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5) 재개발로 이전한 을지면옥과 을지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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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험, 서울 이야기](75) 재개발로 이전한 을지면옥과 을지다방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6.02 09: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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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강대호 칼럼니스트] 을지로에 가면 서울 도심의 과거 모습과 현재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시청 앞 을지로 입구부터 을지로2가 교차로까지는 비교적 최근에 지은 고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을지로3가부터는 1970년대 이전에 지은 상대적으로 낮은 건물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특히 을지로3가에서 5가까지 대로변에는 1950년대와 60년대에 건축한 건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빌딩이 있던 자리가 차단막으로 가려진 곳도 있습니다. 여러 건물을 한 필지로 묶어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을지로 일대는 개발 중입니다. 

건물과 함께 헐린 추억

을지로3가역을 나서면 청계천 방향으로 커다랗게 가림막이 쳐진 구역이 나옵니다. 이곳에는 철공소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골목이 있었습니다. 한 골목의 초입에는 ‘대진정밀’로 알려진 건물도 있었고요.

1947년에 지어진 2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은 이 골목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건축 양식을 연구할 수도 있는 데다 보존 상태도 양호해 근대건축자산으로 분류됐었습니다. 하지만 개발 당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도로 확장 때문에 대진정밀 건물을 철거할 계획이고 대신 건물 전면부만 떼어 내 새로 짓는 고층 건물 하단부에 붙일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2021년 12월 당시 대진정밀. 1947년에 지은 건물인데 이 일대 재개발로 헐렸다. 사진=강대호

현재 대진정밀 건물은 물론 그 일대 건물들 모두 철거되었습니다. 그래서 대진정밀 건물 전면부를 잘 떼어 내어 ‘재현’ 준비를 잘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담당자와 닿기 어려웠습니다.

한편, 가림막이 쳐진 구역에는 사람들이 즐겨 찾던 을지면옥과 을지다방이 있었습니다. 같은 건물에서 장사를 한 두 가게는 이 동네를 대표하는 명소였습니다. 

을지면옥은 평양냉면으로 소문난 곳이었습니다. 을지면옥 주인은 ‘필동면옥’ 주인과 자매로 알려졌습니다. 이들 자매는 아버지로부터 냉면 요리법을 이어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의 아버지가 ‘의정부 평양면옥’ 창업주였으니까요.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성지로 꼽는 식당입니다.

2021년 7월 당시 을지면옥 입구. 사진=강대호

의정부 평양면옥은 1969년에 연천에서 열었다가 1987년에 의정부 지금의 자리로 이전했습니다. ‘필동면옥’은 첫째 딸이 1985년에, ‘을지면옥’은 둘째 딸이 1985년에 개업했고요. 

그러니까 을지면옥은 개업 40년이 다가옵니다. 한국의 자영업 상황에서 40년이면 노포에 들어가지 않을까요. 과거 을지면옥은 오래된 건물에 있어서 노포라는 느낌을 주었고 그런 분위기가 냉면의 맛을 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을지다방도 1985년에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공구 가게 간판들 사이에서 빨간 글씨의 다방 간판은 존재감을 뽐냈었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을지로와 청계천 일대의 공구 상가에서 일하는 분들이 주로 찾았을 겁니다. 그래서 한때 오전 이른 시각에 라면을 팔았었다고 하네요.

그런 을지다방은 힙한 장소로 알려졌었습니다. BTS가 이곳을 방문한 것이 알려진 후부터입니다. 그래서 다방에 들어서면 BTS가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과 굿즈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팬이 방문했었는데 외국인들도 많이 찾았다고 합니다. 그 행렬에 저도 동참했었고요.

2021년 7월 당시 을지면옥과 을지다방 간판. 두 가게는 공구 가게들이 입주한 건물에서 영업했다. 사진=강대호

하지만 을지다방과 을지면옥이 입주한 건물 일대가 한 필지로 묶여 재개발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2015년에 ‘을지면옥’과 ‘을지다방’을 ‘서울시 생활유산’으로 지정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개발을 유보하거나 보존을 강제한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미래유산’과 달리 생활유산은 지주와 시행사가 합의하면 재개발에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결국 두 노포가 입주한 건물은 철거되었습니다. 주변 건물들까지 싹이요. 가림막이 쳐진 그 일대는 그동안 유적이나 유물이 묻혀 있는지 검사했고 지금은 건축 준비 중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림막 주변으로 컨테이너들이 보입니다. 과거 이 일대에 있었던 점포들이 영업하고 있었습니다. 시행사 측에서 대체 영업장소로 제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을지다방과 을지면옥은 다른 곳으로 이전했지만요. 

새로 이전한 을지다방. BTS 사진과 굿즈가 전시되어 있다. 사진=강대호

새로운 곳으로 이전했어도 맛과 분위기는 그대로?

지난해 말 을지로 일대 재개발 현장을 취재하다가 우연히 을지다방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입간판으로 BTS가 방문했던 그 다방이라고 홍보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을 지나다닐 일이 많으니 다음에 와야지 미루다가 얼마 전에야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2022년 2월 마지막으로 을지다방을 방문했을 때 박옥분 사장은 시행사 측과 보상과 명도 소송으로, 그리고 새로운 가게 자리를 알아보느라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가게를 이전한 후 안정되어 가는지 편안한 모습이었습니다.

가게는 예전 크기와 비슷했고 BTS의 사진과 굿즈가 전시된 모습도 같았습니다. 물론 메뉴도 똑같았고요. 명도와 이전 과정의 자초지종을 물으니 박옥분 사장은 말을 아꼈습니다. 그냥 잊지 않고 손님들이 찾아주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새로 문을 연 을지면옥에도 다녀왔다고 했습니다. 주인끼리 잘 아느냐고 물어보니 거의 40년을 같은 건물에서 장사했는데 모를 리 있겠냐고 반문했습니다.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좀 일찍 갔는데 점심시간 즈음 되니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외국인들과 젊은 커플이었는데 복고적 분위기를 맛보려는 이들로 보였습니다.

종로세무서 옆으로 이전한 을지면옥. 사진=강대호

새로 문을 연 을지면옥도 가보았습니다. 을지로를 떠나 종로세무서 옆으로 이전했습니다. 2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는지라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이들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었다는 소식이 SNS에 자자합니다. 그래서 오후 5시쯤 가보았는데 이미 줄을 서 있었습니다. 저녁 영업은 5시 30분에 시작하는데 말이죠. 

을지로에 있을 때의 예스러운 건물이 아닌 깔끔해 보이는 신축 건물이었습니다. 오직 ‘을지면옥’ 간판만 붙어 있었고요. 자기 건물을 올린 걸까요.

줄은 길었지만, 회전은 빨랐습니다. 아마도 냉면만 먹는 손님이 많아서였을 겁니다. 저와 일행은 편육에 술을 곁들였는데 주위 테이블 손님들이 계속 바뀌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님들의 행동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냉면이 나오면 먼저 사진을 찍는 거였습니다. 식당을 둘러보니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건물도 바뀌었지만, 손님들 면면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았다면 지금은 거의 청년 세대로 보였습니다. 

오래된 건물이 주는 노포 분위기는 아니더라도 40년 가까이 이어온 전통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거로 보입니다. 이런 기운이 다른 노포에도, 혹은 노포가 되고픈 사업장들에도 전달되었으면 합니다. 노포가 이어가는 전통은 물론 그 안에 담긴 이야기까지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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