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고개 순교성지에서 느끼는 이성례 마리아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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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고개 순교성지에서 느끼는 이성례 마리아의 고뇌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20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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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 살리려 배교했다가 마음 고쳐잡고 순교…‘하느님의 종’으로 시복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경부선 철로 쪽으로 잠시 걷다 보면 야트마한 언덕이 나온다. 그곳이 바로 당고개 순교성지다.

그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아파트들이 우뚝 솟아 있고, 순교성지와 함께 자그마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그 지역 재개발과 함께 2008년에 철거되었다가 2011년에 다시 문을 열었다. 건물 안에 성당과 전시관이 있고, 옥상에는 야외 제대와 십자가의 길 등이 조성되어 있다.

 

▲ 당고개 순교성지 /김인영

 

당고개 순교성지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10명의 순교자 이름이 나오는데, 9명은 성인이고, 이성례 마리아 1명만이 ‘하느님의 종’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까닭이 궁금했다.

 

이곳에 모셔진 10인은 조선말 1839년 기해박해 때 처형당한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이들이 처형된 날짜는 음력 12월 27~28일(음력)이었다. 기해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는 용산 새남터와 서소문밖(지금의 서소문공원)이었다. 박해가 끝나갈 무렵 10명의 처형일이 12월 27일과 28일로 잡혔는데, 며칠후가 설날이었다. 서소문 일대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이 설날 대목이 방해되지 않도록 처형장을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바람에 선택한 곳이 용산의 야트마한 언덕이었다.

당고개는 무당집, 성황당이 있는 고개라는 의미의 보통명사가 지명으로 변한 것으로, 같은 지명이 상계동에도 있다. 태백산에 무당들이 살던 곳을 당골이라 한다.

 

▲ 당고개 순교성지 /김인영

 

그러면 10명 가운데 이성례 마리아만이 왜 성인이 아닌, ‘하느님의 종’이 되었을까.

이성례 마리아는 천주교 신자인 최경환(崔京煥)의 부인으로, 여섯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맏아들이 김대건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崔良業)이다. 기해박해 당시 맏아들 최양업은 마카오로 유학을 가 있었다.

▲ 이성례 마리아 성화 /당고개 성지 사이트

기유박해가 일어나자 포졸들이 안양 수리산에 있던 교우촌으로 들이닥쳤다. 부부와 어린 자식들이 모두 포도청으로 압송돼 옥에 갇혔다. 그 엄한 조선사회에도 부모와 함께 어린 아이를 투옥시키는 일은 국법에도 없었다. 하지만 조선 조정은 천주교 신자들에겐 조그마한 관용도 베풀지 않았다.

이성례 마리아는 팔이 부러지고 살이 찢어지는 형벌을 이겨냈다. 하지만 그에겐 육체적 고통보다 아이들이 겪는 고통에 더 마음이 아팠다. 한살배기 아들이 더러운 감옥 바닥에서 먹을 게 없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두 눈으로 지켜보아야 했다.

남편이 먼저 옥사하자, 이성례 마리아는 천주교를 따를 것인가, 아이들을 살릴 것인가 고민하다가 마침내 배교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고민이었으나, 결국 그 선택은 그로 하여금 성인으로 대우받지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성례 마리아는 나머지 네 명의 자식과 함께 옥을 나간다. 하지만 맏아들이 신학생으로 중국에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 다시 체포되었다. 한차례 배교했지만, 이번에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네 아들이 감옥 창살을 붙들고 울부짖어도 다시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려고 그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둘째가 어머니의 굳은 마음을 확인하고 울부짖는 동생들을 달래서 발길을 돌렸다.

네 아이들은 옥에 찾아가면 자신들 때문에 어머니가 배교할 것을 걱정해 동냥을 해가며 살아간다. 어머니가 참수되기 하루 전 어린 형제들은 동냥한 쌀과 몇 푼의 돈을 가지고 희광이(사형 집행인)에게 찾아가 자신들의 어머니가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단칼에 베어줄 것을 부탁한다. 감동한 희광이는 밤새 칼을 갈아 그 약속을 지켰다.

 

▲ 당고개 순교성지 /김인영

 

순교한 이성례 마리아는 한순간 배교한 사실 때문에 성인으로 시성되지 못했다.

당고개 성지의 순교자 10명중 배교하지 않은 9명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4년에 방한했을 때 시성(諡聖)되었다. 이때 성인으로 모셔진 9인은 이인덕(마리아), 홍병주(베드로), 홍영주(바오로), 이경이(아가타), 권진이(아가타), 최영이(바르바라), 이문우(요한), 손소벽(막달레나), 박종원(아우구스티노)이다.

이성례 마리아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기간 중에 시복(諡福)되었다.

천주교에서 시성이란 죽은 이를 성인(聖人)으로 올리는 것이고, 시복이란 복자(福者)로 올리는 것이다. 교황청에서 성덕이 뛰어난 사람으로 선포한 이를 성인이라 한다. 공경의 대상으로 공식적으로 추대된 사람을 복자라 하는데, 이는 ‘하느님의 종’이란 뜻이다.

이성례 마리아는 배교한 그 짧은 시간에 엄청닌 고뇌를 했을 것이다. 천주교 신자로서, 어머니로서…. 하지만 성부와 성자, 성모를 모시는 천주교는 인간의 자그마한 번뇌의 실수도 인정하지 않았다. 너무 가혹한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 당고개 순교성지의 성모자상 /당고개 성지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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