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한승태 작가가 세 번째 책 ‘어떤 동사의 멸종’으로 돌아왔다. 저서의 양을 보면 그를 신인 타이틀을 갓 벗어난 작가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첫 책이자 최근 ‘퀴닝’으로 제목을 변경하며 개정판을 낸) ‘인간의 조건’을 2013년에 출판한 지 11년 만에 나온 세 번째 책이다. 두 번째 책인 ‘고기로 태어나서’는 2018년에 나왔다.
11년 동안 세 권을 냈다는 수치로만 보면 이 작가가 게으를지도 모른다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승태 작가가 천착하는 장르를 보면 그런 의구심이 해결된다. 그는 논픽션 작가이며 르포 문학 작가이다.
한승태는 주유소나 편의점 같은 알바 현장은 물론 돼지농장이나 개농장 같은 인간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를 생산하는 현장에서 직접 노동자로 일하며 그 기록을 책으로 담았다.
다시 말해 그는 언제나 현장에 있었고 항상 기록했다. 오래 걸릴 수밖에 없는 작업이었다. 기자나 작가나 며칠 정도 관찰하고 인터뷰하고 생산하는 그런 르포르타주(reportage)와는 접근 방법부터 달랐다.
르포는 보통 타자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대상자와 라포를 형성한 후 좀 더 깊이 들어가는 방식을 택하는데 한승태는 시작부터 현장의 당사자가 되어 직접 겪고 느끼는 일들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의 책들을 읽으면 생동감 있으면서도 불편한 감정을 들게 한다. 평소 별다른 생각 없이 접하는 서비스나 음식 재료들이 어떤 노동을 거쳐 구현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 그러니까 동물들이 어떤 고통을 겪으며 고기가 되어가는지 문장이 살아 움직이듯 생생히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동사의 멸종
출판사는 한승태의 저서들을 ‘노동에세이’라는 장르로 규정했다. 노동이 글 소재이면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 적절한 분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계로서 노동 현장을 구조적 모순이나 계급적 부조리로 다룬 르포르타주 등 노동을 소재로 한 여느 논픽션 문학과는 결이 조금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동사의 멸종’에서 한승태는 AI나 로봇 등 첨단기술로 인해 사라질지 모르는 직종의 현장 노동자로 일한다. 그러기 위해 한승태는 이전의 책에서도 그랬듯 ‘직업소개소’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곳은 한 직종이 사라져가는 현장이기도 했다. 예전에 직업소개소를 통해 전국으로 펴졌던 일용직들이 지금은 각종 취업 구직 사이트를 통해 배출되기 때문이다.
한승태 작가는 이런 모습을 접하며 단순히 ‘직업소개소’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소개하다’라는 동사가 멸종해 가는 현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그는 콜센터에서 일하며 ‘전화받다’라는 동사의 멸종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운반하다’라는 동사의 멸종이, 한식부페에서 일하며 ‘요리하다’라는 동사의 멸종이, 빌딩 용역업체에서 일하며 ‘청소하다’라는 동사의 멸종이 머지않은 미래에 다가올 것이라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들 직종은 현재 취업 시장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 중장년, 그리고 노인 세대를 끌어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즉 이 직종에서 일하기로 마음먹기가 힘들 뿐 취업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떤 동사의 멸종’ 각 챕터에서는 한승태가 이들 직종의 일을 구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장면이 항상 등장한다. 작가는 그 직종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떨어지는 건 아닌지 염려하지만, 언제나 취업은 성공했다.
이들 직종의 공통점은 항상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기존 직원이 일을 관둬 결원이 생기면 이 빈틈을 한승태 작가 같은 초짜 노동자가 메우는 쳇바퀴 같은 일들이 이들 현장에서 반복해서 생기고 있었다.
한승태는 이들 직종 현장 노동자들의 일과를 따라간다. 즉, 자기가 직접 현장 노동자가 되어 일하고 그들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문장으로 묘사된 현장은 이들 직종의 노동 강도가 높고 감정 소모가 적지 않음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이들 직종은 한승태가 ‘멸종’을 느꼈듯 머지않은 미래에 사라지게 될 직종일 지도 모른다. AI나 로봇이 이들 노동자를 대체할 텐데 이들 신기술로 태어난 일하는 기계들은 전혀 지치지도 않을 테고 감정 또한 상할 리 없을 테니까.
나아가 한승태는 단순히 특정 직종이 사라질 거라고 느낀 게 아니라 그 직종이 구현하는 ‘동사’ 자체가 멸종될 거로 느낀다. 어쩌면 문학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비관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 낙관적으로 바라보기도 어려운 현실이기도 하다.
작가는 물론 ‘쓰다’라는 동사까지 멸종될까
한승태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노동에세이 장르를 개척한 만큼 지난 책에서 다루지 않은 새로운 노동 현장에 가서 한동안 노동자로 사는 게 필수다. 책에 담을 이야기라면 하루 이틀의 견학으로는 힘들다. 적어도 수개월 이상의 현장 관찰과 경험이 필요하다.
그런데 책에 담을 글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쓰고 또 쓰고, 다듬고 또 다듬어야 한다. 한승태가 쓴 세 권의 노동에세이를 읽다 보면 현장에서 들인 시간 못지않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쓰고 다듬은 글들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로서 한승태는 시절이 수상하게 흘러감을 느낀다. 이번에 낸 ‘어떤 동사의 멸종’의 맨 마지막 글 ‘마무리하며’에서 한승태 작가는 동사 ‘쓰다’의 멸종을 이야기한다. 이야기를 만들고 글을 쓰는 ‘작가’의 멸종.
앞의 다른 챕터들은 모두 논픽션, 즉 허구가 아닌 사실을 담았다면 에필로그 격인 ‘마무리하며’는 논픽션에 작가의 상상을 담았다. 즉 ‘르포적 성격의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두 전작에서도 에필로그는 르포적 성격의 소설이었다.
에필로그에서 한승태는 AI 기술을 활용한 이른바 ‘스토리텔링 엔진’이 작가의 자리를 빼앗을 거라고 예언한다. 사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AI가 작성한 기사는 물론 드라마나 웹툰 등 이야기 창작 분야에서 이미 쓰이고 있다.
한승태가 아니더라도 인공지능 세상에서 글 쓰는 작가는 경쟁력이 없을 거로 예측하는 이들이 많다. 어쨌든 오늘날 작가 지망생들은 인간 말고도 인공지능과도 경쟁해야 하는 게 현실이 되어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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