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8월 15일] 파나마 운하 개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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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8월 15일] 파나마 운하 개통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14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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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프랑스가 시도…미국 지원 하에 파나마 독립시킨후 공사 개시

 

파나마는 남북 아메리카 대륙의 가느다란 지협(地峽)에 있는 나라다. 이 나라는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콜롬비아의 파나마주(州)였데,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뚫으면서 주민들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했다. 파나마 운하가 곧 이 나라를 독립시키는 원천이었다.

파나마가 콜롬비아로부터 독립한 날은 1903년 11월 3일, 그로부터 11년 뒤인 1914년 8월 15일 파나마 운하가 미국에 의해 완공된다.

 

▲ 파나마 운하를 지나가는 선박 /위키피디아

 

파나마 운하(Panama Canal)는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화할 때부터 구상되었다. 멀리 남미 끝에 있는 드레이크 해협을 돌아가기보다 두 대륙의 가장 좁은 곳인 파나마 지협을 뚫어 배가 지나가게 하면 수송거리와 운항일수, 비용을 절약할수 있다는 생각은 지정학적 관점에서 상식에 해당한다. 멕시코 아즈텍 문명을 파멸시칸 에르난 코르테스가 1592년 그 필요성을 역설했다고 한다.

공사는 1880년 프랑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드 마리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는 수에즈 운하 개통을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파나마 운하 공사를 지휘했다. 하지만 난공사 구간이 많았고, 사고 및 질병으로 무려 2만2,000여명의 인부가 죽어 나갔다. 프랑스는 결국 9년만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물러났고, 레셉스는 막대한 빚을 지게 파산했다. 게다가 프랑스에서는 이 운하 때문에 대규모의 정치 스캔들이 폭로되었다.

1894년 또다른 프랑스 회사가 사업권을 인수받아 기존 공사를 이어나가려 했으나 비슷한 어려움에 봉착해 포기했다.

그 무렵 미국이 운하에 관심을 가졌다. 일부에서는 프랑스와 별도로 니카라과 운하를 개설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프랑스의 사업권을 인수하자는 의견이 우세했다. 1902년 미국은 이 사업권을 4,000만 달러에 매입했다.

곧이어 미국 정부는 콜롬비아 정부와 협상을 개시해 1903년 1월 운하가 건설될 지역의 폭 10마일 내의 지역을 미국에 임대하는 조건으로 ▲99년 조차 ▲6마일 폭의 운하 지대 관리비로 1,000만 달러 지불 ▲운하 건설 후 연간 25만 달러의 임대료를 지불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헤이-에란’(Hay-Herrán) 조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콜롬비아 상원이 미국과 체결한 조약의 비준을 거부했다.

 

▲ 1903년 정치풍자 만화. 미국 정부가 파나마 분리주의자를 촉발해 독립을 선언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위키피디아

 

여기서 미국은 마각을 드러냈다. 유럽의 제국주의처럼 군대를 보내 식민지화하는 방식보다는 현지인의 독립운동을 지원해 미국을 지지하도록 하는 방식이 동원되었다.

1903년 11월 2일 파나마주에서 미국의 배후 조종으로 분리 독립 운동이 발생해 다음날인 11월 3일 파나마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다. 미국은 파나마 해역에 전함을 대기시켜 놓았다. 콜롬비아 정부는 파나마의 분리 독립을 막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지만,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미 해군 전함 내슈빌호는 콜롬비아군의 파나마 상륙을 저지했다. 미국은 11월 6일 파나마의 독립을 승인했다. 미국은 닷새 사이에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신생독립국 파나마 정부는 미국에게 운하로부터 폭 10마일 이내 지역의 사용, 점령, 통제권을 미국측에 부여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다. 사실상 운하를 미국의 치외법권지로 인정하는 조건이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은 흥분해 “나는 지협을 얻었다. 이제 운하공사는 시작된다. 의회는 더 이상 논하지 말라”고 말했다.

이젠 운하 공사를 막는 어떤 정치적 장애물은 사라졌다. 1904년 5월 4일 미국은 운하공사에 착공해 10년후인 1914년 8월 15일 운하공사를 마쳤다.

 

▲ 파나마 운하 위치 /위키피디아

 

파나마 운하는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길이 82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미국 선박이 뉴욕에서 이 샌프란시스코까지 항해하는 거리를 남아메리카를 돌 때의 22,500km에서 9,500 km로 절반 이하로 단축시켰다.

운하 건설로 미국의 대외정책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미국은 더 이상 대서양 국가에서 머물지 않고 태평양 국가로 전환했다. 미 해군전함이 태평양에서 대서양으로,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파나마 운하 소유권은 1999년 파나마 정부로 이양되었다. 파나마 정부는 2016년 6월 26일 운하 확장공사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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