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8월 13일] 코르테스의 테노치티틀란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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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8월 13일] 코르테스의 테노치티틀란 함락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12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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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수 위에 떠 있던 아즈텍 수도…인구 20만~30만으로 당대 세계 최대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ś)가 1519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에 도착해 깜짝 놀랐다. 이 신대륙에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 큰 도시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코르테스는 그곳의 인구가 20만~30만명쯤 되는 것으로 보았다. 당시 유럽에서 파리, 피렌체, 콘스탄티노플 정도가 그에 버금가는 대도시였다. 헨리 8세 시절의 런던보다 5배나 컸다. 코르테스는 스페인 국왕에게 보낸 편지에서 “세비야와 코르도바보다 큰 도시”라고 보고했다.

 

▲ 코르테스 군의 테노치티틀란 공격도 /위키피디아

 

테노치티틀란은 코르테스가 이끄는 스페인군에 의해 점령되어 파괴되기 이전에 아즈택 문명의 수도였다. 고대 도시는 텍스코코호(Lake Texcoco) 위에 떠 있는 10여 km의 정방형 섬으로 건설되었으며, 동쪽으로 티오판, 서쪽의 아차코알코, 남쪽 묘트란, 북쪽 쿠에포판 등 방위에 따라 네 구역으로 나누어 졌다.

면적은 8~13.5 ㎢으로, 여의도 면적의 3~4배에 해당했다. 테노치티틀란이란 뜻은 "선인장의 땅"으로, 독수리가 선인장 위에 앉아있는 땅에서 나라를 세울 것이라는 부족의 전설을 따른 것이다.

식량 해결을 위해 서쪽의 담수지를 막아 농지가 조성되었다. 또 두 개의 수로를 만들어 어느 한쪽이 청소나 수리중이 경우에 식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도로는 정기적으로 청소를 했으며 쓰레기는 배에 실어 바다에 버렸다고 한다.

도시 내에는 거대한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이 시장에서는 하루에 2만명의 시민이 물건을 사고 팔았으며, 축제 때엔 4만명이 모였다고 한다. 도시 한가운데엔 제국의 황제가 사는 궁궐도 있었고, 토속신을 숭배하는 마요(Mayor) 사원이 있었다.

호수에서 섬 내부로 연결되는 여섯 개의 길이 나 있었고, 배의 통행과 방어를 위해 곳곳에 목조 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 테노치티틀란 모형도 /위키피디아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 안에는 엄청난 황금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꾀를 냈다. 저 거대한 도시를 소수의 병력으로 쳐들어가면 뜻을 달성할수 없었기에 일단 아즈텍 제국에 반대하는 주변 부족들을 모았다.

그는 또 아즈텍 제국에 ‘케찰코아틀(날개달린 뱀 신)’이라는 신에 대한 전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먼 옛날에 떠났던 그 신이 다시 돌아와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 신은 백인과 같이 흰색이었는데, 코르테스는 자신이 그 신이라고 속이려 했던 것이다.

아즈텍 황제 모크테주마 2세(Moctezuma II)는 코르테스의 거짓말을 들어주었다. (속았다는 설도 있고, 알고도 모른척했다는 주장도 있다.) 처음엔 아즈텍 항제가 스페인 군대를 환영했다. 어쨌든, 1519년 11월 8일에 코르테스 군은 테노치티틀란으로 입성한다. 병력은 660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3명만 머스킷 소총으로 무장하고 33명이 석궁을 소지했으므로, 20만 인구를 상대하기엔 무리였다.

모크테주마 황제는 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을 극진히 대접했다. 코르테스는 황제에게 황금을 요구했다. 황제는 금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있는대로 주겠다고 약속했다. 스페인군은 아즈텍 신상을 뜯어내고 성모상으로 바꾸라고 요구했다. 점점 아즈텍 사람들과 스페인군 사이에 틈이 벌어졌다.

코르테스는 비열한 짓을 했다. 아즈텍 황제 모크테주마를 체포해 인질로 삼은 것이다. 아즈텍 전사들은 덤벼들었지만 총과 칼로 무장한 스페인 병사들을 당해낼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황제의 동생 쿠앗라후악이 스페인군으로부터 풀려나 황제에 취임하게 된다. 아즈텍 전사들은 신임 황제를 중심으로 뭉쳐 스페인군을 수도 테노치티틀란에서 쫓아낸다. 이 와중에 어리석은 전임 황제 모크테주마는 죽는다. 스페인군은 전멸의 위기를 맞는다.

그 사이 스페인 원정대에 흑인 노예에게서 시작된 괴질이 퍼졌다. 그 전염병은 인근 지역을 순식간에 휩쓸었고 면역이 없던 아즈텍인과 토착 인디오들은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다. 그 질병은 천연두였다 토착민 마을은 초토화되었고, 테노치티틀란으로 퍼졌다. 신임황제 쿠잇라후악도 이 전염병으로 숨지고, 모크테주마의 사위 쿠아후테모크가 새 황제가 되었다.

 

▲ 발굴된 테노치티틀란의 일부 /위키피디아

 

코르테스가 병력을 새로 모으고 주변 부족을 설득해 군세를 회복했다고 판단했다.

1521년 4월, 코르테스는 기병 86기, 궁수 118명, 보병 700명을 이끌고 아즈텍의 수도로 진격했다. 여기엔 아즈텍과 적대시하는 틀락스칼라의 5만명이 지원군으로 참여했다.

테노치티틀란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었다. 코르테스 군은 5월 26일에 테노치티틀란으로 식수를 공급하는 수로를 끊었다. 이어 5월 31일 테츠코코 호수에서 스페인군과 아즈텍군 사이에 대혈전이 벌어졌다. 마침내 스페인 함대는 호수를 점령하고 아즈텍 전사들을 도시 안으로 몰아넣었다.

코르테스는 도시를 75일간 완전히 포위하고 굶겨 죽이는 작전을 썼다. 전염병에 시달리던 주민들은 죽어갔고, 시체를 호수에 던질수도 없었다. 먹을 것도 없었다.

스페인군은 서서히 도시를 압박해 갔다. 아즈텍 전사들은 인해전술로 스페인군들을 물리치려 했지만, 갈수록 전사의 수가 줄어들었다. 싸우다 죽은 수보다 전염병으로 죽은 수가 더 많았다. 아즈텍군은 스페인에 패했다기보다 전염병에 패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1521년 8월 13일에 스페인 동맹군의 총공격이 단행되었다. 이날로 남아있던 1만5,000명의 아즈텍 전사들은 전멸하고, 아즈텍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코르테스 군은 테노치티틀란을 철저히 파괴하고, 그 위에 멕시코시티를 건설했다. 신전도 카톨릭 교회로 만들었다. 1325년에 건설된 200년의 도시는 제국의 멸망과 함께 지하에서 깊이 잠들었다.

1978년 공사 도중 몇몇 유물이 발굴되었다. 그 뒤 멕시코 고고학 연구소 주도로 대규모 발굴 조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테노치티틀란 지도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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