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원 칼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제대로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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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제대로 성공하려면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9.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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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한국 거래소가 추석 이후 밸류업 지수를 발표한다. 올해 상반기 우리 정부는 한국 증시의 오래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려는 목표 하에 자본시장 참여자들의 변화를 요청한 프로그램 안을 제안한 바 있고 이를 지속적으로 추진 중인데, 프로그램 중 하나인 밸류업 지수의 발표와 관련 ETF 시장의 활성화가 시작된다는 얘기다. 일단 시작됐다는 측면에서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프로그램 중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나,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증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진행 속도가 느리다. 특히 이 과정에서 일부 대기업들이 합리적 거버넌스 시스템과 일반 주주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절대 이뤄지지 않았을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프로그램 안착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 역시 크게 희석되는 모습이다. 현재 정부의 안에 페널티 요소가 없기 때문에 기업들의 자율적 참여가 중요한데, 역시나 이를 기대하긴 어렵다는 생각이 늘어난 탓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동상이몽

이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은 결국 자본시장에 참여하는 각 참여자가 밸류업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중요성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기업들의 경우에는 근본적인 변화보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속도를 높이는 것과 과거 방식의 친기업 정책을 유지하는 데만 관심이 쏠려 있다. 또 투자자들은 거버넌스 합리화에 따른 장기적 성과보다 단기적인 투자수익률 제고에만, 그리고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의사결정 과정의 합리화보다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는 데만 관심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는 결국 금융시장, 특히 직접금융시장의 발전이 기업과 가계, 그리고 결국 우리나라의 성장에 핵심적인 요소라는 점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지 않는 데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주지하다시피 과거 금융시장의 발전은 한 나라나 기업의 성장에 매우 큰 기능을 해 왔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업화되는 데 있어서, 경제 내에 축적된 잉여자금이 적절한 자금 부족 주체로 흘러 들어가는 데 있어서, 나아가 가계와 기업이 소득과 이익을 선순환시키는 데 있어서 금융시장은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능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간접금융시스템보다 직접금융시스템에서 더 효율적으로 작동해 왔고, 성장의 단계가 고도화될수록 직접금융 시스템의 발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됐다. 차입 자금을 활용한 대규모 시설 투자와 소품종 대량 생산도 중요하지만, 경제가 성장할수록 새로운 아이디어, 즉 신기술을 사업화가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네덜란드, 영국, 미국이 글로벌 경제를 장악할 수 있었던 공통된 이유들을 살피면, 군사력과 함께 직접금융시장의 발전을 꼽을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군사력의 우위가 중요한 요소였겠지만, 최초로 주식과 채권을 발행하고 증권거래소를 만들어 그 당시 새로운 기술과 교역 방식을 대형화할 자금을 마련하게 한 이들의 직접금융 시스템이 결국 이들 국가가 세계 경제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심지어 군사력 우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도 채권을 중심으로 한 직접금융시장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 만이 이들을 해당 시점의 패권 국가로 만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해당 국가들의 직접금융 시스템이 패권을 차지하지 못한 다른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발전되었다는 것은 분명 시사점이 있다.

반면, 은행 중심의 간접금융에 의존했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시스템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경제 위기 시 자금 조달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예로 일본은 오랜 기간 은행 중심의 간접금융 시스템을 유지했으나, 1990년대 부동산 버블 붕괴와 함께 자신들의 금융 시스템이 타격을 입으면서 장기적인 경제 침체를 겪었다. 타격을 받은 은행들이 보수적인 행태를 유지한 데다, 직접금융시장의 더딘 발전이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대륙 국가들 역시 비슷하다. 은행을 통한 간접금융에 의존하면서 경제성장 초기에는 안정적 자금 조달이 가능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나 유럽 재정 위기 때 은행 시스템에 의한 충격이 크게 작용해 어려움을 겪었고, 이러한 문제는 글로벌 GDP 대비 유럽의 비중을 통합 당시보다 40%나 떨어뜨린 원인이 되었다. 이제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주요 기업의 순위에서 유럽 기업을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다.

중국의 경우에도 금융시장 개방을 포함한 주식, 채권시장 등 직접금융시장의 발전이 급격한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지만, 이제 그 힘이 줄어든 상태다. 대형 기술기업에 대한 통제나 홍콩 사태, 그리고 근본적으로는 미국과의 갈등이 영향을 미친 탓이겠지만, 기업 공개 시장의 위축과 해외 투자자의 이탈 등 직접금융시장의 문제가 성장을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일러스트=연합뉴스

자본시장 발전해야 경제선순환 가능

이 같은 점을 감안할 때 직접금융시장의 발전은 국가와 기업의 성장, 가계의 소득 증대라는 선순환 고리를 만드는 데 있어 필요충분조건 중 하나라고 판단할 수 있다.

정부는 단순히 ‘친기업’이 아닌 합리적이고 투명한 기업 거버넌스 시스템이 만들어질 계기를 만들고, 기업은 경영권을 가진 대주주가 아닌 주주 전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거버넌스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 그리고 투자자들은 그러한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차별화하는 것, 그래서 자본시장이 발전하는 것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넘어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성장에 매우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제 소품종 대량 생산에서 신기술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더욱 많이 찾아 나가야 할 시점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국회도, 기업도, 투자자도 이 같은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실행을 앞두게 된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만을 고려해 이런 저런 정책을 거래하려는 정치인들의 행태나, 프로그램의 취지를 거스르는 일부 기업들의 행태를 보면서 우리 증시 투자자들의 믿음은 작아지고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직접금융시장, 즉 자본시장의 발전이 중요하다는 인식의 부재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번에 시작된 밸류업 지수의 제공과 관련 ETF 시장의 활성화 뿐 아니라 세제 개편, 상법 개정, 나아가 금융투자소득세 문제 등에서 이러한 인식이 중심이 된 의사결정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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