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 칼럼니스트] 제목이 모든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었습니다.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에는 영화를 사랑하고 극장이 많았던 인천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1883년에 개항한 인천은 근대 문물이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습니다. 극장도 일찍이 들어섰는데 조선인을 위한 최초의 극장인 ‘협률사’가 인천에 생긴 건 1895년이었습니다. 나중에 ‘애관극장’으로 이름이 바뀌는 협률사는 이 책을 있게 한 근간이 된 극장입니다.
저자의 집념으로 끌어 모은 자료들
서점에서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왠지 낯이 익었습니다. 저자의 활동과 다른 작품을 이미 접했었기 때문입니다. 저자 윤기형은 광고 감독 경력을 가진 극장 연구자이며 다큐멘터리 감독입니다.
저는 저자의 활동을 처음에는 블로그로 접했었습니다. 2021년 서울극장이 문을 닫을 즈음 극장에 관한 글을 쓰려고 찾아본 사이트 중 하나였습니다. 그때 ‘애관(愛觀), 보는 것을 사랑한다’라는 블로그 제목과 ‘애관극장 및 인천에 있었던 옛 극장들에 대한 사진과 제보 부탁’한다는 블로그 소개 글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카테고리 곳곳을 살펴봤었습니다. 거기에는 애관극장 등 인천의 극장들에 대한 그야말로 방대한 자료들이 있었습니다. 저자가 직접 모으기도 했겠지만, 인천의 영화 애호가들이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주말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우연히 저자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보는 것을 사랑한다>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폐관 위기에 처한 애관극장을 이야기한 다큐멘터리인데 구성이 흥미로워 OTT로 다시 감상하기도 했습니다.
역사가 오랜 이 극장이 사라질지 모르는데도 다큐에서 한국 정부나 인천시는 애관극장을 보존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반면 많은 인천 시민들은 애관극장에서 계속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이 극장을 추억하는 이들의 인터뷰를 담기도 했습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최불암, 박정자, 전무송 등 영화인들을 비롯해 개그맨 지상렬, 가수 한명숙 등이 직접 출연해 인터뷰했습니다.
이러한 블로그의 방대한 자료들, 아마도 저자의 집념으로 끌어모았을 자료들과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풍성한 내용이 저자의 책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에 담겼습니다.
극장 관점에서 바라본 인천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는 인천에 있었거나 현재도 있는 극장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극장을 렌즈로 해서 바라본 인천의 영화사(映畫史)이자 극장사(劇場史)이기도 합니다.
이 책 1부는 인천의 극장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한국의 극장 역사이기도 합니다. 2부에서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영화 도시로서 인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950년대만 해도 인천에 영화제작사가 여러 회사가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3부에서는 다큐 <보는 것을 사랑한다>에서 다루기도 한 ‘애관극장’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강옥엽 인천여성사연구소 대표는 인터뷰에서 “애관극장의 전신인 협률사는 서울의 원각사보다 먼저 생긴 조선인 최초의 극장”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런 협률사가 문을 연 1895년부터 애관극장으로 바뀌고 130년이 가까운 최근까지 극장이 걸어온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게 저자의 집념이 들어간 각종 자료입니다. 오래전 신문 기사와 각종 연구 문헌과 자료, 그리고 각계각층의 인터뷰를 종합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전무송 배우의 인터뷰가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중학생 시절 애관극장 간판부에서 잠시 그림을 그렸었다는 일화를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인천광역시 각 자치구의 극장들 목록이 1부에 나오는데 4부에서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담았습니다. 어떤 극장이 언제 어디서 열었는지, 그리고 언제 문을 닫았는지 등과 극장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최초이거나 유명하거나, 혹은 크거나 작거나를 막론하고 인천 각 지역에 있었던 극장들 목록과 설명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각 극장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저자의 발품에다 지역사를 연구하는 학자, 극장 관계자, 그리고 인천 시민들의 인터뷰가 더해져 완성되었습니다. 저자에 따르면 인천에 150여 개의 극장이 세워졌다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 곳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저자는 자료를 뒤지고 직접 찾아다니며 다시 발굴해 냈습니다.
이렇듯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는 저자의 발품이 그대로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 사례 중 하나를 꼽자면, 용현시장 자리에 있던 한일극장 터를 찾아 나선 저자가 시장 상인들에게 탐문을 한 후 결국 그 위치를 알아내는 과정입니다.
“새로나상회 오른쪽 맨 끝 전주반찬 가게까지가 한일극장 정면이었다. (중략) 고려왕족발과 소문난 엄마김치 가게가 극장 입구였다.”라는 식입니다. 이렇듯 쉽지 않은 과정들이 느껴져 제가 ‘저자의 집념’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라져가는 것들의 흔적이 담긴 책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를 읽고 페이스북에 “영화의 역사만 생각했지 극장의 역사는 왜 생각을 안 하고 살았을까.” 하는 감상평을 남겼습니다.
그만큼 이 책은 철저히 극장 중심의 책입니다. 한편으로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자세를 돌아보게도 하는 책이고요.
오동진 평론가가 ‘집념’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저도 이 책을 읽고는 ‘집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적어도 특정 분야의 글을 쓴다고 하면 자료 수집과 연구를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절로 반성하게도 되었습니다.
서점에서 이 책에 제 눈이 머문 건 아마도 대한극장 소식이 작용했을 겁니다. 단관 극장의 전통을 가진 서울의 유일한 극장이 문을 닫을 거라는 소식이요.
서울극장이 문을 닫았을 때도 그랬지만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서울극장이나 대한극장에 관해 깊게 다룬 다큐멘터리나 책 같은 저작물이 보이지는 않지만요.
이런 면에서 ‘영화 도시 인천과 극장의 역사’는 사라져 가는 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질문을 던지는 책 같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인천의 애관극장은 참으로 다행인 것 같습니다. 극장 주인도 미처 몰랐던 역사를 발굴해 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계속 문을 열기를 염원하는 문화인들과 시민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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