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뉴스=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유럽 중앙은행이 1년 11개월 만에 드디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뚜렷한 성장률 하락세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는 물가 불안과 미국 연준의 계속된 기준금리 동결 때문에 유럽 중앙은행 역시 금리 인하에 신중한 모습을 보여 왔는데, 드디어 경기 부양 쪽으로 한 걸음 나아간 셈이다.
이로써 유럽의 기준금리는 4.5%에서 4.25%로 내려왔다. 또한,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영향력은 작지만, 캐나다 역시 유럽 중앙은행보다 하루 전에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 부양에 동참했다.
반면, 미국에서는 5월 비농업신규 고용이 시장 예상을 뛰어 넘는 바람에 3분기 중 금리 인하 기대감이 거의 꺾이는 모습이다. 탄탄한 고용이 임금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면, 예상보다 물가 하락 속도가 빠르지 못하거나, 오히려 물가가 오를 수도 있다는 우려가 발생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중 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전망도 등장하고 있으며, 이번 주 6월 12~13일(현지 시간) 열리는 FOMC가 이전보다 더 긴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을까 라는 우려도 나타나고 있다. 유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글로벌 2위, 3위의 경제대국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서로 다른 통화정책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중국은 성장률 둔화와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완화적인 통화정책 기조를, 일본은 높아진 물가를 고려하는 한편 장기간의 저금리 정책 기조를 정상화한다는 관점에서 (과거보다는)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를 보이고 있다.
각국별 상황따라 다른 통화정책 흐름
한마디로 각국, 각 지역의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통화정책 흐름이 관찰되고 있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미국 연준의 의사 결정이 글로벌 경제와 정책, 금융·자본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지만, 각국의 상황에 따라 엇갈리는 행보가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주식이나 채권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계산이 복잡할 수 밖에 없다. 자본시장은 기본적으로 경기와 유동성이라는 두 가지의 축을 기반으로 움직이는데, 각국 통화당국의 대응이 엇갈리고, 그런 일이 벌어진 이면의 경제적 상황도 엇갈리면서 투자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환경인 것이다. 우리나라만 놓고 보더라도, 내수와 수출 경기가 서로 다른 모습인 데다, 통화정책이 완전히 독립적이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에 증시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횡보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결국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는 환경인가 아닌가를 의미하는 실물 경기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유동성과 유동성에 대한 기대는 기본적으로 실물 경기를 좋은 상태로 유지시키기 위한 중앙은행의 선택에 영향을 받으며, 중앙은행이 잘못된 선택을 해 실물 경기를 위기에 빠뜨리면, 유동성을 늘리는 중앙은행의 그 다음 선택에도 불구하고 증시는 쉽게 오르지 못 하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경제에서 유동성은 중앙은행의 선택 뿐 아니라 금융·자본시장에서 민간에 의해 창출된다. 기업과 가계가, 그리고 나아가 금융기관의 향후 경기 전망이 꺾이면 돈을 풀어도 경제 시스템 내에서 돌아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금융위기를 비롯한 각종 경제 위기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오히려 상당 기간 증시가 어려운 환경에 놓였던 것은 이 때문이다. 반면 통화당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시점에 증시가 꺾이지 않았던 많은 사례들도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한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의 엇갈리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금리를 내렸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러한 선택이 각국의 경제, 나아가 글로벌 경제의 안정적 성장 또는 경기 확장을 해치는 방향인가 아니면 안정적 성장을 유지시키고 경기 연착륙을 유도하는 방향인가 여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현재 각국, 각 지역의 통화정책은 경기 후퇴를 촉진시키거나 물가를 높여 미래의 대응을 어렵게 만드는 방향이기 보다는 경기 연착륙과 물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상황이 나쁘고 물가 하락이 뚜렷한 유럽에서는 경기를 부양하는 쪽으로, 상대적으로 물가 하락 속도가 느리지만 그 이유가 강한 경제 상황 때문인 미국에서는 물가를 조금 더 지켜보는 쪽으로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경기 상황이라는 게 통화정책에 의해서 모두 통제되고 조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랬다면 과거에도 경기의 극심한 후퇴나 높은 물가, 나아가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주요국 증시, 앞서 비관할 상황 아냐
방만한 재정정책도, 가계와 기업이 능력 이상으로 빚을 늘리는 환경에서 이를 조정하기 보다는 조장한 정부 정책 기조나 통화정책 기조도, 나아가 국내 정책적 요인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외부적 충격, 즉 지정학적 위험에 따른 원자재 가격의 급등이나 미중 갈등, 코로나와 같은 전염병도 통화정책만으로는 통제하기 어려운 경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조짐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늘었던 글로벌 유동성을 회수하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민간 부문의 부채비율이 내려갔고, 늘어난 정부 부채비율도 현실적 문제로 불거지진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PF 문제가 금융·자본시장, 나아가 경제 전체를 위기 상황으로 뒤흔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정책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위기 상황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증시, 나아가 주요국 증시에 대해서 앞서서 비관적일 이유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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