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호의 책이야기] 이종성의 ‘야구의 나라’
상태바
[강대호의 책이야기] 이종성의 ‘야구의 나라’
  • 강대호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5.04 09: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대호 칼럼니스트] 저는 야구를 좋아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지금은 야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합니다. 정확히는 야구를 싫어한다는 직설적인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 다른 코너를 통해 (한때 서울운동장이었던) 동대문운동장에 관한 글을 쓰면서 마음 한켠에 안타까움이 피어오르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감정이 어디서 오는 건지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그건 동대문운동장이 헐리며 제 추억의 장소가 함께 사라졌다는 일종의 상실감이었습니다.

그 중심에 야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초등학생 시절인 1970년대 후반 고교 야구를 보러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다녔고 고등학생 시절에는 모교에 야구부가 있어서 종종 응원하러 다녔습니다. 하지만 프로야구가 생긴 후에는 오히려 야구에 관한 관심이 시들해졌습니다. 지상파에서 올림픽이나 국제야구대회를 중계해도 리모컨을 돌릴 정도입니다.

이런 저는 왜 야구에 관심이 없는지 관심조차 두지 않았습니다. 관심의 범위에서부터 제외했던 거죠. 그런데 지난 몇 주 동대문운동장에 관해 취재하면서 제가 야구를 좋아하던 아이였다는 게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야구를 좋아하던 아이가 왜 야구를 싫어하게 됐는지도 궁금해졌고요. 그러다 알게 된 게 <야구의 나라>라는 책입니다.

귀족과 일본 스포츠로 자리 잡은 한국 야구

<야구의 나라> 저자 이종성은 기자 출신으로 스포츠 문화사를 공부했고, 영국에서 학위를 받은 후 지금은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있습니다.

저자는 특정 국가에서 좋아하는 스포츠가 어떻게 정해졌는지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인도네시아가 배드민턴에 쿠바가 야구에 열광하듯이요. 이런 관심사가 스포츠 문화사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공부하다 보니 일본에서는 야구가 미국에서는 미식축구가 어떻게 큰 인기를 끄는 종목이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고 저자는 고백합니다. 

이러한 저자의 호기심과 그 해결 과정은 한국에서 왜 야구가 인기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야구의 나라>로 나왔고요. 

이 책은 한국에서 야구가 인기 높은 종목이 된 요인을 역사의 흐름과 사회 변화 관점에서 찾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저자가 자주 사용한 키워드들이 있습니다. ‘일본’, ‘엘리트’, 그리고 ‘지역주의’가 그렇습니다.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야구가 보급된 초기인 일제강점기에는 야구가 ‘귀족 스포츠’ 혹은 ‘일본 스포츠’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합니다. 장비가 비싸 아무나 할 수 없는 데다 주로 일본인 학생이나 직장인들이 즐겼기 때문입니다. 조선인 중에는 학교에 다니는 일부 상류층 학생들만 즐겼다고 하네요.

그런 야구를 일제는 조선의 엘리트들이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방편으로 활용했습니다. 고등보통학교와 상업학교 등 각종 학교에 야구를 보급하고, 일본에서 열리는 고시엔 대회에 보내기 위한 예선전도 조선에서 벌입니다. 일제는 이런 활동을 ‘내선융화’의 한 정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야구의 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야구를 정착시킨 이들도 소개합니다. 모두 일본에서 유학하면서 야구를 접했던 조선인들입니다. 이들은 조선의 각종 학교에서 야구 감독을 하거나 정관계에 진출합니다. 그 시절 야구는 '선진 근대 문화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야구를 배워온 이들은 사회 특권층으로 위상을 갖춘 '일종의 문화자본'이었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들 야구인 중에 친일파도 있었고 지일파도 있었다고 표현합니다. 이들은 광복 후에는 미군정과 한국인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도구는 물론 야구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한미일 야구 동맹 체제'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엘리트주의로 발화해 지역주의로 만개한 한국 야구

저자는 1973년의 고교별 명문대 입학자 숫자 자료를 들며 “1970년대 많은 입시 명문고의 교기는 야구였다”고 밝힙니다. 특히 “고교 야구대회는 이들의 무대였다”면서요. 즉 명문고의 야구 열기가 고교 야구의 인기를 이끌었는데 이들 학교를 졸업한 동문, 즉 엘리트들의 관심과 후원이 컸을 거라고 추론합니다.

저는 70년대 고교 야구의 열기를 기억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1978년 여름방학에 봉황대기고교야구대회를 보려고 서울운동장 야구장에 거의 매일 갔었거든요. 거기에는 모교뿐 아니라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학교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한여름을 더욱 뜨겁게 한 열기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자는 이렇듯 고향의 학교를 응원하는 열기 덕분에 야구가 '지역을 상징하는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고 설명합니다. 결국은 프로야구를 있게 한 기초가 되었고요. 즉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후 “야구팀이 도시와 지역의 정체성을 대변했다”는 겁니다. 물론 군사 정권과 야권 정치인들이 이런 분위기를 더욱 부채질했지만요.

이 대목에서 저자는 한국 프로야구가 미국의 프로야구와 다른 지점을 설명합니다. 미국에서 프로야구팀은 '이주민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산업화가 진행되며 도시로 몰려든 미국인들에게 그 지역 연고 야구팀은 도시에 적응하게 하는 '효과적인 심리 치료법'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LA로 이주한 이들에게는 다저스가, 뉴욕으로 이주한 이들에게는 양키스가 이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도시민으로서 현대 미국인의 정체성이 만들어졌다는 거죠.

하지만 한국은 다릅니다. 저자가 책에서 설명하지 않았더라도 호남 출신은 대개 타이거즈를, 부산 출신은 대개 자이언츠를 응원하는 걸 한국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 타향에서 정착했더라도요. 

제게도 이런 경험이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즉 프로야구 출범 초기에 저희 반에는 호남 출신 친구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광적으로 해태 타이거즈를 응원했습니다. 그러면 태어나고 자란 서울의 팀과 부모님의 고향인 대구의 팀 중에서 오락가락하는 제 야구 응원 정체성을 놀리곤 했습니다. 본적에 아버지의 고향이 등재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차츰 전 야구에서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친구들과 출신지를 놓고 아웅다웅하기도 싫었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야구 응원 분위기도 저와는 맞지 않았거든요. 

한편으로 저자는 야구의 인기를 설명하면서 축구와 비교를 합니다. 책 여러 부분에서 거론하는데 수용자, 장비와 비용, 때로는 사회적 지위 등으로 비교합니다. 그런데 곰곰 읽어보면 야구가 축구에 비해 우월한 종목이라는 느낌을 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특히 책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렇게 서술합니다.

“아직 축구를 다룬 소설은 물론 영화와 드라마는 야구에 비해서 그 숫자나 문화적 영향력이 적은 편이다.” (309쪽)

하지만 이러한 장르들로 구현된 작품의 숫자가 적을지는 몰라도 문화적 영향력이 적다는 데는 동의하지 않는 축구 팬이 많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야구의 나라>는 제가 왜 야구에 관심이 식었는지 잘 설명하는 듯합니다. 제가 어른이 되면서 싫어하게 된 용어들, 혹은 개념들과 야구가 깊숙이 연관되었다는 걸 담고 있으니까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