리의 벙어리 처녀 페넬라가 나폴리 주재 스페인 총독의 아들 알폰소의 유혹에 넘어가 그를 사랑하지만, 그에게 버림받게 되고, 그 사실을 안 그녀의 오빠가 알폰소에 반기를 든다는 스토리다. 스페인 지배를 받던 나폴리 시민들이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내용의 이 오페라가 벨기에 독립 운동을 촉발했다.

오페라는 네덜란드 국왕 빌럼 1세(William I)의 통치 15주년을 기념하는 축제 마지막날의 피날레 행사로 예정되었다.

앞서 한달전 1930년 7월에 프랑스에선 나폴레옹의 패전 이후 복위한 부르봉 왕조의 샤를 10세가 구제도로 북귀하려다 시민혁명으로 쫓겨났다. (7월 혁명) 나폴레옹 전쟁 이후 벨기에의 지배권은 프랑스에서 네덜란드로 넘어가 있었다. 벨기에인들은 같은 언어를 쓰는 프랑스의 7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을 추구했다.

네덜란드 왕실은 벨기에에서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자 벨기에인의 감성을 자극할 “포르티치의 벙어리 처녀‘의 일반 공연을 잠정 중단했지만, 국왕 축제에만 공연을 허용했다.

벨기에 독립주의자들은 이 공연을 이용하기로 했다. 공연이 진행되던 도중에 오페라를 관람하던 시민들은 일제히 일어났다. 이미 짜여진 각본이었다. 독립세력들은 오페라 결투 장면에서 일제히 일어나 시위대로 전환하기로 예정해 놓고 있었다.

오페라 관람객들은 시위대에 합류했다. 그들은 재빠르게 네덜란드의 정부청사들을 점령하고 독립을 상징하는 깃발을 흔들었다. 브뤼셀의 무산대중도 합류했다. 시민들은 시내에서 가두 투쟁을 벌였다.

 

▲ 벨기에 혁명을 그린그림 (Gustaf Wappers 작, 벨기에 미술박물관 소장) /위키피디아

 

네덜란드 국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왕세자인 빌럼(William)과 프레데릭(Frederik)이다. 왕세자는 온건파였다. 그는 브뤼셀에서 살았기 때문에 벨기에 귀족들의 지지를 얻고 있었다. 그는 호위병도 없이 혼자의 몸으로 브뤼셀로 가서 독립운동 대표들과 만났다. 타협안이 나왔다. 네덜란드 왕국을 둘로 나누고, 남쪽은 왕세자가 왕권을 맡는다는 조건이었다. 빌럼 왕세자는 아버지 빌럼 1세에게 타협안을 제시했다. 국왕은 타협안을 거절하고, 또다른 왕자 프레데릭에게 8,000명의 병력을 주고 진압하라고 했다.

프레데릭 왕자는 브뤼셀에서 유혈 시가전을 벌였지만, 진압에 실패했다. 독립운동 세력은 완강하게 저항했고, 네덜란드 군은 마스트리히와 엔트워프로 퇴각했다.

10월 4일 벨기에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독립이 선포되었다. 11월엔 벨기에 의회가 구성되고 입헌군주국을 국체로 하는 헌법이 제정되었다.

 

이로써 나폴레옹 전쟁 이후 강대국들이 빈 조약을 체결해 벨기에를 프랑스에서 떼내 네덜란드에 붙인 조치는 잘못이었음이 드러났다.

네덜란드의 벨기에 통치는 일방적이었다. 네덜란드 왕국은 벨기에 주민들의 자치권 요구를 무시하고 하원 의석을 적게 배치해 정치적 소외감을 느끼게 했다.

아울러 암스테르담 중심의 네덜란드는 자유무역주의 정책을 취한 반면에 농업지역인 벨기에는 보호무역을 원했다. 기본적으로 언어와 종교도 달랐다. 벨기에는 프랑스어권이고, 종교도 카톨릭으로 신교도 중심의 네덜란드와 갈등했다.

 

▲ 베네룩스 3국

벨기에의 전투적인 독립운동애 빈 조약을 체결한 유럽 열강이 화들짝 놀라 그해 12월 20일 벨기에의 독립을 승인했다. 참가국은 영국, 프랑스,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다.

벨기에 의회는 이듬해 국왕 모집에 나서 레오폴을 국왕으로 추대했고, 레오폴은 1831년 7월 21일 즉위했다. 벨기에는 이날을 국가기념일로 정해 경축하고 있다.

네덜란드는 열강의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인 1831년 8월 2일 네덜란드 국왕 빌럼 1세는 군대를 이끌고 벨기에를 침공해 신생 벨기에 왕국의 레오폴 1세의 군대를 무찔렀지만 프랑스가 개입하겠다고 위협하자 개전 10일만에 물러났다. (10일 전쟁)

1839년 4월 19일 네덜란드와 유럽 열강이 런던 조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벨기에 독립은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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