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속 8월 5일] 고무신의 추억…1922년 첫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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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 8월 5일] 고무신의 추억…1922년 첫출시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8.04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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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애환이 젖어 있는 신발…한때 수출효자였지만 운동화 등장후 쇠퇴

 

나이가 조금 든 사람은 누구나 고무신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 고무신에 땀이 차 벗을 때 발가락에 시커먼 때가 묻어 나오던 기억, 고무신을 꺾어 자동차놀이를 하던 기억, 뛰다가 신이 벗이진 기억 등등….

“고무신을 꺾어 신는다”는 말은 남자 친구가 군에 갔을 때 변심한 여성을 지칭한다. 과거 고무신은 막걸리와 함께 부정선거의 상징이기도 했다. 검은색 또는 흰색으로 색깔이 단순하고 모양이 비슷해 잔치집과 같이 여러사람이 모이는 곳에 갈때는 부젓가락으로 고무신에 이름을 새겨넣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고무신이 첫 생산된 것은 일제강점기 1922년 8월 5일이었다. 대륙고무주식회사라는 회사가 이날 ‘대장군’이라는 이름에 검정색 고무신을 출시했다.

이 회사가 낸 당시 광고에 “‘대륙고무가 고무신을 출매함에 있어 이왕(李王)께서 이용하심에 황감함을 비롯하여 여관(女官) 각 위의 애용을 수하야…”라는 글귀가 등장한다. 이왕은 조선 마지막 임금 순종을 말한다. 순종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고무신을 신은 인물로 기록된다. 대륙고무의 창업주는 일제로부터 작위를 받은 친일매국노 이하영(李夏榮)으로, 순종에게 첫제품을 진상했을 것이다.

고무신은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깃들여져 있지만, 우리의 전통 신발이 아니다. 1839년 미국에서 고무나무에서 추출한 생고무에 황을 더해 가열해서 신발재료는 만드는 가황(加黃)기법이 개발되었다. 미국산 고무신이 일본에 소개되었고, 1918년 일본 고베지역의 공장에서 고미신발이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대륙고무의 창업자 이하영은 조선말기에 통역관으로 일하며 주미공사관, 주일공사관에서 근무했다. 그러면서 선진문물인 고무신을 알게 되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기업으로 변신해 1919년 직접 고무신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고무회사를 설립했다. 박영효, 윤치호, 윤치소, 박중양 등을 대주주로 영입해 회사를 차린후 지금의 용산구 원효로 1가에 공장을 세워 고무공과 고무신 제작에 나섰다.

처음에는 전통적인 남자용 짚신과 여자용 마른신의 모양을 본떠 고무신을 만들었다. 고무신은 짚신보다 훨씬 질겨 오래 신을 수 있고 비가 내려도 물이 새지 않는 장점 때문에 대륙고무는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 1920년대말 고무신가계 앞의 풍경 (일본지리풍속대계) /문화재청

 

초기 고무신은 ‘호모화(護謨靴)라고 불렀다. ‘호모’는 ‘고무’의 일본어식 음차(音借)표기이며 발음 역시 ‘고무’다.

느닷없는 고무신의 등장이 뜻밖의 대 유행을 이끌어내자 너나 할 것 없이 짚신을 팽개치고 고무신 한 짝을 갖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 되어버렸다. 색깔도 백색, 흑색, 적다색 등으로 다양해지고, 갖가지 모양의 고무신이 등장했다.

고무신의 빠른 보급은 곧 기존 신발의 쇠퇴를 의미했다. 고무신의 위세 앞에서는 서양식 구두는 물론이고 기존의 짚신과 조선신발 역시 똑같은 처지였다.

고무신이 인기를 얻게 되자 여기저기서 고무신 공장이 만들어지고, 생산량도 늘었다. 1923년 김성수, 김연수 형제가 세운 중앙상공주식회사가 별표 고무신을 출시했고, 서울고무공사는 거북선표 고무신을 만들었다.

고무신은 식민지 시대에 조선과 일본, 대만 등지에서 생산되었는데, 유독 한국에서만 대중화되어 일상적인 생활용품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고무신 수요가 켜지자 작은 자본으로도 설립이 가능한 고무공장에 많은 민족자본이 쏠렸다.

해방 이후 고무신 제조는 국제화학의 왕자표로 이어졌다. 변변한 산업이 없던 1960대초, 고무신 산업은 수출산업으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70년대엔 동양고무(기차표), 국제화학(왕자표), 태화고무(말표), 삼화고무(범표), 진양(진양) 등 5대 신발회사가 경쟁했다. 부산은 한때 고무신 생산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스포츠화가 등장하면서 고무신은 서서히 종말을 고하게 된다. 한때 호황을 구가하던 신발회사들은 나이키와 리복등 세계적인 신발업체가 들어오면서 OEM(주문자생산 방식)으로 전락하게 된다.

아직도 고무신을 애용하는 사람은 스님들이다. 농촌에서도 흙일을 할땐 고무신을 자주 신는다. 흙이 묻어도 잘 씻겨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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