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태영호…미북 회담 정확히 꿰뚫었다
상태바
다시 읽는 태영호…미북 회담 정확히 꿰뚫었다
  • 김인영 기자
  • 승인 2018.06.13 16:0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CVID 죽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2018년, 핵보유 위한 평화환경 조성기”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미-북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서 태영호 전 북한 영국공사가 경고한 대목이 떠올라 그의 저서 「3층 서기실의 암호」를 다시 들춰 보았다. 지난 5월에 출간되었을 때 읽었다가, 한달 후에 열린 미북 회담의 결과를 알고 다시 훓어보니 더욱 그의 통찰력이 실감났다. 그는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태영호씨를 ‘인간쓰레기’라고 욕을 해댄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속내를 들여다보고 서울 한복판에서 떠들어 대니 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태영호 북한 전 영국주재 공사 /책 표지에서 스캔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체결 당시 상황에 대해 태영호씨는 이렇게 썼다.

 

1991년 7뤌 30일 남북 당사자들에 의해 한반도 비핵화 방안이 발표되었다. …… 북한과 미국은 서로 다른 속셈을 지니고 있었지만 우선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명분 아래로 모이는 듯했다. 12월 13일에는 「남북기본합의서」에 남북 총리가 서명했고, 12월 31일 남북한 당국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문」에 합의하고 「남북공동발표문」을 발표했다.

그런데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선언 협상 때와 유사한 상황이 2018년에 다시 재현되고 있다. (47쪽)

 

1991년 비핵화 선언 협상 시 가장 큰 난점은 ‘사찰 대상 선정 문제’였다고 태영호씨는 증언했다. 남측은 ‘상대측이 선정한 대상에 대한 사찰’을 주장했고, 북은 이를 ‘자주권 유린’이라고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비핵화 선언에는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을 사찰’한다는 절충안이 반영되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정리했다.

 

사찰대상을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으로 좁혀 놓은 북한 외무성 최우진 부상은 김정일로부터 치하를 받았고, 외무성 내에서는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두고 대학시험문제를 학생과 교수가 사전에 합의하고 치르는 ‘시험방식’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측의 ‘승리’인 셈이다. (47쪽)

 

이번 싱가포르 회담에서 미국은 CVID를 합의문에 명시하는데 실패했다. 이에 대해서도 태영호씨의 예감이 적중했다.

 

외무성 인권과 성원들과 국가보위부 등은 사찰 대상 ‘선정권한’을 한국에 주면 결국 마지막에는 ‘정치범수용소’까지 보자고 할수 있다며 사찰대상 ‘선정 권한’을 절대로 주어서는 안 된다고 완강히 주장했다.

앞으로 북핵 폐기의 최종단계는 결국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수 없는 핵 폐기)를 통한 검증인데 북한 내부의 정치범 수용소와 김씨 가문만 사용하는 ‘특수지역’을 수없이 가지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죽어도 CVID를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북핵폐기의 구체적 로드맵은 들어가지 못했다.

만일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CVID가 아니라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으로 사찰대상을 한정시키는 ’절충안‘이 나온다면 그것은 또다른 사기극이 될 것이며 몇 년 후 우리는 새로운 핵 위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48쪽)

 

트럼프는 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워 게임(war game)이라 지칭하며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26년전에도 한미 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이 중단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태영호씨의 증언을 들어보자.

 

북한은 대외적으로는 국제사회의 핵 사찰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1992년 1월 한국과 미국은 이해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하며 북한에 명분을 제공했고, 같은 달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와 핵안전조치협정을 체결했다. 핵사찰대표단의 방북을 허용한 것이다.

한국과 미국은 핵무기 철수와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의 대가로 북한으로부터 핵 사찰 수용 등의 양보를 얻어냈다고 선전했다. 하지만 핵문제 해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강제사찰에 기초한 ‘남북 상호사찰’을 받아내지 못해 불씨는 남게 된다. (50쪽)

 

그해 5월 북한은 핵물질과 시설에 대한 「최초보고서」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제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한반도 비핵화선언이 제대로 이행되는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북한이 제출한 최초보고서를 미국이 믿지 못했다는데서 발생했다. 태영호의 책을 인용한다.

 

북한은 보고서를 통해 90g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지만 미국은 북한이 이미 10~14kg의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

의혹은 사실이었다. 북한 원자력공업성의 핵전문가들은 핵물질 계산이 상당히 복잡한 문제여서 일정량을 감추고 신고해도 국제원자력기구와 미국을 속일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정일이 원하는 계산이었을지도 모른다. 외무성은 원자력공업성의 예측에 의문을 품으며 논쟁까지 벌였지만 핵물질을 철저히 숨기고 신고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어길수 없었다. (50쪽)

 

김정일의 사기극이 드러나자 한국과 미국은 1993년 팀스피리트 합동군사훈련 재개를 선언하고 북한에 핵 사찰을 수용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면서 1차 북핵 위기가 일어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북한 영변에 제한적 공격까지 검토했다.

군사공격을 포함한 미국의 강경 대처로 미-북간에 대화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렸다.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나고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과의 정상회담이 추진되었다. 이때까지는 김일성이 살아 있었고, 김정일은 막후에서 실권자로 핵관련 사업을 지휘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갑자기 사망했지만, 애도기간이 끝나고 그해 10월 이른바 미국과 북한 간에 「제네바 핵합의」가 타결된다. 당시 합의 내용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한국과 미국은 북한에 경제적 보상과 안전보장을 약속하며, 미-북 관계의 완전한 정상화와 남북대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상황을 태영호씨는 이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그후의 전개는 잘 알다시피 제네바 핵합의는 북한의 시간 끌기용 기만극이었다. 제네바로 협상을 떠나는 강석주에게 김정일이 내린 지침은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간이다. 시간을 벌어라’였다. 애초부터 김정일은 합의를 지킬 마음이 전혀 없었고 시간만 벌자는 전략이었다. (54쪽)

외무성은 이때 ‘시간을 벌기 위해 사기를 치고 있으니 모르면 가만히 있으라’고 대응했다. 외무성 내에서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지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까지 북한은 대외적으로 ‘우리의 목표는 조선반도 비핵화’이지 핵 개발이 아니다‘라고 선전해 왔지만 내부적으로는 완전 반대였다. ’무조건 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55쪽)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의 6·15 남북공동선언 당시의 분위기를 태영호씨는 이렇게 증언한다.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 직후였다. 매일 남북 간에 무슨 회담이 진행된다는 소식들로 들끓었다. …… 1990년대초부터 위기에 몰렸던 북한은 6·15 남북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채 10년도 안 되는 사이에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2018년 1월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북한 리선권 대표는 “6·15시대의 모든 것이 귀중하고 그립다”고 했다. 이 한마디만으로도 북한 사회에서 6·15 시대의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149쪽)

 

2002년 2차 북핵 위기가 터졌다. 2002년 10월 3~5일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이끄는 미국 협상단이 평양을 방문했다. 이때 북한이 켈리에게 고농축우랴늄(HEU) 개발을 시인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듬해 2월 IAEA는 북한을 유엔 안보리에 회부했고, 북한은 영변원자로를 재가동해 북핵 문제는 10년여 만에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차 북핵 위기 이후 미국, 북한, 중국의 3자 회담이 열렸다.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 6자 회담으로 확대되고, 2005년 이른바 9·19 공동성명이 채택된다. 이 성명에도 국제사회가 북한의 체제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는 대신에 북한은 핵 개발을 포기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두차례의 북핵 위기를 겪으면서 태영호씨는 북한이 있는대로 배짱을 부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는 2004년 6월 영국에 온 이후부터 6자 회담등 2차 북핵 위기와 관련된 흐름을 평양에 있을 때보다 좀더 국제적인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김정일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미국을 어떻게 저리 잘 다룰수 있을까, 탄복까지 했다.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이라는 9·19공동성명이 나오는 과정까지 배짱은 배짱대로 튕기면서 챙길 것은 다 챙겼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236쪽)

 

2006년 10월 9일 북한은 1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핵실험 사흘후인 10월 12일 강석주 북한 외무성 강석주와 중국 외교부장 리자오싱(李肇星)이 중국 선양에서 비밀리에 만났다. 두 사람은 베이징대학 외국어학부 동창이었다.

태 전 공사는 “북한 핵실험에 가장 분노한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었다”며 당시 상황을 소개했다.

 

중국 자오싱이 말했다.

“소련과 같은 큰 나라도 미국과의 과도한 군비경쟁에 말려들었다가 결국 붕괴되었다. 조선은 이번에 핵실험이라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이제라도 핵 개발을 중지하고 경제건설에 전념하기 바란다. 핵 개발을 중지한다면 중국은 조선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을 늘릴 것이다. 핵으로는 조선의 체제를 지킬수 없다. 경제부터 조속히 회생시켜야 한다.”

강석주는 이렇게 되받아쳤다.

“내가 지금 중국 외교부장 리조성과 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청나라 사절 이홍장과 회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련의 사례를 들었지만 중국 외교부장이 소련의 붕괴 원인조차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지경이다. 소련이 붕괴된 것은 미국과의 군비 경쟁 때문이 아니라 당이 인민에 대한 사상교양사업을 게을리 했고, 당 자체가 부패하고 변절되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우리처럼 당을 강화하고 사상사업을 중시했다면 아무리 많은 군비를 쏟아부었다고 하더라도 붕괴되지 않았을 것이다.” (241쪽)

 

그러면서 강석주는 조선반도 비핵화(한반도 비핵화)에 대해 언급했다.

“조선반도 비핵화란 우리만의 비핵화가 아니라 남조선까지 포함한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뜻한다. 미국은 조선반도에서 핵전쟁 훈련을 계속하고 있고, 언제라도 핵무기를 끌어들일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반도는 결코 비핵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핵으로 미국의 핵을 몰아내고 미국으로부터 핵 불사용 담판을 받아낼 때만이 가능하다. 수령님의 조선반도 비핵화 사싱이 실현될수 있도록 중국이 조선과 미국의 관계를 중재해 주길 바란다. (241~242쪽)

 

▲ 책 표지

강석주의 조선반도 비핵화 논리는 그후 중국과의 논쟁이 발생할 때 늘 이용하는 북한의 논리였고, 중국도 결국 강석주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이듬해인 2007년 6자회담에서 이른바 ‘2·13 합의’가 도출되었고, 그해말 ‘10·3 합의’가 도출되었다.

이듬해인 2008년 6월 27일 북한은 영변 원자로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2009년 5월 25일 북한은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등장한 김정은 체제는 2013년 3차, 2016년 4차, 2016년 5차, 2017년 6차의 핵실험을 강행하며 핵무기 완성을 선언한다.

태영호씨는 2016년 5월에 열린 노동당 7차 대회에서 2018년 올해를 북한이 핵보유를 위한 평화환경 조성의 시기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그의 저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다.

 

2016년 12월 나는 한국에서 공식 활동을 시작하면서 …… 북한의 핵 개발 완성 계획을 공개하고 이를 ‘핵 질주 계획’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2017년에 감행한 북한의 핵실험과 ICBM 발사는 나로서도 충분히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8년은 북한이 핵보유국임을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평화적 환경조성의 시기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전후해 북한이 적극적인 화해제스처를 보이는 것은 이런 측면으로 이해할수 있다. 북한이 다른 것은 몰라도 핵문제만큼은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들이 절감했으면 좋겠다. (404~405쪽)

 

Tag
#N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hin 2018-06-14 15:49:41
태영호의 예언에 공감합니다 .큰일입니다 이 현실을 직시 못하는 정권때문에

kim 2018-06-13 19:25:18
만약 김대통령 정부가 5년간 북한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이미 한반도는 통일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장해제 시키기 위한 전략에 동조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의 기본전략은 미군을 철거하게 하고 그다음 여기 좌파 정권을 세우고 갑자기 기습해서, 100만의 특수부대들이 남한의 요소요소 들을 점령하고 연방제를 선포하자는 것입니다. 황장엽 씨 말대로 되고 있다.충견들은 이명박 박근혜 때문이라고
남탓 하겠지