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희의 도보기행] 도심 속 번잡함 벗어던지고 숲의 향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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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의 도보기행] 도심 속 번잡함 벗어던지고 숲의 향기에 취하다
  • 박경희 도보기행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5.24 13:22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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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희 칼럼니스트
박경희 칼럼니스트

[박경희 도보기행 칼럼니스트] 5월이 반이 지나고 있는데 이때까지는 쌀쌀한 날이 자주 있었고, 연일 일교차도 컸다.
‘부처님 오신 날’ 기상 예보도 심상치 않았다.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고, 서울은 강풍을 동반한 비 예보가 있었다.

공휴일에 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멀리 나가기보다 가까운 곳에서 갈 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부처님 오신 날’과 연결되는 강남구 삼선동 봉은사를 갔다가 선정릉과 도곡동 매봉산 둘레길을 이어서 걷기로 하였다.

봉은사역 1번 출구에서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됐다. 봉은사 정문 앞에는 이른 시간에도 많은 불교 신도의 분주함이 보였다. 대웅전 앞은 의식 예행연습을 하고 있었고, 신도들은 각자의 기원을 위해 향을 피우고 촛불을 켜고 있었다.

봉은사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의 이름은 견성사(見性寺)였고, 선릉 근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 성종의 능인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면서 지금의 삼성동 자리로 이전하여 많은 땅을 하사받게 됐다. 이때 사찰 이름을 ‘은혜를 받든다’라는 뜻의 봉은사(奉恩寺)로 바꾸게 됐다.

봉은사 일주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 일주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의 문화재와 대웅전 등 사찰 건물을 천천히 보고 싶었으나 ‘부처님 오신 날’이라 행사 준비로 분주하고, 설치된 구조물이 많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다음으로 미루고 봉은사의 숲속 명상길로 들어갔다.

봉은사 연등.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 연등.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 주위는 서울 도심 중 최첨단 시설이 있는 곳으로 번화하고 높은 건물들로 둘러싸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지하철을 내려 바로 접근이 가능한 곳에 전통 사찰과 깊은 산속 같은 숲이 있다는 것에 놀랐다.

국내 사찰 중 드물게 봉은사는 고층건물과 어우러져 있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국내 사찰 중 드물게 봉은사는 고층건물과 어우러져 있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 뒤의 야트막한 동산은 계절의 여왕 5월답게 싱싱한 초록의 향연이었다. 근처 직장인들과 가까이 코엑스몰이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고 한다. 어두워지면 주위 고층 건물들의 불빛으로 아름다운 도심의 야경도 볼 수 있다.

봉은사내 사찰 들 사이로 보이는 유명한 미륵대불.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내 사찰 들 사이로 보이는 유명한 미륵대불.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명상길에서 들리는 새소리도 경쾌하여 듣는 귀가 즐거웠다. 봉은사 앞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명상길이 있는 숲까지 전해지지 않았다. ‘부처님 오신 날’의 의식을 진행하기 위해 확성기를 통해 나오는 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았다. 깊은 산속에 있는듯한 분위기였다.

봉은사 명상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 명상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전통 사찰과 주변에 솟아 있는 속세의 건물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풍광이 이색적이었다. 숲을 돌고 사찰 입구 쪽으로 나오니 탐스러운 꽃송이를 가진 작약이 화려함을 뿜어내고 있었다. 특별한 날 도심 속의 사찰을 방문한 의미도 있었으나, 그로 인해 호젓하게 둘러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남기며 선정릉으로 향하였다.

봉은사 미륵전.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봉은사 미륵전.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공휴일이라 도로에는 자동차가 별로 없고, 거리에 사람들도 없어 한적한 분위기였다. 넓은 도로 옆을 걸어가도 제법 연륜이 있는 가로수들이 있어 좋았다. 봉은사에서 선정릉은 1.5km의 거리로 걸어서 30분도 걸리지 않아 가로수를 벗 삼아 걸었다.

길가 콘크리트사이에 피어오른 꽃.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길가 콘크리트사이에 피어오른 꽃.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정릉도 봉은사와 함께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왕릉이다. 선정릉이란 이름은 조선 제9대 성종과 계비 정현왕후가 안장된 선릉과 제11대 중종이 안장된 정릉이 한 울타리 안에 있어 합쳐 부르는 이름이다.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조선의 왕릉이기도 하다.

선정릉 안내도.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정릉 안내도.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정릉은 1000원의 입장료가 있다. 찾아갔던 날은 공휴일이라 입장료 없이 들어갈 수 있었다. 선정릉도 고층 건물들이 빽빽하게 빌딩 숲을 이루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선정릉 재실 옆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정릉 재실 옆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매표소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입구에서부터 제철을 만난 산딸나무꽃이 반겨주었다. 소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우거진 숲은 시야를 맑게 해 주었고, 바로 옆에 도로가 있어도 자동차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여기를 방문한 외국인들도 복잡한 도심에 왕릉이 있다는 것에 놀란다고 한다.

선정릉내 울창하게 우거진 약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정릉내 울창하게 우거진 약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지금은 풀꽃보다는 나무에서 피는 꽃이 많은 시기로 하얀색 꽃이 주를 이룬다. 아래쪽을 향해 하얀 별처럼 달려있는 향기가 진한 때죽나무꽃, 작은 접시 모양의 꽃이 피는 백당나무, 십자가 모양의 꽃으로 뒤덮인 산딸나무, 말발도리 종류의 하얀 꽃들이 선정릉 초록의 숲을 더욱 빛나게 했다. 그리고 오래된 향나무와 약 500년 수령의 보호수 은행나무가 숲의 운치를 더하였다.

성종의 능(선릉)앞 정자각.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성종의 능(선릉)앞 정자각.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릉은 하나의 정자각을 사이에 두고 성종의 능과 정현왕후의 능이 약간 떨어져 있다. 성종의 능은 옆으로 조성 되어있는 길을 올라가 볼 수 있다. 

성종의 능에서 바라본 정자각.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성종의 능에서 바라본 정자각.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성종의 능(선릉)앞에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안쪽 우측에 선릉이 보인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성종의 능(선릉)앞에 울타리가 있고 울타리안쪽 우측에 선릉이 보인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왕릉 둘레에 있는 울타리 차이로 바깥쪽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생(生)과 안쪽의 영원한 안식 중인 사(死)로 나뉘어졌다.

선정릉내 숲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정릉내 숲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정현왕후의 능으로 가는 길에는 하얀 찔레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었다. 예쁜 초록 잎 사이로 꽃이 진자리에 씨앗이 맺어 있는 병아리꽃나무도 보였다. 지각생 덕분에 상큼하게 피어있는 귀여운 병아리꽃나무의 하얀 꽃도 볼 수 있었다.

선정릉내 소나무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선정릉내 소나무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정현왕후의 능을 거쳐 아래쪽 중종이 안장된 정릉에 도착하였다. 중종은 성종의 둘째 아들이며, 정현왕후의 친아들이다.
중종의 능은 아버지인 선릉과는 달리 홀로 묻힌 단릉이다. 

중종의 능(정릉)이 저 멀리 보인다. 봉분 공사중이어서 출입이 제한돼 정자각에서 촬영했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중종의 능(정릉)이 저 멀리 보인다. 봉분 공사중이어서 출입이 제한돼 정자각에서 촬영했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단릉인 이유 중 하나는 비가 많이 오면 정릉 앞 정자각까지 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문정왕후의 묘를 이곳에 할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저지대인 강남구 일원은 기습 폭우가 내리면 침수가 되는 지역이니 배수 시설이 없던 시절에는 침수가 더 잦았을 것이다.

이 지역에 절을 세우고, 왕릉을 조성한 시대에는 서울이 아닌 경기도 광주군이었다. 행정 개편으로 서울시 성동구로 편입되었고, 1975년 강남구로 분리되면서 현재 강남땅에 있게 된 것이다. 활기찬 강남 개발 바람을 선정릉 일대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피해 갈 수가 있었다.

강남 한복판에 개발을 피한 멋진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숲이 있어 예전 모습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땅값이 비싸다고 왕릉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도심의 오아시스로 남겨 둔 것은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본다.

봉은사와 선정릉을 찍은 항공사진을 보니 빽빽한 콘크리트 건물들 속에서 초록의 두 섬이 인간의 양쪽 폐처럼 보인다.

선정릉에서 나와 도곡동에 있는 매봉산으로 향했다. 넓은 도로의 인도를 걸어가면서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줄지어 있어 놀라기도 하였다. 가로수로 흔하게 보았던 나무인데 어느샌가 사라져 잘 보이지 않은 나무이다. 건물 쪽은 은행나무, 차도 쪽은 플라타너스의 이중 가로수 구간도 있다. 도로에 줄지어 있는 가로수만 보고 걸어도 좋았다.

매봉산 정상 표시석. 해발 95m 표시가 선명하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매봉산 정상 표시석. 해발 95m 표시가 선명하다.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오후 2시쯤 비 예보는 있었지만, 오전에는 맑고 약간 쌀쌀한 날씨로 걷기에는 최상의 날씨였다. 오후의 하늘은 회색이 되었고, 바람도 심상치 않았다.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아 매봉산을 서둘러 올라갔다. 여기도 숲이 우거지고 산책코스로 아주 좋은 곳이었다. 정상에 93m라 새겨진 정상 표시석이 있다. 높이가 100m도 되지 않지만 둘레는 넓고 깊은 산의 모습이었다.

매봉산 둘레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매봉산 둘레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낙엽이 쌓이고 쌓여 바닥은 늦가을의 모습이고, 위는 초록이 발산되는 신록으로 깊은 산속 같았다. 매봉산 근처에는 고층 아파트들이 많으나 숲속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우거져 있다. 매봉산 둘레길을 거의 다 돌고 나니 빗방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기세였다. 서둘러 매봉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매봉산 둘레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매봉산 둘레 길. 사진=박경희 칼럼니스트

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심의 번잡한 모습과 달리 평온함과 계절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세 군데를 걸어서 다녀 보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주변에 좋은 곳이 많이 있다.

▶트레킹 일시 : 2024년 05월 15일 (수)
▶트레킹 코스 : 봉은사 명상길 ~ 선정릉 둘레길 ~ 도곡동 매봉산 둘레길 (총 연장 12.6km)

박경희 도보기행 칼럼니스트는 산에 오르고 계곡을 걷는 게 좋아 친구들과 함께 국내외로 등산과 트레킹을 다닌지 어느새 30여년이 지났다. 야생화가 너무 이쁘고 좋아 사진에 담는 일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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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2024-05-26 22:07:04
가까운 곳에도 이렇게 좋은 곳이 있네요.

준이맘 2024-05-26 10:21:52
멋진 글 감사합니다. 꼭 가봐야겠네요.

푸르미 2024-05-25 20:39:10
와!
봉은사, 선정릉 앞을 간혹 지나다면서도 들어가볼 생각을 못했네요. 일부러 시간을 내여 가봐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