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 오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일촉즉발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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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8 오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일촉즉발의 위기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17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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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도발에 미군 장교 2명 사망…미국 강경 대응에 북한 사과

 

판문점도끼만행사건을 아시나요. 50대 이상은 기억에 생생하겠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듣도 보도 못한 사건일 것이다.

지금부터 42년전인 1976년 8월 18일 오전 11시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방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주한미군 2명을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 및 흉기로 구타하고 살해했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이 사건을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에선 이 사건을 ‘Korean axe murder incident’라 한다.

 

사건 이전에 JSA는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경계가 없었다. 따라서 양측 초소가 서로 중첩되게 설치됐다. 북한은 유엔군과 조율도 않고 남쪽 지역에 5개의 초소를 만들었다. 유엔군 초소는 북한군의 초소에 둘러싸인 형국이었다.

사건이 발생한 제3초소는 JSA남쪽 모퉁이에 자리 잡았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넘어 오는 북한 측 출입 통로의 초입이기도 했다.

1970년대 초 유엔 측은 3초소를 설치하고, 그 북쪽에 3초소를 조망할 수 있는 지점에 5초소를 추가로 설치했다. 그런데 제3초소와 제5초소 사이에 미루나무 한 그루가 무성하게 자라나 양 초소의 시야를 가리게 되었다.

 

▲ /위키피디아

 

1976년 8월 6일 한국인 노무자 6명과 유엔사 경비병 4명이 나무를 베기 위하여 현장에 갔을 때, 북한 경비병이 나무를 그대로 두고 가라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때는 철수했다.

8월 18일 오전 10시 30분 경비병력 10명, 노무자 5명으로 구성된 유엔사 작업반이 나무 주변에 도착해 가지치기 작업을 시작했다.

몇 분 후, 북한군 장교 2명과 병사 9명이 트럭을 타고 현장에 도착했다. 그 가운데 북한군 장교가 작업을 중지하라며 위협했다. 그러나 유엔사 작업반은 이 경고를 무시하고 작업을 계속했다. 11시경 10여 명의 북한군 경비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고, 북한 병력은 30여 명으로 늘어났다. 미군 책임자 보니파스(Arthur G. Bonifas) 대위는 노무자들에게 작업을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그때 박철은 “죽여”라고 소리치면서 보니파스 대위를 때리자, 북한군들이 달려들어 보니파스 대위를 쓰러뜨렸다. 그 중 몇 명이 주위에 있던 도끼로 보니파스의 머리를 가격했다. 북한군은 또 함께 있던 베렛(Mark T. Barrett) 중위도 공격했다.

4분간의 난투극으로 미군 장교 두명은 모두 심각한 두부 손상을 입었다. 2명의 미군 장교는 후송 중에 사망했고, 한국군 장교 1명과 사병 4명, 미군 사병 4명 등 9명이 부상당했다.

북한군의 공격으로 유엔사 제3초소가 부서졌고, 현장에 있던 유엔사 트럭 3대도 파손되었다.

 

▲ 사건의 발단이 된 문제의 미루나무 /위키피디아

 

사건이 발생하자 미국 백악관에선 특별 대책반이 소집되었고, 미국 국무부는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사태도 그 책임은 북한에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제럴드 포드 미국 대통령의 명령으로 주한미군 사령관은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고 JSA 북한군이 이 설치한 불법 방벽을 제거하기 위한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에 돌입했다. 버니언은 미국의 전설적 나뭇꾼의 이름이다.

미국은 데프콘 3를 발령했고, 폴 버니언 작전시 데프콘 2를 발령했다. 데프콘 2는 즉각적인 공격준비테세를 말한다.

 

▲ 폴 버니언 작전 /위키피디아

 

미국은 본토에서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전투기 20대를 한반도에 긴급 파견하고, 괌에서는 B-52 폭격기 3대, 오키나와 카데나 미공군기지에서 F-4 24대를 한반도 상공에 뛰웠다. 또한 함재기 65대를 탑재한 항공모함 미드웨이호와 중무장한 순양함 5척을 한국 해역 인근에 배치했다.

박정희 정부는 특전사 제1 공수특전여단 소속 특전사 대원들을 JSA에 투입해 북한군 초소 4개를 파괴했다.

북한도 19일 오후 5시를 기해 김일성의 명의로 전투태세 돌입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북한은 겉과 달리 실제로는 미군과 한국군의 강력한 대응에 바짝 기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명의로 '유감성명'을 밝혔다. 북한은 그후 1년반 동안 준전시상태를 풀지 않았다.

이 사건 이후 JSA도 분단되었다. JSA엔 경계선이 그어져 남측지역과 북측 지역으로 나누어졌다.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넘은 판문점 JSA 경계선은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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