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한일간 음악적 영향력 보여준 ‘한일가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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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의 대중문화 읽기] 한일간 음악적 영향력 보여준 ‘한일가왕전’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5.1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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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호 칼럼니스트] MBN ‘한일가왕전’이 나름의 성과를 얻고 막을 내렸다. 6주 연속으로 지상파·종편·케이블에서 방송된 모든 프로그램을 통합해 같은 시간대 시청률 1위를 차지했다. 최종회에는 분당 최고 시청률 15.2%, 전국 시청률 8.3%(닐슨코리아 기준)를 기록했다. 

다른 예능의 시청률과 비교해보면 ‘한일가왕전’의 인기를 알 수 있다. tvN ‘유퀴즈’는 평균 5%대의 시청률이고 MBC ‘라디오스타’는 평균 3%대의 시청률이다. 이런 인기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국 가수들의 팬덤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한국과 일본의 가수들이 경연을 펼치는 국가 대항전이라는 콘셉트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국과 일본에서 선발된 가수가 펼친 노래 경연

제목에서 보듯 ‘한일가왕전’은 한국과 일본의 가수가 벌이는 가창 대회다. 이를 위해 한국과 일본에서 각각 선발 대회를 거쳤다. 한국은 MBN의 ‘현역가왕’에서, 일본은 후지TV 계열사에서 제작하고 위성방송국 ‘WOWOW’와 인터넷방송국 ‘ABEMA’를 통해 방영한 ‘Trot Girls Japan(트롯 걸스 재팬)’에서 뽑힌 각 7명의 가수가 출전했다.

그런데 두 프로그램은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현역가왕’은 이미 활동 중인 기성 가수들이 나왔고, ‘트롯 걸스 재팬’은 무명이나 신인 가수들이 출전했다. 즉 ‘현역가왕’에서 뽑힌 한국 가수들은 이미 팬덤이 있거나 크게 성장하는 중견 가수들이었고, ‘트롯 걸스 재팬’에서 뽑힌 일본 가수들은 이제 막 가수로서 서사가 부여된 신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명색이 국가대항전인데 출전 선수들의 체급이 차이가 난다는 지적이 있었고, 애초 기획에서 의도했던 한국의 트로트와 일본의 엔카가 대결하는 구도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었다. 일본 가수 중 엔카에 익숙한 이는 단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트롯걸스재팬’에서 인기를 끈 주요 영상을 보면 엔카는 드물었다. 일본의 과거 음악인 ‘시티팝’ 계열, 혹은 댄스 계열이나 발라드 계열의 노래가 많았다. 이들이 ‘한일가왕전’에서 선곡한 곡들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엔카 신동으로 알려진 ‘아즈마 아키’만 엔카와 트로트를 선곡해 불렀다. 

오히려 이런 점이 경연 출신 트로트 가수들의 매너리즘을 드러나게 했다. 오늘날 한국의 트로트 가수들은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대중이 혹은 심사위원이 좋아하는 걸 알아서 그 방식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고음을 강조하고 성량을 자랑하고 감정에 호소한다.

‘한일가왕전’에 출전한 한국 트로트 가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의 가창력은 뛰어났다. 최소한 일본 대표들보다는. 그래서 가창력을 강조한 것일까. 누구라고 할 거 없이 모두 큰 목소리와 고음을 뽐냈고 과도한 감정 표현을 연출했다. 한마디로 ‘감정 과잉의 노래자랑’이었다.

반면 일본 가수들은 노래로 승부했다. 여기서 노래는 음악 그 자체라는 의미다. 감정 과잉의 트로트 음악 사이에 등장한 일본 노래는 신선했다. 무엇보다 듣는 귀가 편했다. 

혹자들이 아마추어에 가깝다고 깎아내렸던 ‘한일가왕전’ 일본 대표들은 노래를 잘 부르기까지 했다. 다시 말하면 자기 목소리와 가창력에 딱 맞는 노래를 선곡해 불렀다는 의미다.

이런 노래들에 트로트 기존 팬덤이 아닌 대중들, 특히 MZ세대들이 반응했다. 그중 ‘한일가왕전’ 일본 대표 ‘스미다 아이코’가 부른 ‘긴기라기니’ 영상은 300만 조회를 훌쩍 넘었고, ‘애염교’와 ‘만나고 싶어서’도 수십만의 조회를 자랑하고 있다. 

10대 여학생인 ‘스미다 아이코’가 부른 이 노래들은 모두 일본의 흘러간 명곡들이다. 그런데 한국 대중들도 듣기에 좋았나 보다. 유튜브에 있는 이 노래들의 원곡 영상에는 최근에 달린 한글 댓글을 꽤 볼 수 있다. 대개 ‘한일가왕전’에서 ‘스미다 아이코’가 부른 걸 듣고 찾아왔다는 사연이었다. 

MBN '한일가왕전'

편파 판정 의혹에도 숨기지 못한 노래의 가치

‘한일가왕전’의 콘셉트는 국가 대항전이다. 그래서 승패가 갈렸다. 그것도 드라마처럼. 전체로 보면 3대2로 한국이 승리했다. 마지막 경연은 간발의 차로 승부가 났다. 

그런데 SNS 등에 편파 판정이라는 의견들이 올라왔다. 누가 봐도 일본 가수가 승리한 맞대결이 있었는데 한국 가수가 승리했다는 거다. 물론 누가 노래를 더 잘 부르느냐는 건 상당히 주관적인 판단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현장의 판단이 그러했고 그 과정이 공정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 제작진의 소망이 반영됐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한일가왕전’에 출전한 일본 가수들과 이들이 선곡한 노래들은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10대 여학생인 ‘아즈마 아키’는 엔카 명곡을 소개하고 트로트를 한국어 가사로 불러 한국에 팬덤이 생겼다. 그녀가 부른 ‘목포의 눈물’ 유튜브 영상은 140만 조회가 넘었고, 60만 조회가 넘은 ‘와라비가미’ 영상에는 감동했다는 한국인들의 댓글이 많이 달렸다. 

특히 ‘우타고코로 리에’의 존재감이 도드라졌다. 50대의 그녀는 오랜 무명 생활이 무색할 정도로 ‘한일가왕전’에서 빛이 난 가수였다. 그런 그녀는 청아한 목소리를 지녔고 목소리에 어울리는 노래를 선곡하는 능력도 갖췄다. 그녀가 부른 ‘눈의 꽃’은 300만 조회에 가깝고 ‘어릿광대의 소네트’는 140만 회가 넘는 조회를 기록하고 있다. 

이외에도 ‘발렌티’나 ‘푸른 산호초’ 등 일본 가수들이 선곡한 노래들이 인상적이었다고 평하는 유튜브 댓글을 꽤 접할 수 있다. 감상평 중에는 ‘친숙함’ 혹은 ‘익숙함’으로 옮길 수 있는 표현이 많았다. 그러니까 ‘한일가왕전’에 나온 일본 노래가 어디서 들어본 듯한 느낌을 준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사실 과거 한국 가요계는 일본 음악을 (비공식도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가져다 쓴 적이 많다. ‘한일가왕전’에도 나왔지만 나미의 ‘슬픈 인연’이 그렇고 박효신의 ‘눈의 꽃’이 그렇다. 

이뿐만 아니라 1980년대와 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활동한 작곡가 중에는 일본 음악을 레퍼런스로 사용한 이들도 있었다. 참조했다는 말인데 아니라고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시절 제작자 중에는 일본 음반을 작곡가에게 제시하고 ‘이런 식으로 만들어’ 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니 지금의 K팝 신(Scene)이 된 저변에는 일본 음악의 영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MBN의 ‘한일가왕전’은 한국 음반계에 끼친 일본 음악의 영향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기도 했다.

물론 오늘날에는 일본 음반계가 한국 음악의 영향을 받는 듯해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한국 음반에 수록된 많은 음악이 한국인이 아닌 미국이나 유럽 등 서양 사람이 만든 것이긴 하지만. 

그러고 보면 음악은 국경 앞에서도 자유로운 듯하다. 좋은 음악에 국적 불문하고 열광하는 걸 보면 그렇고, 앙숙인 나라 시청자들을 감동으로 이끄는 모습을 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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