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6) 충무로에서 사라져 가는 영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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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6) 충무로에서 사라져 가는 영화관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6.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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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2024년 9월 30일을 끝으로 폐업한 후 리모델링을 거쳐 2025년 4월에 문화예술시설로 돌아올 예정이라고 하네요.

1958년에 문을 연 대한극장은 중구 퇴계로에 있습니다. 충무로 입구이기도 하고요. ‘충무로’라는 단어는 한때 ‘한국 영화계’를 상징했습니다. 충무로는 영화사와 기자재 업체 등이 몰려 있고, 감독과 배우 등 영화 종사자들이 즐겨 찾던 동네입니다.

그래서 충무로 입구에 자리한 대한극장은 시사회 장소로 인기 있었습니다. 대형 스크린이 있던 대한극장은 ‘벤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같은 대작 영화가 한국 최초로 개봉되는 극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에게는 극장이라는 단어보다 영화관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따지고 보면 극장과 영화관은 다른 의미입니다.

극장에서 영화관으로

극장(劇場)은 연극, 음악, 무용 등 예술 분야의 공연은 물론 영화를 상영하는 복합 시설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 우미관 등에서는 영화는 물론 연극과 독주회 같은 공연이 함께 열리곤 했습니다.

그런데 극장에 붙인 이름으로 그 설립 시기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 연구 문헌 등을 참고하면, 20세기 초반 무렵의 극장은 서울의 단성사나 인천의 인부좌처럼 사(社)나 좌(座)와 같은 명칭을 붙였습니다.

1940년대 사진엽서. 왼쪽 건물이 1936년 11월 15일에 신축한 황금좌(黃金座), 광복 이후 국도극장. 사진제공=서울역사아카이브

그리고 1910년대부터는 우미관처럼 관(館)을 붙였는데 1920년대부터 극장이라는 명칭이 쓰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부터는 허리우드극장이나 피카디리극장처럼 외래어 극장 이름이 생겼고요.

해방 후에도 한동안 극장은 영화는 물론 각종 공연이 열리는 장소였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가수와 코미디언이 출연하는 공연과 영화를 교차해 제공하는 극장이 있었습니다. ‘쇼도 보고 영화도 보고’. 라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어 있던 1970년대의 서울 거리를 기억하는 분들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영화 상영만 전문으로 하는 곳이 차츰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극장에서 영화관으로 자리 잡은 것이지요.

1980년대까지는 영화관을 분류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었습니다. 우선 외화관(外畫館)과 방화관(邦畫館)으로 나뉘었습니다. 외화는 외국 영화를, 방화관은 국내에서 제작한 한국 영화를 의미합니다.

극장 연구 문헌 등을 종합하면, 영화관이 들어선 입지에 따라 혹은 각 영화관과 거래한 배급사의 성격에 따라 외화 전문 영화관과 국내 영화 전문 영화관으로 나뉘었습니다. 인근에 학교가 많은 종로3가의 단성사가 대표적인 외화관이었고, 시장이 있어 주부들 왕래가 잦은 을지로4가의 국도극장이 대표적 방화관이었다고 합니다.

개봉관과 재개봉관으로 나누기도 했습니다. 디지털 영사 방식이 아닌 시절 영화당 필름 세 벌 정도를 배급했었는데, 우선 서울과 주요 도시의 영화관에서 필름 세 벌로 먼저 개봉하고, 이후에 필름을 이어받아 도시 주변부 영화관에서 재개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업계에서는 개봉 순서에 번호를 붙여 1번관(개봉관), 2번관(재개봉관), 그리고 3번관, 4번관, 5번관 등으로 구분하기도 했습니다. 3번관 이후는 ‘동시상영관’으로 알려진 곳이 많습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화관끼리 서로 확보한 다른 영화를 교차 상영해 두 편의 영화를 제공하는 효과를 얻은 거죠. 

당시 극장 관계자들의 회고를 보면 한 편 상영이 끝나자마자 동시상영관 직원들이 자전거를 타고 파트너 영화관에 필름을 전달했다고 합니다.

대한극장 전경. 2001년 멀티플렉스로 재건축한 극장 건물로 그전에는 단관 극장 건물이었다. 사진=강대호

충무로에서 퇴장하는 오랜 전통의 극장들

일제강점기부터 서울의 종로와 중구에는 극장이 많았습니다. 종로에는 조선인 극장이 중구에는 일본인 극장이 많았다고 합니다. 중구의 충무로 일대에 역사가 오랜 극장들이 몰려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거의 사라지고 조만간 폐업할 대한극장만 남아 있었습니다.

대한극장에 대한 저의 첫 기억은 만화영화 ‘로보트 태권 V’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1976년 여름방학 때 동네 형들과 줄을 길게 섰다가 본 기억이 있습니다. 

제 추억 속 극장에는 중앙극장도 있습니다. 충무로와 가까운 명동 입구에 있었지요. 이곳에서 저는 1975년에 인도 영화 ‘신상(神象)’을 본 기억이 또렷합니다. 코끼리들이 활약하는 아주 인상적인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중앙극장 건물은 헐리고 지금은 대신증권 사옥이 되었습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 충무로 명보극장에서 홍콩 영화를 본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은 복합 공연장으로 바뀌었지만요. 그런데 중구 충무로 일대의 극장 중에는 중앙극장처럼 헐리고 다른 용도로 재건축한 곳이 여럿입니다.

서울 을지로4가에 있었던 국도극장의 1990년대 모습. 사진=연합뉴스

1913년에 극장 역사가 시작된 국도극장은 1999년 9월에 철거에 들어갔습니다. 뒤늦게 서울시가 보존 조치에 나서겠다고 했지만, 이미 시작된 철거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국도극장 자리에는 옛 이름을 상호로 쓰는 호텔이 들어섰습니다.

1935년에 문을 연 스카라극장은 멋진 근대건축물이었습니다. 하지만 2005년 11월 문화재청이 근대 문화유산으로 문화재 등록하겠다고 예고를 하자 12월에 건물주가 헐어버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2009년 아시아경제신문사 사옥이 들어섰습니다.

대한극장은 2001년 멀티플렉스로 변신했지만, 그전에는 스카라극장이나 국도극장처럼 멋진 건물을 가진 단관 극장이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종로의 서울극장이 문을 닫자 대한극장은 중구뿐 아니라 서울에서 유일하게 단관 극장의 맥을 잇는 영화관으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대한극장은 당장은 헐리지 않겠지만 충무로의 다른 극장들처럼 영화관의 역할은 더는 못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몇 주 중구 일대를 취재하면서 대한극장을 여러 차례 방문해 보았습니다. 공교롭게도 갈 때마다 휴관하는 날이거나 문을 열지 않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문 닫힌 모습에서 조만간 다가올 대한극장의 폐업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멋진 단독 건물의 가졌던 단관 극장은 이제 추억 속에서나 머물게 되었습니다.

충무로 입구에 자리한 대한극장. 사진=강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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